사는 이야기 1683

부활 성야 미사

2024. 3. 31. 토. 지난 11월에 포르투갈 일주 여행을 신청하였을때 부활을 염두에 두지 않고 신청하여 성주간을 본당 행사에 참여할 수 없어 아쉬웠다. 다행히 포르투갈은 가톨릭국가여서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성전이 있어 조배할 수 있었으며, 베자라는 조그만 성당에서 토요 특전미사도 할 수 있었다. 브라가의 봉제수스.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 토마르의 그리스도 수도원. 포르투의 대성당 등 곳곳에서 주님의 흔적을 느낄 수 있어서 오히려 뜻깊은 성주간을 보냈다. 무사히 여행을 긑내고 딸과 함께 우리 성당에서 부활성야 미사를 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였다.

사는 이야기 2024.04.01

우리 동네에 찾아온 봄꽃들

2024. 4..1.월. 포르투갈 여행 후 여독으로 약간 어지러운 상태. 내가 없는 동안 꽃들이 다 떨어지면 어쩌나...생각했는데, 고맙게도 동네 어귀의 목련은 청순한 모습으로, 화단의 앵두꽃은 함뿍 밝은 웃음으로 우리집 베란다의 철쭉은 화사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아파트 화단의 자잘한 풀꽃들이 햇빛 아래소 단아한 모습으로 핀 모습도 나를 감동시켰다.

사는 이야기 2024.04.01

그때 그 서울

그때 그 서울(임인식 기증유물특별전) -1945~1965 2023. 12. 15~2024. 3. 10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자 625전쟁 종군기자인 임인식 작가의 사진을 전시한다고 하여 광진문협 회원들과 함께 다녀왔다. 이번 전시는 2013년에 기증받은 사진 1003점 중 1945년부터 1965년까지 격동기 서울의 모습과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14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의 구성은 1.폐허가 된 서울. 2 하늘에서 본 서울 3 격동기 서울 4 삶의 현장 남대문 시장 5 시민들의 휴식처 고궁 6 생업과 놀이의 공간 한강 7 골목 안 아이들 8 스포츠 문화의 확산 등 8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임인식 작가의 아들이자 사진작가인 임정의님의 안내로 194..

사는 이야기 2024.02.24

어디서 다시 만날까?

부엌으로 가서 어머니를 찾았으나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이상하다. 분명 조금 전에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어머니를 대신하여 생선찌개를 만들려고 부엌을 뒤적였지만, 어린시절 사용했던 나무 미닫이 찬장에는 아무런 재료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이것저것 밑반찬을 챙겨 다른 것을 주문하라고 할 생각으로 기다리는 손님에게 가는 도중 꿈을 깨버렸다. 얼마전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알바를 하였던 장면과 어린 시절이 오버랩되어 이런 황당한 꿈을 꾸었던 모양이다. 꿈을 깨고도 ....어쩌지....꿈속의 그 아저씨들이 내가 가져올 생선찌개를 계속 기다리고 있을텐데....하는 생각으로 다시 꿈속으로 들어가 기다리는 아저씨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번 깬 꿈은 다시 잠들어 꿈을 꾼다 하여도 연속되지..

사는 이야기 2024.01.17

알바가는 길

2024. 1. 11. 목. 식전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 오늘 일손이 필요한데 좀 도와줄 수 있어? 앗! 오늘 점심 약속 있는데? 급하지 않으면 다음으로 미루고 좀.도와줘. 전화를 끊고 부랴부랴 점심약속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점심약속 연기하기로 하였다. 친구는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음식점을 하는데 지난 연말에도 일손이 달려 알바를 하였다. 사실 나는 일손이 느려 제대로 일을 못 한다. 그날도 서빙이 서둘러서 실수 연발이었다. 주문한 것을 잊어버려 다시 가서 확인해야 했고. 유리컵도 하나 깨고 맥주병도 옷에 걸려 하나 깨뜨렸다.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일의 순서를 몰라 허둥대는 나를 보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참 답답하였을 것이다. 손님이 거의 빠져 나간 후 친구에게..

사는 이야기 2024.01.12

나의 새 컴퓨터

1977년 첫직장으로 다녔던 군청에는 별관에 전산실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커다란 장롱처럼 생긴 기계가 버티고 있었고, 우리는 그 전산실로 가서 문서를 발송하고 수신하기도 하였다. 그때는 책상마다 개인 컴퓨터가 놓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였다. 1984년 생인 아들 태성이는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였다. 그 후 컴퓨터의 보급이 시작되었고, 동네에는 오락실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우리 태성이는 게임을 좋아하여 오락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기에 집에서 게임을 하라고 사 준 것이 우리집 컴퓨터를 들여 놓은 계기가 되었다. 처음 컴퓨터가 출시되었을때는 8비트. 16비트하였는데 기계치인 나는 그 숫자가 의미하는 뜻도 모르면서 그냥 숫자가 클수록 기능이 좋은 것이구나.... 짐작만 하였다. 처음 구입한 컴퓨터는 삼보 컴퓨터..

사는 이야기 2024.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