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다낭에서 아들 가족과 함께 4박 5일간의 여행을 끝내고
밤 늦게 귀가하였다.
이번 여행은 모처럼 며느리가 손자들과 딸 아라의 겨울 방학.
그리고 (부끄럽게도) 나의 칠순을 기념하기 준비한 여행이었다.
이번 겨울 지방의 작은 상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속을 끓였다.
세입자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상태여서 영업을 할 수 없는데다
가족에게도 외면받아 상가에서 기초생활비로 생활을 하고 있으며
일년이 넘도록 월세와 관리비를 내지 않아 보증금을 다 까먹고도 나가지 않았다
* * *
(나는 사실 전에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으로 다낭을 다녀왔고,
마산에 있는 조그만 상가의 세입자가 1년이 넘도록
월세와 관리비를 내지 않으며 나가달라고 하여도 억지를 부리고
나가지 않아 마음이 편하지 않은 상태여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이미 예약한 상태여서 따라 나섰다.
세입자는 매번 약속을 하고는 지키지도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아
결국 법무사 사무실에 부탁하여 내용증명서를 보냈으나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법은 약자의 편이어서 임대인이 임차인을 강제로 쫓아낼 수도 없다고 하였다.
인간에게 최소한의 생존권이 보장되기 때문이라고 하였지만,
그 생존권을 국가가 아닌 개인이 보장해줘야 하는지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아들은 속섞이지 말고 민사소송을 청구하라고 하였지만
평소에 친정 어머니는 절대로 소송은 하지마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서
세입자에게 월세가 들어오지 않으니 나도 생활비가 부족하여 어렵다는
하소연을 하며 100만원 가까운 금액을 손해볼테니
제발 나가달라고 하여도 당장 나가서 잘 곳도 없다고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였다.
세입자는 알콜중독으로 형제와 자녀들 모두에게 외면을 받은 상태였다.)
* * *
이런 상황으로 초저녁 잠을 한 숨자고 깨면 걱정과 불안으로 잠도 오지 않았다.
'내가 그 세입자보다 나은 형편이니 그의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려주자.
나는 잘 곳도 있고 굶지도 않으니 건강하기만을 기도하자'고 다짐하였지만
소심한 성격으로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가족여행이 기다려졌다.
아침 10시에 출항하는 비행기였으므로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
희미한 여명속에 입춘 한파로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 떨어졌다.
마음이 바빴는지 캐리어 바퀴에 신발이 걸려 순간적으로 탁하고 넘어졌다.
정말 예측하지 못한 상태라 벌떡 일어났는데 무릎만 조금 아팠다.
다행히 아무도 눈치를 채지 않은 듯하여 앞서가는 아라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과정도 좋아해야 하지만
장거리 비행시간은 여전히 힘들다.
2시간 정도 지나면 슬슬 지루하기 시작하는데
베트남 항공기 안에는 영상이나 음악도 이용할 수 없었고
그냥 시간을 죽이며 가만히 앉아서 지내야했다.
테블릿이나 스마트폰에 영상을 다운 받아 즐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우리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기에 눈을 감고 있어야했다.
성수기에 티켓팅을 하였으므로 좌석의 여유분이 없어
딸과 나의 좌석도 각각 떨어져 앉아야만 하였다.
5시간 비행 후 다낭 공항 도착하여 부산에서 먼저 날아온 아들 가족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긴 비행시간의 피로도 다 날아가는 듯 하였다.
곧장 숙소로 이동하여 짐을 풀고 여름옷으로 갈아 입고
환전하기 위해 택시를 불려 시내로 나가야했으므로 조금 어수선하였다.
겨울에서 갑자기 여름으로 들어서니 열도 오르고 땀도 났다.
선글라스로 갈아 끼고 내 안경은 잘 접어 안경집에 얌전히 넣어 두었다.
환전을 한 후 생활용품을 파는 한시장으로 들어갔다.
여행 중 현지의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시장 구경은 언제나 재미있다.
딸 아라는 한국에서는 이런 원피스 이 가격에 살 수 없다면서
이것 저것 고르면서 즐거워하였지만, 집에 가면 실용성이 없을 것이라
만류하고 싶었지만, 스스로 경험하는 것도 좋으리라는 생각으로 지켜만 보았다.
아라가 라탄 가방도 고르고 크록스 신발도 구매하는 사이
시장안이라 짙은 선글라스가 답답하여 안경을 갈아 쓰려고
가방을 열어 안경집을 열어 보았으나 안경이 감쪽같이 없었다.
아라가 물건을 사는 동안 주인의 양해를 얻어
한켠에 서서 가방을 홀랑 뒤짚어 보아도 없었다.
이상하다. 내가 경황이 없어서 숙소 테이블 위에 두고 왔을까?
시내의 핑크성당이라고 불리는 다낭의 가톨릭성당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유명한 콩카페. 기념품 가게. 해산물 식당에서 저녁까지 먹고
숙소로 돌아와 테이블 위 , 침대 아래, 싱크대, 화장실, 배낭. 케리어 등
한참을 안경를 찾았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머리 속이 멍해지고 하얗게 변색하는 것 같았다.
소매치기가 여권이랑 지갑은 두고 안경만 가져 가지는 않았을텐데?
내일 엉뚱한 곳에서 짠~!하고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며느리가 예약한 호텔은 약간 외곽 지역이지만 깨끗하고 쾌적하였다.
침대도 넓직하고 침구도 깨끗하고 편안하였지만,
잠자리가 바뀌면 깊은 잠을 못자는 형편이라 초저녁 일찍 한 숨자고 나니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여행지에서 깊은 잠을 잘 못 이루고 막바지에는 으슬으슬 춥고
입맛도 없었지더니 감기에 걸려 버렸다.
몸이 아프니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아야할가?
내 앞으로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드니 점점 우울해졌다.
문득 전에 무언가 큰 의미있는 일을 찾기보다는 주변의 내 이웃에게
물 한그릇이나도 나누려는 마음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내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고 하였던 어느 신부님의 강론이 떠올랐다.
나이가 드니 가장 무서운 병이 치매라는 생각이 든다.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 나름 꾸준히 노력하는데도 노화는 어쩔 수 없을까?
치매는 특히 단기 기억이 먼저 사라진다고 하였다.
내가 바로 그런 증상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학창시절에는 그다지 노력하지 않아도 문장이 술술 암기되고 하였는데
이제는 며칠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도 거의 생각나지 않았고
어떤 때는 하루에 한 번씩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을 먹었는지 헷갈렸다.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꾸준히 외국어 공부를 하고 독서를 하였지만
돌아서면 까맣게 잊어버려 때로는 모든 것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하였다.
때로는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 전화를 하려고 해도 친구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친구의 모습과 추억은 떠오르지만 이름은 입안에서 뱅뱅 돌뿐 떠오르지 않았다.
뒤늦게야 친구의 이름이 기억나서 전화를 하려고 하면 이미 늦은 시각이었다.
하루의 일과도 메모하지 않으면 어제 내가 무엇을 하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필요한 물건을 사 놓고도 시장에서 다시 사왔던 일도 많았다.
냉장고에 채소와 과일이 있는데도 같은 종류를 또 사오는 경우도 있었다.
사용한 물건을 제때 정리해 놓지 않으면 찾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이 방 저 방. 이 가방 저 가방 뒤적이다 보면 짜증도 나고 우울해졌다.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한 몫을 하였다.
디지털 시대를 지나 AI시대인데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소심한데다 기계치이기도 하여 내 스스로 무엇 하나 조작하기도 어렵다.
요즘은 손의 악력도 약해져서 생수병의 뚜껑도 쉽게 열 수 없다.
전자제품을 새로 구입하면 먼저 사용방법부터 읽어 보아야 하는데
노안이 되니 자잘한 사용방법 글자도 읽기 어렵고 귀찮다.
딸에게 인터넷 쇼핑도 배웠지만 카드 결제가 잘 못될까 두렵고
버스표 예매 방법도 배웠지만 역시 실수할까 두려워 혼자 못한다.
노인복지관에서 스마트폰 사용방법을 배우려고 열심히 출석하였으나
여전히 길찾기도 못하고 영화 예매도 못하고 택시 부르기도 못한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과 실습하는 시간에는 분명히 나도 할 줄 알았는데
실생활에서 사용하면 잘 접속도 되지 않고 방법도 기억나지 않았다.
너무나 급속하게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나는 점점 도태되어 가는 것 같았다.
딸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
앞으로 딸이 결혼하면 나는 혼자서 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까?
면역성도 자꾸 떨어지고 기억력도 떨어져 나 자신도 믿을 수 없다.
이런 저런 생각과 걱정으로 이번 여행지에서 불면증에 시달렸다.
걱정해서 해결될 일은 거의 없다고 하는데 왜 내가 걱정을 하는 것일까?
스마트폰으로 나의 이런 불안과 걱정에 대해 Chat GPT에게 물어 보았다.
이런 현상을 노년 불안. 자신감 상실. 허무감. 현자 불안, 연로 걱정이라고 하였다.
감정이 없는 Chat GTP 이지만 나의 상태를 명료하게 진단하여 주는 듯 하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생활은 여행이지만, 이번 여행에서 넘어져 조금 다쳤고,
신체 조건도 점점 약해지고 점점 불안하여 다음 여행 예약도 취소하였으며,
앞으로 자신감이 없어져 점점 우울하다고 상담사에게 말하듯이 써 보았다.
무슨 답이 올까 기다려 보았더니 메모리 업데이트 되었다는 멘트와 함께
이번 경험이 앞으로의 여행을 포기하기보다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짧은 여행부터 시도해보고, 안전에 더욱 신경을 쓰는 방법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친절한 위로와 상담을 해주는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며 나는 미소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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