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7. 일.
정조처럼 소통하라
-편지로 상대의 마음을 얻은 옛사람들의 소통 비결
정창권 지음.
사우 출판사 (2018년 발행)
(2020. 6.4 ~6,7)
6월에 접어들기 바쁘게 성큼 여름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날씨다.
바깥 기온이 30도를 넘어 햇볕속에 나서기가 두렵지만
아직 집안에서는 선선하여 책 읽기 딱 좋은 계절이다.
지난 주 집 앞 한강도서관에서 빌려온 3권 중
그리스 여행 가이드북을 먼저 읽고 2번째로 이 책을 읽었다.
제목이 정조처럼 소통하라....여서 딱딱한 역사책이겠구나 짐작하였는데,
조선 후기의 정조, 선조, 명성 황후, 이순신, 이황. 다산, 연암을 비롯하여
역사에 획을 그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군관 나신걸,신천 강씨.곽주 등
평범한 사람들의 무덤에서 발견된 편지를 쉽게 풀이하여 역은 책이었다.
지은이 정권창님은 한국박믈관협회 평가 및 자문위원, 서울시청 평가 및 자문위원,
서울시교육청 고전인문아카데미, 한국양성평등진흥원, 길 위의 인문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인문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분으로 <홀로 벼슬하며그대를 생각하노라>
<조선의 부부에게 사랑법을 묻다> 등 여러 권의 책도 쓰신 분이셨다.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1. 편지의 달인, 정조,
2. 이 부부의 평등한 소통법, 군관 나신걸
3. 남편을 변화시킨 쪽지 편지, 강정일당
4. 영혼을 매료시킨 감성적 소통의 대가, 이순신
5. 살림하는 남자, 퇴께 이황
6. 존경받는 아버지, 연암 박지원
7. 배려하되 단호하게, 명성황후
8. 엄격하고 간깐한 아버지, 다산 정약용
9. 딸 바보, 선조
10. 외롭고 쓸쓸한 왕비, 인선왕후
11. 노부부의 사랑과 전쟁, 신천 강씨
12. 불통의 고통, 곽주
에필로그
이렇게 단락을 나누어 12편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조선의 후기 시대로 돌아가 그들의 소통 방법을
재미있게 읽었으며 그 시대의 상황을 체험할 수 있어 재미있었다.
정조는 당시 자기의 반대편에 서 있는 심환지에게 297통의 비밀편지를
보내어 정사를 논하고, 시사를 파악하고, 업무지시를 내리기도 하였다.
정조의 소통법의 특징은 '솔직함'과 '친근감'을 들 수 있다.
왕으로서의 권위의식을 버리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여
상대방의 공감을 이끌어냈으며 심환지 부인의 건강까지 세세히 챙겼다.
요즘시대로 하자면 개혁적 셩향의 대통령이 자신을 반대하는 보수 야댱의
대표와 몰래 편지를 주고 받으며 정국을 운영한 노련한 정치가라고 할 수 있겠다.
군관 나신걸이 아내 신창 맹씨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고개가 갸우뚱하였다.
조선은 유교국가로 가부장적인 사회로 여권이 보장되지 않았을 것이다는 생각하였는데,
임지에서 보낸 나신걸의 편지는 참으로 자상하고 배려하는 남편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아내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가득 담은 편지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편지였다.
조선 후기에 성리학적 가부장제가 확산되기 전까지는 양성평등의 부부였던 모양이었다.
성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모두가 남성일 것이라는 생각을 바꾸게 한 강정일당의 편지였다.
강정일당은 스무 살에 충주의 선비 윤광연과 결혼한 몰락한 가문의 여성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유교 경전을 배웠으며 책읽기를 좋아한 여성 성리학자였다.
가세가 기울여 장사를 하려는 남편에게 자신이 바느질과 베 짜는 일을 하며
집안의 생계를 돌볼테니 남편에게는 성현의 책을 공부하고 군자를 사귀라고 권하였다.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남편에게 틈틈히 쪽지편지를 보내거나
시를 통해 학동 선발, 수업료, 교육 방식 등 서당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하였다.
정일당은 당시 남성 학자들의 동향을 훤히 꿰뚫고 있을 정도로 대범하였으며
필요하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거리낌없이 남편에게 부탁하여 해결하였다.
50년 선배인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을 흠모하였다고 한 사실도 놀라웠다.
난중일기를 쓴 이순신 장군도 영혼을 매료시킨 감성적 소통의 대가였다.
이순신의 어머니 변씨 족 일가친척으로 추정되는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는
예를 중시하는 겸손한 성품으로 소통하는 명문장가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였다.
감역 (토목이나 건축 공사를 감독하는 관직) 현건에게 보낸 편지는
부친상과 모친상때 받은 부의에 대한 감사의 답장은 한 편의 시와 같았다.
조선 최고의 유학자라는 명성을 지닌 퇴계 이황의 편지는 그의 학문적 업적과
별개로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일반적인 양반의 모습 그 자체였다.
퇴계는 후학들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으며 지금 남아 있는 것만 3000여 통이 넘는다.
가족들과 주고 받은 편지도 많은데 집안 대소사를 거의 도맡아 처리하였다.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겉으로는 온화하나 속으로는 엄한 아버지였다.
연암 박지원은 51세에 부인을 잃은 후 재혼을 하지 않고 혼자 지내며
두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에게 각별한 정을 쏟은 존경받는 아버지였다.
사별한 아내를 그리워하였으며 고추장을 직접 담가 보내주는 자상한 아버지였다.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자식을 친구처럼 생각하며 과거 공부나 하는
쩨쩨한 선비가 되지 말고 마음이 넓고 뜻이 원대한 사람이 되라고 하였다.
특이한 점은 그는 한문을 사용하여 편지를 썼으며 한글을 쓸 줄 몰랐다고 하였다.
명성황후가 조카인 민영소에게 보낸 편지, 딸바보 선조가 딸에게 보낸 편지,
효종의 왕비 인선왕후가 딸에게 외롭고 쓸쓸하다는 투정이 담긴 편지,
남편이 첩을 두는 것에 대해 속을 끓였던 신천강씨의 편지,
자기 말만 하는 가부장적인 남편 곽주에게 보낸 아내 진주하씨의 편지 등
조선 후기의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느끼게 하는 편지들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편지는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 다산 정약용의 편지였다.
<여유당전서>권 18의 증언, 가계, 서 등에에 241 여 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다산의 인간적 면모와 소통법을 잘 보여주는 것은 유배지에서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다.
몇 년 전 내가 구입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책이었다.
신유박해로 폐족이 된 가문을 일으켜 세우려는 뜻으로 교육열에 불탔으며
가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독서를 권하는 엄격하고 깐깐한 아버지였다.
다산은 1801년 강진으로 유배당하였으며 1808년 다산초당으로 옮겨가 11년 간 거처하였다.
아내 홍씨가 보낸 시집올 때 입었던 낡고 붉은 치마를 유배지에 있는 남편에게 보냈는데,
다산은 그 치마를 마름질하여 네 개의 서첩으로 만들고 딸에게는 매화병제도를 그려주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첩을 얻어 딸 홍임이를 낳았는데 유배가 풀려 고향으로 돌아갈 때
그들을 두고 혼자 갔으며 나중에 딸과 첩이 다산을 찾아왔지만 냉담하게 쫒아 보냈다고 한다.
홍씨 부인이 낳은 아들과 딸에게는 그렇게 자상한 아버지였지만 유배지 다산초당에 남겨진
어려운 처지에서 그를 돌보았던 모녀에게는 왜 그리 매몰찬 사람이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지은이 정창권님은 에필로그에서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남과 소통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하였다.
옛사람들의 소통비결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솔직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소통할 때 자세하고 구체적이었으며, 부드러운 소통법을 구사하였다고 하였다.
프롤로그에서 이 책이 현대인의 소통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였는데,
나도 가족 사이에서 원활한 소통을 위해 좀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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