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장편소설/양선아 옮김
강출판사 (2004년)
코로나 바이러스으로 전세계가 사회적 격리기간을 실천하고 있는 요즘,
자연적으로 집에서 책읽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번에 마을작은도서관에서 빌려온 4권의 책을 아껴가면서 읽었다.
그 중 가장 마음속에 강한 여운을 준 책은 바로 <진주귀고리 소녀>였다.
<진주귀고리 소녀>의 그림은 워낙 유명하여 낯익은 그림인데
이 그림에 관한 영화와 소설이 있다는 사실은 이 책을 빌려오기 까지 모르고 있었다.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미국. 1962~)는 1999년에는 신비에 싸인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을 다룬 '진주 귀고리 소녀' 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다.
책의 앞 날개에 '북구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
<진주귀고리 소녀>는 화가의 삶만큼이나 신비에 싸인 작품이다.
이 소녀는 누구이고, 어떻게 그림의 모델이 되었을까?
작가 슈발리에는 17세기 네델란드 델프트에 대한 치밀한 복원과 정확한 미술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주인과 하녀, 화가와 모델의 예술과 삶 사이에서 벌이는
고요하고도 열정 어린 드라마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라고 적혀 있었다.
작가 베르메르는 렘브란트와 같은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과 비교할 때,
(1632~1675. 델프트출신. 네델란드의 황금시대에 활동하였던 작가)
그의 삶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슈발리에가 자유롭게 소설을 쓸 수 있었다고 하였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17세기의 델프트 마을과 골목과 운하와 시장.
살아있는 주인공 소녀 그리트와 화가, 화가의 가족들을 눈앞에 보는 듯 하였다.
1664년 부터 1665, 1666년. 10년의 세월을 건너 1676년 까지의 델프트 마을에서
그리트와 그녀의 주변에서 일어난 사실들을 서술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을 읽으면서
어떻게 소설가는 350년 전의 시대를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을까? 놀라웠다.
그리트는 타일도공 기술자였던 아버지와 신앙심 깊은 어머니 사이에서 3남매의 맏딸로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아버지의 실명으로 화가의 집으로 하녀로 팔려 갔다.
그리트가 화가의 집에서 받아오는 주급으로 가족의 생계를 짊어져야 했던 그리트는
청순하면서도 신앙심이 깊은 영리한 16세의 소녀로 맡은 일을 다부지게 잘 하였다.
특히 화가의 작업실 청소를 하면서 그림속의 모델이 되는 집기들을 움직이지 않고
청소하기 위해 사물간의 거리를 손금으로 재어 정확하게 제 자리에 둘 수 있었다.
화가 베르메르는 재능이 있는 화가였지만 경제적으로는 무능한 사람이었다.
깐깐한 장모 마리아 틴스와 신경질적인 아내 카타리나 그리고 11명의 아이들속에서
그는 쉬지 않고 작업을 하였지만 그림을 파는 일에 관심이 없어 빚을 지고 사는 살았다.
작품을 그리는 데에도 신중하여 일생 35점의 작품을 남아 있다고 하였다.
이 소설속에 델프트 풍경. 골목길. 편지를 읽고 있는 여인.음악레슨.세 사람의 연주회.
진주목걸이를 한 여인. 진주귀고리 소녀 등 23점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화집에서 보았던 우유를 따르는 여인, 천문학자의 작품이 그의 작품인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리트는 영리하여 배경으로 두었던 물건에 투영되는 빛의 밝기와 색채에 대한 이해를 하여
화가의 관심을 사게 되어 그의 작업을 도와 재료를 사오는 일,물감을 만드는 일도 맡아서 하였다.
친구이며 재력가인 반 라위반의 권유로 화가는 그리트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그림을 완성시키고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 화가는 붓을 놓지 못하였다.
그때 그리트의 조언으로 반짝이는 하이라이트를 넣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진주귀고리를 생각하였다.
귀고리를 달기 위해 그리트는 정향으로 귀를 마비시켜 스스로 구멍을 뚫여야 했는데
사모하였던 화가를 위해 아픔을 참고 스스로 자신의 귀를 바늘로 구멍을 내어야만 하였다.
그리트의 귀에 진주귀고리를 달기 위해서는 장모 틴스와 사위 베르메르가 공모를 하여야 했다.
아내 카타리나가 집을 비운 사이에 카타리나의 진주귀고리를 그리트가 달고 마지막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그리트는 이 진주귀고리를 부착한 작품을 영원히 볼 수 없었다고 하였다.
카타리나가 이 사실을 알고 작품을 훼손하려고 하여 곧바로 반 라위반의 집으로 가져 가버렸다.
그리트는 이 작품이 완성되는 날 화가의 집을 뛰쳐 나와 평소 자신을 흠모하였던 정육점의 아들
피터의 집으로 들어가 그의 아내가 되고 2명의 아들을 낳고 정육점을 꾸리면서 살게 되었다.
다행히 남편 피터는 성실하고 속이 깊은 남자여서 그리트의 결혼생활은 평화로웠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화가 베르메르는 11명의 자녀와 빚을 남긴채 젊은 나이로 죽었다.
그의 친구이자 유언 집행원인 반 레이언 후크와 아내 카타리나의 부름을 받고
그리트는 그동안 전혀 발길을 하지 않았던 파펜후크의 저택으로 찾아 간다.
그리트는 그곳에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카타리나의 진주귀고리를 받는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베르메르의 유언으로 받은 진주귀고리를 푸줏간 안주인의
신분에는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전혀 그것을 달고 싶지 않은 귀고리를 처분하기로 하였다.
그리트는 화가의 집에서 빨래와 함께 푸줏간에서 외상으로 고기를 사오는 일을 담당하였는데,
그리트가 그집을 뛰쳐 나오는 바람에 화가의 저택과 거래가 끊어지고 15길더의 외상도
갚지 않았는데 귀고리를 처분하여 받은 20길더(그 당시 1길더는 얼마의 가치인지?)를
그녀는 15길더는 피터에게 외상값의 반환으로 나머지 5길더는 비밀 장소에 보관하였다.
그리트는 빚이 청산되어 피터가 기뻐할 것이고 자신도 더 이상 치를 것이 없어 기뻐하였다.
'한 하녀가 비로소 자유를 얻은 것이다'....하고 소설은 긑을 맺는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델프트에도 1664년 전염병이 돌아 그리트의 가족이 살았던
신교도 마을도 격리가 되어 일요일마다 그리운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 갈 수 없었다.
전염병으로 사랑하는 막내 동생 아그네스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그리트는 매우 슬퍼하였다.
소설속의 배경이 지금 전세계에 닥친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생각이 들었고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류가 이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와 전쟁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소설속의 델프트 마을의 전염병처럼 언제가는 끝이 날 것이며
우리는 전보다 조금 더 성숙한 생활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들과 진주귀고리 소녀 그리트를 생각하며 이 소설을 덮었다.
책 표지.
작가 소개.
네델란드 델프트 풍경.
편지를 쓰고 있는 여인.
우유를 따르는 여인.
화가의 아틀리에.
등을 보이고 있는 화가가 요하네스 베르메르.
(펀 사진: 책에 수록된 작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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