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과일 중심으로 단단히 먹고
인류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소금광산으로 향하였다.
일정이 빡빡하여 일찍 나섰기에 우리가 거의 첫 관광객인 것 같았다.
매표소 입구에 멋진 제복을 입은 남녀가 있기에 그곁에 다가가서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였더니, 흔쾌히 응해 주었다.
그런데 이곳은 사진을 마음대로 찍을 수 없고 사진 스티커를 5유로을
주고 산 사람만 찍을 수 있다고 했다.
한 사람이 서너명의 사진을 찍을 수 있겠기에 우리는 몇명만 스티커를 샀다.
어두운 곳에서는 아직 디카를 잘 작동하지 못하여 나는 수동 사진기를 들고 갔다.
입구의 버팀목은 광산의 압력에 의해 자주 교체를 해 주어야 하는데
관광객에게 그곳은 낙서장으로 사용되는 모양이었다.
숱한 낙서중에 한국어의 낙서가 아주 많았다.
누구누구 왔다갔음.... 이런 글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얼마후면 다시 없어질 것이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의 흔적 남기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자신의 존재가 영원하길 바라지만,
이제는 내 죽기전 내가 남긴 흔적들을 깨끗이 지우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월급장이의 샐러리맨이란 어원이 솔트(소금)에서 나왔다니 옛날에는
소금이 아주 귀한 취급을 받은 모양이다.
광산안은 지하로 지하로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 나라의 고수 동굴처럼 많은 전설을 안고 있었다.
투명한 소금의 결정으로 만든 소금 샹들리아.
소금으로 만든 조각품도 많이 있었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지하 깊숙히 만든 소금 성당이었다.
바닥이 아주 단단한 대리석으로 만든 것인줄 알았더니
모두 다 소금으로 만든 대리석이었다고 하니 인간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지!
성당의 벽면에는 예수님의 생애를 소금으로 조각해 놓았는데
'가나안 혼인잔치' '최후의 만찬'등이 원근감 있게 잘 부조되어 있었다.
폴랜드 출신의 얼마전 돌아가신 요한 바오로 교황님의 모습도 크게 조각되어
있엇는데 아주 실물과 닮은 모습이었다.
무엇보다도 하일 라이트는 불빛이 완전 차단된 동굴속의 이벤트였다.
우리 일행이 그 방으로 들어가니 캄캄하여 긴장되었다.
천장 높은 곳에서 부터 조그만 불빛이 차례로 내려 오더니
아주 깊은 아래까지 연결되고 잔잔한 음악이 흘려 나왔다.
바로 '쇼팽'의 '이별의 곡'이었다.
"나의 깊은 맘, 들으소서...."
이렇게 마음으로 따라 불렸는데 왜 그렇게 감동스러운지.....
점심을 먹은 후 구 시가지와 바벨성등을 관광하고
알프스 산맥 타트라산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으며
긴 시간 동안 버스 여행이 힘든 줄도 모르게 달렸다.
달리는 차속에서 바라보니 하나 하나 그대로 그림엽서가 될 것 같았다.
군데 군데 양털을 파는 재래 시장이 있었지만
일정에 없는 일은 하지 않는 체코출신의 우직한 운전사는 그곳에서
기념품을 사고 싶어하는 우리의 바램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 운전사는 첫날 부터 우리와 함께 7박 8일을 하였는데,
가는 길목에 자기 집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우리의 짐을 하나하나 챙겨주는 믿음직한 남자였다.
(차속에서 찍은 타트라 산속의 경치라 사진이 흐리고
소금광산안의 사진은 수동으로 찍어 이곳에 올릴 수 없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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