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김훈 장편소설
출판사 해냄.
(2017.7.2~7)
김훈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2001년 발간한 소설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나는 몇 번이나 책을 덮고 울었다.
그만큼 그의 문장은 나를 소설속의 공간으로 끌고 가 함께 울고 웃게 한다.
2004년 이상 문학상을 받은 '화장'도 참 인상깊게 읽은 소설이었다.
화장이란 2중적인 의미(아름답게 꾸미는 화장, 죽음의 의식인 화장)를 담은 제목의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가란 언어의 요리사 또는 마술사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소설이나 에세이는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책을 사지 않는 짠순이지만,
그의 거침없는 문장에 반하여 '공무도하','캉의 노래', '남한산성' '흑산' 등을
사서 책장에 넣어 두었으며, 그의 대표작은 거의 빠지지 않고 읽었던 것 같다.
책만 들면 금방 잠속으로 빠져 드는 편이어서 책 한 권을 읽기가 힘든 편인데,
그의 문장력은 흡인력이 강하여 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져 거의 단 숨에 읽었다.
마장세와 마차세의 아버지 마동수는 한일합방이 일어나던 해에 서울에서 태어나
만주의 길림성과 장춘, 상해를 떠 돌고 해방 후 서울로 귀향하였으나 귀착을 못하고
떠돌다 한국전쟁을 만나고, 피난지에서 월남민 이도순을 만나 한 집에 살게 된다.
이도순은 흥남에서 피난오는 길에 남편과 딸을 잃어버렸는데 생사를 모른다.
생계수단으로 미군의 피묻은 군복 세탁을 하는 중에 마동수를 만나 마장세를 낳는다.
마동수는 여전히 바람처럼 떠돌아 다니다 허기진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두 번째 임신을 한 이도순이 낙태하려 갔다가 병원 창 밖의 여인들이 저녁 찬거리를 들고
집으로 가는 광경을 보고는 낙태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 낳은 아들이 차남 마차세다.
소설의 첫머리는 휴가를 나온 차남 마차세가 잠깐 외출을 한 사이 마동수는 생을 마감한다.
아내 이도순은 고관절이 금이 가서 시립병원에 입원중이어서 외로이 임종을 맞이한다.
마동수는 형 마남수를 따라 길림성으로 가서 한의사로 개업한 형의 권유로 상해의
의과대학에 입학하였으나 낙제를 하여 퇴학을 하고, 한인 망명자들의 자녀에게 한국어를
교습하였으며 그 때 설립한 '배달학원'은 하춘파 등 동지들의 도움으로 이끌어 나간다.
장남 마장세는 월남전에 참전하였으며 밀림지역에서 전공이 인정되어 무공 훈장을 받는다.
하지만 마장세는 가족 누구에게도 무공훈장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부상당한 동료를 밀림에서 사살하고 온 기억은 전 생애를 통하여 그를 따라다닌다.
그는 혈연과 인연의 연결이 두려워 제대후에도 귀국을 하지 않고 해외를 떠 돈다.
심지어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고를 받고도 동생에게 모든 걸 떠 맡기고 오지 않는다.
열 살 아래의 마차세는 대학을 다니다 군 복무를 하고 경제난으로 복학을 하지 않는다.
어렵게 직장을 구한 후 그의 오랜 친구인 박상희와 어렵사리 결혼하지만 곧 실직을 당한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박상희가 학원에서 벌어온 돈으로 생활을 하던 그는 택배 기사로 취직한다.
형의 고철 사업으로 연락된 군대 동료였던 오장춘의 회사에 들어가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들의 사업은 날로 발전하였으나 나중에 비리가 발각되어 결국 다시 길거리에 서게 된다.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를 시작으로 한국 전쟁을 거친 후 눈부신 산업 발전을 이룩한
한국의 현대사속을 살아온 민중의 삶을 그대로 눈앞에 보는 듯 현실감 있게 그려 놓았다.
마동수와 이도순은 바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대이며, 마장세 형제는 나의 이야기 같았다.
우리 세대는 일제의 압정과 전쟁의 아픔을 직접 격지는 않았지만 그 여파로 가난한 세상을
견디고 일어선 세대이며, 더 이상 후세들에게 가난과 전쟁을 물려 주고 싶지 않아 노력하였다.
지금 한국의 경제성장은 이 소설속의 마동수, 이도순과 같은 아버지의 세대와
전 후 베이비 부머 세대에 태어난 마장세, 마차세와 같은 아들의 세대의 노력의 결과이다.
전 후 가난한 시대에 태어난 우리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무척 많은 노력을 하였다.
50년의 짧은 시간에 이렇게 높은 발전을 할 나라는 아마도 지구상에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의 아버지 세대의 근검절약과 자녀에 대한 교육의 열성으로 경제 강국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소설가 김훈은 1948년 생이니 직접 일제의 강점기와 한국전쟁 직후의 생활을 겪어 보지
못하였을텐데, 어떻게 만주와 상해에서 유랑생활과 전후의 피난생활을 눈앞에 그린듯이
이렇게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정말 작가는 신처럼 전능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특히 월남전에서의 전투장면이나 베트남의 자연에 대한 글과 팔라우 섬의 마장세의 집의 묘사는
내가 마치 그곳에 있는 듯 실감나게 표현하여 소설을 읽는 즐거움에 푹 빠지게 하였다.
월남전에 참전하여 무공을 세운 후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해외로 떠도는 마장세의 모습에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악 공부를 포기하고 월남전에 참전하였던 큰 오빠를 떠 올리게 하였다.
내가 들었던 큰 오빠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 '별은 빛나건만' 등의 노래는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성악 콩쿠르에 나가 많은 상을 휩쓸었지만 오빠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자원하여 월남전에 참전하였고
오빠가 생명을 담보로 하여 보낸 미 달러가 우리 집안의 경제를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김훈의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여 때로는 건조하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그 건조한 문체가 미사어구를 동원하고 이리저리 비틀어 난해한 글보다 훨씬 많은 감동을 준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책속의 인물과 배경과 시대속에서 그들과 함께 안타까워하였으며,
감동을 받기도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하고, 마음 아파 가슴에 손을 얹고 누르기도 하였다.
역시 김훈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며 탁월한 글쟁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의 문장을 몇 줄 옮겨 본다.
.....아버지는 왜 집에 오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아버지는 왜 집에 오는 것일까? 그 두 가지의
의문이 동시에 떠 올랐다. 마차세는 그 어느 쪽도 알 수 없었는데, 그 두 개의 의문은 한 개의
의문인 듯 싶었다. 마차세는 아버지가 헤집고 다니는 세상의 가장자리가 떠 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가장자리를 넘어서 저쪽으로 아주 건너갈 것인지 망설이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마차세는 짐작했다. (p131)
.....헬리곱터는 저공으로 동북진했다. 우기의 산맥이 번들거렸고 시뻘건 강물이 남북으로 흘렀다.
발을 붙일 수 없는 산맥과 강이었다. 대원들은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헬리곱터의 그림자가 그 강물과 산맥위로 흘러갔다. 그림자가 실물처럼 보였고, 전투원을 싣고 가는
헬리곱터가 그림자의 그림자처럼 보였다. (p165)
.....마차세는 멀리서 아버지가 다가오는 듯한 환영을 느꼈다. 어느 변방을 겉돌고 헤매는지
두어 달 만에 한번씩, 겨울이면 새벽에 기침을 쿨럭이며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의 걸음걸이가
마창세의 걸음에 옮겨 와 있었다. 형은 아버지를 피해 다니다가 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인가.
사슬을 끊어야 하는데, 그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에 마장세는 결박되어 있었다. (p342)
공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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