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풍경소리(제 4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푸른비3 2017. 7. 9. 04:39

풍경소리

   -2017 제 4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 출판
(2017,6.20~29)

이상문학상수상작품집.




     *      *       *      *
오래동안 손에서 멀리하였던 대금을 꺼내 먼지를 닦고 연습을 해보려고 하는 늦은 오후,
동호인 카페모임의 카페지기님으로부터 상으로 무슨 책을 받고 싶으냐는 전화를 받았다.
내가 그동안 카페에 게시한 글이 제일 많아서 이번 첫 모임에서 상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쑥스럽고 겸연쩍은 마음에 문득 떠 오른 책의 제목이 바로 구효서의 '풍경소리'였다. 

이상문학상은 막연하게 소설가를 꿈꾸었던 20대 초반,
제 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김승옥 '서울의 달빛 0장'을 시작으로 해마다 서점에 출시되면
빠지지 않고 구매하였던 책인데,  더 이상 내가 글을 쓸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뜸하게 구매하다가 요즈음은 도서관에서 눈에 뜨이면 빌려보는 정도가 되었다.

이 책을 받고도 다른 여러가지 일들이 겹쳐서 미루다가 읽게 되었는데
역시 상을 받을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독후감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문학책을 너무 책을 멀리하였구나.'  자괴감이 들었다.
읽고도 작가가 우리 독자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의도가 짚히지 않았다.

그의 자선 대표작 '모란꽃'이 더 쉽게 다가오는 듯,  상황이 마음속에 그려졌다.
수상 소감과 문학적 자서전, 동료 작가 이순원의 작가론을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문학 평론가 장두영의 작품론을 읽고서는 아무래도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던
부분이 많은 듯 하여 며칠 시간을 두고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구효서는 1957년 인천 강화에서 태어나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마디'로 등단하였으며,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노을은 다시 뜨는가',  '도라지꽃 누님'
'랩소디 인 블루', '늪을 건너는 법', '비밀의 문' 등 많은 소설을 쓴 역량있는 작가다.

이번 수상작 '풍경소리'는 소설적 주제의 해석에 중량감을 높일 수 있게 되었고,
그 창작 기법과 문체의 실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룸으로써 높은 소설적 성취에
도달한 작품으로, 인간의 삶과 그 운명의 의미를 불교적 인연의 끈에 연결시키면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소설적 감응력을 높혀준 소설이라고 하였다.

이 소설은 주인공 미와를 1인칭의 시점과 3인칭의 시점으로 서술하여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밑줄을 그어가면서 다시 읽어야만 하였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라고 적으니 어딘지 머쓱.이라고
주인공 미와는 노트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쓰는 노트에다 글을 적는다.

창살문에 바깥의 풍경 그림자가 비치는 게 좋아 촛불을 켜고 글을 적는다.
주승은 미와에게 형광등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있을진대 켜지 않을 까닭이
없잖아요,  절이라고 불 다끄고 자고 그러지는 않아요, 하고 말한다.
주승은 미와를 피자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의 글을 쓰는 소설가라고 생각한다.

미혼모 엄마에게서 태어나 어린 시절 엄마의 부재동안 블록놀이를 하였던 미와는
전국 레고 블록 쌓기 대회 최연소 우승자가 되고, 나노블록회사에 특채로 채용된다.
외로운 환경에서 성장한 미와는 혼자 감당했던 외로움과 함께 엄마를 향한 반발심도
커졌고 집을 떠난후 엄마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을 듣지만 태연한 척 슬퍼하지 않는다.

휘핑크림 전문가 였던 엄마는 60살이 넘은 나이에 연하의 미국인을 만나 미국으로 떠났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키웠던 고양이 상철이의 울음소리를 엄마의 남자 전화를 통해 들은 후
미와는 항상 그 고양이 소리의 환청에 시달리고 그 환청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불사를 찾는다.
모든 소리에서 차단되었을 때 풍경소리는 들리고 고양이의 울음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겉으로는 슬퍼하지 않지만 사실은 성불사의 좌자에게 엄마 이야기를 함으로써 위안을 받는다.
그런 미와를 위해서 좌자는 음식을 내오고 그녀는 걸신들린 듯 허겁지겁 먹어 치운다.
마음속에 쌓여 있던 쓸쓸함과 정신적 허기를 음식을 통해서 채우게 되고 나중에는 눈물까지 흘린다.
애써 슬픔을 외면하려는 미와의 마음의 열게 한 것은 좌자의 소박한 음식과 따뜻한 경청이었다.

이 소설의 첫 장면은 혼자 있을 수 밖에 없는 풍경소리가 들리는 성불사의 객실이었다.
그 다음 소설이 전개되면서 공양간으로, 성불사 마당으로 나가 타인과 대화를 나누게 되고,
소설의 중반에 이르러서 부처님의 말씀이 들리는 대적광전으로 나가게 되고,
산사의 인근 마을로 나가고, 마지막에는 점차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과정으로 진입된다.

함씨와 영차보살이 나란히 걷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거대한 세상앞에 한없이 미약한
인간의 존재를 생각하며, 막중한 생의 무게를 묵묵히 버티어내는 인간이라는 인식을 한다. 
영차보살을 통하여 거친 생의 파도를 묵묵히 견뎌냈던 엄마를 인정하고 그리워하며 애도한다.
소설의 결말에는 깨달음을 구하는 길이 엄마가 걸었던 인간의 길과 다르지 않다고 인정한다.

풍경소리를 주승은 퐁탁이라고 하고 수봉스님은 금탁, 첨마, 경쇠, 풍령이라고 한다.
작가는 그 울림의 소리를  풍탁, 띵강띵강, 땡강댕강....다양하게 표현하였으며,
종이위에 연필로 글쓰는 소리를 슥삭슥삭 작은 톱소리가 난다고 하였고,
팽나무 이파리 소리. 쓰르라미 소리, 도마질 소리, 목탁치는 소리 등 많은 소리를 표현하였다.

....별을 스치운 바람이 객실 처마의 풍경을 흔드나?  객실에 엎드려 촛불을 끌어당기고,
풍경소리를 듣거나 풍경소리에 대해 쓰면서, 나는 창호지에 비치는 풍경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달빛에 젖은 창호지는 푸르렀고 풍경의 검은 윤곽은 또렷했다.  별을 스치운 바람이
검은 풍경의 그림자 곁으로 다가와 벌나비처럼 맴돌았다.  풍경소리는 풍경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바람이 묻혀온 별 소리일까...... (P24~25)

.....하여튼 상철이 소리가 아니 소리를 들어보려고, 그 소리 아닌 소리에 집중헤 보려고,
나는 잘 구워진 차파티 지질의 노트를 샀다. 그랬을 거야.  노트를 산 것은 정말 잘한 이이었다.
이 노트 무지 맘에 들어.  아무거나 적으면서 스삭스삭 연필 지나는 소리에 귀를 기우리는 것도,
쓰면서 풍경과 바람과 새소리를 듣고 주승의 목탁소리와 수봉스님의 염불소리를  떠올리는 것도,
공양간의 도마질 소리를 적는 것도 맘에 들어.....(p32)

.....스삭스삭 옆에다가 미와는 '내가 무언가를 적을 때'라고 썼다. 스와와와에는 '팽나무 이파리 흔들릴 때',
쓰쓰쓰스에는 '쓰르라미가 두개골을 뚫을 때, ㅋㅋ', 탁탁탁탁에는 '좌자가 도마질할 때',
똑독똑똑에는 '소심한 주승이 목탁 칠 때'라고 나란히 적었다. 뜩뜩뜩뜩에는 '수봉스님 목탁 칠 때'라고 쓰고
오이오이에는 '수봉스님 염불할 때' 라고 적었다. (p42)

구효서는 이 작품에서 많은 의성어를 넣어서 글을 썼는데 그 의성어들이 풍경소리와 같이
모든 소음들이 사라질 때 더 우리에게 명확하게 들리는 자연의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죽음앞에서 마음의 상처를 안은 미와가 위안을 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가을빛이 영롱한 산사와 인근 마을의 풍경이 마음속에 조용히 그려지는아름다운 소설이었다.

구효서의 자선 대표작 '모란꽃'도 좋았으며, 우수상 수상작인 5편의 소설도 모두 좋았다.
특히북한의 아파트를 분양받는다는 설정의 윤고은의 '부루마블에 평양이 있다면',
신선한 감각을 갖춘 역량있는 작가 이기호의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
최저인생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황정은의 '웃는 남자'모두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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