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방

[스크랩] 북한산 족두리봉.

푸른비3 2012. 9. 17. 05:17

2012.9.16.일.

 

북상하는 태풍<산바>의 영향으로 울릉도 여행이 취소되고

갑자기 합류하게 된 북한산 족두리 봉 산행.

태풍전야의 고요함을  예고하듯 하늘은 참으로 고요하다.

 

그림같은 구름이 걸려있으나,

대기는 깨끗하여 가시거리가 높아,

발아래 집들이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고,

남산타워와 63빌딩, 서울을 감싸고 도는 한강,

저 멀리 인천바다까지 보일 정도로 환하다.

몇번이나 산을 오르다 발길을 멈추고 조망을 즐긴다.

 

그런데....그런데.....

열심히 찍은 사진이 나의 실수로 다 날라가 버렸다.

기계치인 나는 매번 아라에게 저장을 부탁하였으나,

어제는 어설프게 내가 저장하다가 실수하여 삭제해 버렸다.

쓰레기통을 다 뒤져 보았으나 파일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쓰레기통의 파일마저 다 영구히 삭제되어 버렸다.

긴장으로 목과 얼굴에 땀이 진득하게 베였다.

 

그렇게 아름다운 하늘과  오밀조밀 멀고 가까운 풍경을 담아왔는데.....

다른 친구들은 나만 믿고 사진도 안 찍었는데....

한동안 멍하니 넋을 놓은 듯 앉아있었다.

아름다운 족두리봉의 모양과 손에 잡힐 듯 한 원경과

친구들의 추억을 다 날려 버리다니.....

자책으로 마음이 쓰라렸다.

하는 수 없지.....그것보다 더 큰 것도 잃고 살았는데....

스스로에게 위로를 하였지만 미련을 버리기가 쉽지가 않다.

 

   *      *     *     *

불광역에서 용성, 상복, 종필, 순자 친구를 만나  구기터널방향으로 올랐다.

탕춘대능선으로 산행을 잡았으나 가까이 두고도 한번도 오르지 못한

족두리봉을 오르고 싶다는 내 제안에 친구들은 기꺼이 응해 주었다.

쉬운 코스를 택하여 올랐으나 역시 만만하지가 않았다.

 

암벽타기는 항상 두렵지만 친구들의 도움이 있기에 용기를 냈다.

몸이 불편하여 그동안 산행을 쉬었던 순자가 오늘은 몸이 가볍다.

항상 날쎈 다람쥐같은 용성이는 몸이 둔한 나를 위해 걸음을 멈추고.'

미국에서 돌아온 상복이는 역시 북한산이 있는 서울이 좋다고 하고,

소림사 스님같은 종필이는 생각외로 무섬증이 많다.

 

5명뿐인 오붓한 산행.

군데군데 쉬면서 막걸리도 나누고 정담도 나눈다.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이 쉴새없이 부니 마음이 상쾌하다.

 

딸 잘두면 비행기타고 미국간다더니,

정말 상복이는 딸을 잘 둔 덕에 5개월이나 미국일주를 하고 왔다.

견문을 넓히고 왔지만 역시 서울이 가장 좋단다.

정말 세계의 어느 수도가 이렇게 아름다운 북한산과

넉넉한 품으로 도시를 감싸안고 흐르는 한강보다 넓은 강을 끼고 있으랴.

암만 봐도 서울은 축복받은 곳에 자리를 잡은 명당이다.

 

사모바위에서 바라만 보던 족두리봉은 마치 한 송이의 연꽃 같았는데

속살을 들여다 보니 수많은 화강암과 멋진 자태의 소나무 자생하고 있다.

커다란 암벽위에 위태롭게 뿌리를 내리고 선 소나무는 경이롭기가지 하다.

건너편 검은 윤곽선을 두른 누르스름한 바위는 그야말로 동양화다.

정선의 그림들은 바로 이런 바위산을 보고 그린 그림이구나.

 

오붓하게 점심을 즐기고 친구들이 이야기 나누는 사이,

나는 비스듬한 바위위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 본다.

등아래 단단한 바위의 촉감이 좋다.

귓가를 스치고 흐르는 바람의 촉감도 좋다.

아, 이런 느낌을 즐기기 위해 우리는 산을 오르는구나.

 

하산길도 처음으로 가보는 길이다.

용성이는 쉬운 흙길을 감춰놓고 자꾸만 바위길로만 이끈다.

덕분에 순자는종복이와, 나는 용성이와 짝을 이루어

곧 아래로 곤두박질 칠것같은 비스듬한 바위길을 내려온다.

 

짝이 없는 종필이는 앞서 내려가고,

나는 용성이의 팔을 단단히 끌어 안고,

순자는 상복이 팔짱을 끼고 합동 웨딩마치를 한다.

ㅎㅎ내가 앞서가는 종필에게

종필아, 너는 오늘 주례사가 되어라.....

 

몸을 뒤로 제끼고 다리를 곧게 펴고 11자로 걸어라 하지만,

나는 자꾸만 몸을 앞으로 수그리고 무릎도 펴지지 않는다.

가르쳐주는대로 하지 않는다고 용성이는 애인 안하겠다고 큰소리친다.

웨딩마치를 올렸는데 하루가 못가고 파혼당해 버렸다.ㅎㅎ

 

이렇게 알콩달콩 즐거운 추억을 다 날려버렸다니....

다음에 다시 한번 꼭 이 코스를 택하여 산행을 하고 싶다.

오늘 같이한 친구 순자, 종필, 상복, 용성아. 고마워.

그리고 소중한 기록을 날려버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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