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존 오브 인터레스트

푸른비3 2024. 7. 24. 05:01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4. 7. 22. 월. 오후 8:25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뜻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둘러싼 40㎢ 지역을 일컫는 명칭입니다.

이와 더불어 나치 친위대가 사용했던 사악한 의도가 담긴 완곡 어구 중 하나라고 하네요. 당시 나치는 해당 지역의 농지를 몰수하고, 노동력을 강제 착취하는 등의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를 뜻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펀 글)

 

    *       *      *

장마비가 오락가락하는 지난 월요일.

마산에 사는 아들이 카톡을 보내왔다.

영화<존 오브 인티레스트>를 엄마에게 추천한다고 하였다.

얼핏 열어보니 '아우슈비츠'. '잔혹', 이런 단어가 있었다.

 

나는 오래전 여행사의 페키지 상품으로 폴란드를 여행하면서

아우슈비츠를 방문하였고, 유태인을 학살한 가스실. 화장하던 화로.

그곳에 진열된 학살된 유태인들의 유믈을 보고 구토를 느껴

도중에 밖으로 나와 잔디밭에 앉아 일행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들에게 전화하여 나는 잔혹한 영화는 싫어하는데,

왜 이 영화를 추천하느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걱정하는 잔인한 장면은 나오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하면서

역사의 무게와 인간의 존엄성. 인간 내면의 갈등을 잘 다루고 있다고 하였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장르는 따뜻한 휴머니티를 느끼게 하는 영화.

달달한 연애의 감정을 추억하게 하는 영화. 

내가 가보지 못한 지역에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접 체험하게 하는 영화였다.

 

신체의 나이와는 달리 감정은 여전히 소녀적 감성에 머물러 있어.

끔직한 장면은 눈을 꼭 감고 어서 그 장면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갑자기 화면에서 누군가 사고를 당하면 나도 모르게 "어머나~!" 비명이 나와

옆에 앉은 다른 사람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였다.

 

아들이 추천한 영화이니 슬그머니 호기심이 생겼다.

6월 초부터 상영하였으니 거의 막을 내릴 시기였다.

영화관 검색을 해보니 집근처는 롯데 타워시네마였다.

그것도 하루 한 두 차례뿐이어서 오늘이 아니면 놓칠 것 같았다.

 

영화의 시작은 오래동안 화면은 어두운 상태로 정지되어 있고,

대신 어두운 상태에서 분간하기 어려운 소음이 들렸다.

이건 뭐야?.... 하는 마음으로 화면을 주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이 밝아지면서 강가에서 소풍을 즐기는 모습이 나타났다.

눈부시게 환한 햇살 아래 반짝이는 강물.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행복한 한 가정의 일상이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소장인 루돌프 회스와 그의 아름다운 아내 헤트비히.

그리고 5명의 자녀들은 바로 담장너머로 수용소가 있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아니, 사실은 간간히 들려오는 수용소에서의 총살하는 소리.

죽어가는 자들의 비명을 애써 모른척 태연한 척 할 뿐이다.

 

2차 대전 중인 1943년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삶은 평온하고 중산층의 모든 것을 누리면서 살고 있었다.

정원 가꾸기는 좋아하는 아내는 담장 너머의 참상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포도넝쿨을 올리고 채소를 기르며 화사한 꽃을 가꾼다.

막내를 안고 정원으로 나가 꽃구경을 하며 행복한 일상을 즐긴다.

근처에 사는 독일군의 아내들을 초청하여 정원을 자랑하며

아이들은 햇살 가득한 풀장에서 수영을 즐기며 서로 친목을 다진다.

 

담장 너머의 수용소의 처참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으나

막내의 울음 사이에 들리는 희미한 비명 소리.

발소리에 묻히는 총살당하는 소리 등 귀로는 들리는 소음과

굴뚝으로 솟아오르는 시체를 태우는 연기등은

수용소의 처참한 광경을 짐작하게 한다.

 

너무 잔잔한 장면들이어서 살짝 지루하기도 하고

(내가 감독의 의도를 완전 이해하지 못한 탓)

깜빡 졸기도 하여(영화관 오기 전 친구들의 모임이 있어서

배불리 먹고 소주까지 한 잔하였던 탓)

놓친 장면도 많았지만, 분명 여러 영화상을 거머쥘만한 영화였다.

 

타인의 고통에는 전혀 공감을 못하는 회스이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계단에서 구토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도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은 갖고 있는 듯 하였다.

(그는 자신은 공무원으로서 할일을 충실히 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여,

24시간 쉬지 않고 유태인을 학살할 수 있는 화장터 디자인을

승인하고 성과를 올려 진급하기에 이른다.)

 

마지막 화면도 첫화면과 같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화면에

약한 비명소리. 저항하는 소리. 총소리 등 기분 나쁜 소음만 한참 들리게 하였다.

이 영화는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이 동명 소설을 각색하여 

홀로코스트의 가해자의 시선으로 소설과는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었다. 고 하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시대만 배경은 다르지만 바로 현재의 한국과도 같은 상황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 사고등을 내가 직접 당하지 않았다고

다행스러워하면서 그들의 고통과 상황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특히 빈부격차가 심한 한국의 현실에서 나보다 어려운 여건의 이웃을

애써 외면하고 살고 있지 않았는가 하고 반성하게 하였다.

아들이 내게 이 영화를 추천한 이유가 좀 더 이웃을 돌아보고

어려운 이웃의 처지를 공감하며 함께 극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가?

 

 

 

풀장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루돌프 회스.

 

영화의 첫 장면.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아래 강변에서 소풍을 즐기는 가족들.

 

자신이 가꾼 꽃밭에서 막내를 안고 행복해하는 아내 헤트비히.

 

텃밭을 자랑하는 헤트비히.

 

담장 너머로 보이는 수용소

 

다정한 아빠이자 남편인 루돌프와

그의 가족의 식사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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