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8. 일.
전부터 가고 싶었던 배론 성지로 가는 날은
하늘은 맑고 햇빛은 누부실 정도였으나,
엊그제 내린 눈으로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어렵게 부탁하여 약속을 한 날이라 연기도 못하고 찾아갔더니
채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어 손도 시렵고 미끄러웠다.
먼저 최양업신부 기념성당에 들어가
이곳을 찾아오게 해 주신 주님게 조배를 하였고,
황사영 백서토굴과 최초의 신학당인 성요셉 신학당을 탐방하였으나.
최양업 신부님의 묘소로 오르는 길이 미끄러워 중도에 포기하였다.
배론(舟論)성지는 원주교구 소속 제천시 봉양읍에 있으며
1800년대부터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온 교우들이 모여
형성된 오래된 교우촌으로, 이 마을계곡이 배의 밑창을
닮았다하여 이름 붙혀진 성지이다.
배론에는 황사영 백서 토굴.
성요셉 신학당.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묘 세가지 보물이 있다.
황사영 백서 토굴은
황사영 알렉시오가 1901년, 2월부터 9월까지 지냈던 토굴로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황사영은 옹기굴로 가장한 토굴
속에 머물며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편지를 썼던 곳이다.
가로 62센티. 세로 40센티 흰 명주천에 세필로 13384자를 썼으며,
조선교구릐 처한 현실과 도움을 바라는 내용의 편지였는데,
중국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발각되어 압수당하였다.
이 사건으로 황사영은 서소문 박에서 능지처참 당하였고,
그의 아내 정난주(제주도), 어머니 이윤혜( 거제도),
두 살된 아들 황경한(추자도) 등 가족 모두가 귀양을 갔고,
현재 황사영백서는 바티칸 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성요셉 신학당은 1855년 프랑스 선교사 메르스트 신부에 의해 설립.
교우촌의 회장 장주기 요셉이 자신의 집을 신학당으로 봉헌하였다.
신학 교육은 라틴어과와 수사학 철학, 신학을 가르쳤다.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가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두 분은 1866년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1821~ 1861)의 묘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사제가 된 최양업 신부의 묘.
그는 1836년 12월 김대건, 최방제와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로 유학을 가서 신학 교육을 받고 1849년 사제품을 받았다.
1861년 과로로 문경에서 선종하였고 당시 신학교가 있던 이곳에 묻혔다.
국사 시간에 배운 황사영 백서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을 사 보았고,
얼마전 제주도에 건립중인 정난주 성당에 후원금을 보냈으며
영화 <탄생>에서 김대건이 최양업에게 어머니 순교 사실을 듣고
같이 울었던 나였기에 이번 배론 성지 방문을 참 뜻 깊은 순례였다.
배론성지 안내판.
눈 내린 뒷날이라 몹씨 추운 날이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념 성당.
성당 입구의 최양업 동상.
성모자상.
성당의 내부.
스테인드글라스-김점순 마리 테레시타 수녀.
십자가의 길. 14처.
최양업 조각공원.
성당의 모습이 배의 형상을 연상.
설명판.
최양업신부님 묘소 가는 길.
배론 신학교.
배론 신학교.
신학교 내부.
황사영기념관.
황사영 순교현양탑.
황사영 토굴.
성요셉성당 입구.
무명 순교자의 묘.
성요셉 성당은 문이 잠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