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6. 수.
몇 달 전 우연히 가톨릭 주보에서 '한국의 산티아고, 버그내 순례길'을 읽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걸어보고 싶었던 그 길을 오늘 혼자서 다녀왔다.
먼저 신리성지에 도착하여 순교미술관에서 김대건 신부님의 신부서품식과
5 성인의 영정화와 순교 기록화를 보고 화살 기도를 드린 후 출발하였다.
(신리성지 포스팅은 따로 하였다.)
버그내 순례길은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인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인
솔뫼성지에서 부터 시작하여 충남 최초의 본당인 합덕성당,
세계관개시설물 유산 합덕제, 천주교 박해시 처형지였던 신리성지를
잇는 13.3 Km의 순례길로 2016년 아시아 도시경관 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합덕 장터의 옛 지명인 버그내 순례길은 솔뫼성지까지 이어지는데,
나는 오늘 서울로 돌아가야 했으므로 합덕성당까지 7.5Km만 걷기로 하였다.
방향치, 길치 더구나 네이버지도도 잘 보지 못하는 내가 과연 혼자서
순례길을 갈 수 있을까?....걱정도 되었지만 외국에서 길찾기도 아니고
모르는 길에서 한국말로 물으면 되고, 그것도 어려우면 택시를 타면
되겠지..... 생각하고 씩씩하게 출발하였다.
버그내 순례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만 앞섰을 뿐 미리 길에 대한 정보도,
사전 공부도 하지 않고 길을 나선 셈이었다.
(게음름탓으로 제대로 공부할 틈도 생기지 않았다.)
씩씩하게 출발했지만 처음부터
신리성지 근처에 있는 이정표가 나를 헷갈리게 하였다.
그 이정표는 내포문화숲길 이정표인데 합덕성당을 가르키고 있었으니
그곳으로 갈 뻔 하였는데 네이버 지도를 보니 직진 방향을 가리켰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는 하얀 두루마리 화장지같은 건초더미가 동그랗게
말려 있고, 군데군데 어제 내린 비로 논고랑에 물이 고여 있었다.
큰길로 들어서자 곧장 버스 정류장이 보였는데 그곳을 그냥 지나쳤다.
정류장 곁에 붙어 있는 이정표를 놓쳐 버린 셈이었다.
차도를 따라 한참을 가다가 네이버 지도를 보니 다른 방향이었다.
다시 걸음을 되돌리니 초입부터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과연 합덕성당까지 버그내길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마을 안으로 들어선 길은 더없이 순하고 편안한 길이었다.
입동을 지난 11월 중순의 날씨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등으로 가을 햇살이 포근이 나를 감싸 안아 이마에 땀이 살짝 베였다.
붉은 황토 밭고랑에는 파와 배추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고
나뭇잎이 다 떨어지 감나무에 붉은 감이 조롱조롱 매달린 모습,
황금빛 은행잎이 수북히 쌓인 가로수길,
가을햇살에 붉게 익어가는 사과나무.
몇 알 남은 노란 모과나무를 바라보며 걷는 길은
혼자라도 전혀 외롭지 않았다.
더 이상 길을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 네이버지도를 바라보며 걸었는데,
어디에서 길이 어긋났을까?....지도의 파란 커서는 분명히 정확한데
길이 없어 내가 스스로 길을 만들어서 앞으로 나가야만 하였다.
남의 밭고랑을 건넜는데 전깃줄로 울타리를 쳐 놓아서
혹시 이 전깃줄에 전류가 흐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갑게도 저 앞의 높은 탑에 <버그내길> 이정표가 페인트로 적혀 있었다.
주인없는 빈 집을 지키는 개는 나를 보고 왕왕 짖었고, 나른하게 낮잠자던
야옹이는 기지개를 늘어지게 켜고 살금살금 내 앞을 지나 길을 건너 갔고,
여물을 먹던 축사의 젓소들은 방울소리 딸랑이며 일제히 나를 바라 보았다.
숲길을 지날 때 푸드득~ 날아 오른 산비둘기 소리에 놀라 걸음을 멈추었고,
포르륵 날아가는 참새떼들의 윤무는 나를 미소짓게 하였다.
합덕제의 흔적이 남아 있는 텅빈 논바닥 곁으로 저수지의 물이 흐르고
등에 땀이 살짝 베일 무렵 저 멀리 성당의 첨탑이 보여 안도의 숨을 쉬었다.
성당의 참탑위로 하얀 구름이 흐르는 모습을 바라볼 때 충만한 마음이었다.
성당 가까이의 노란 유채꽃이 환하게 피어 나를 반겨주는 듯 하였다.
멀리 산티아고를 가지 않고도 나는 이 버그내 순례길을 걸음으로써
충만함과 함께 위로와 은총을 받은 느낌으로 성체조배를 하였다.
* * *
이 표지판은 내포둘레길 표지.
나는 버그내 순례길을 가고 싶어서 게속 직진해야 했다.
버그내 순례길은 이런 물고기 표지판을 따라서 가야한다.
신리 성지에서 솔뫼성지까지는 13. 3 Km
추수를 끝낸 들판.
들판 너머로 보이는 마을. 궁리보건지소.
솔뫼성지로 가는 이정표가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도 길치인 나는 바보스럽게도 이 큰길을 계속 따라 거는줄로 알았다.
저 만치 보이는 정류장에 표지판이 있었지만 보지 못하고 계속 큰 도로를 따라 걸었다.
이 보스정류장에
오른쪽으로 커브를 돌아야했다.
잎은 다 떨어지고 붉은 감만 조롱조롱.
전봇대에 걸린 표지판, 무척 반가웠다.
등뒬 따스한 가을 햇살이 나를 포근히 감싸 안아 주었다.
마을 앞 싱싱한 농작물이 자라는 모습도 나를 위로해 주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느릿느릿 걸었다.
이곳에서 또 길을 놓치고 계속 걸었다가 다시 되돌아 가야했다.
되돌아가는 길도 행복하기만 하였다.
이곳은 개인 사유지인 것 같았는데....
네이브지도는 이 길을 가르쳤다.
이곳은 남의 밭이었고 들어오지 못하고 전깃줄로 둘러 쌓아 놓아서 난감했다.
밭을 넘으니 반가운 이정표가.
왼쪽으로 길이 있었는데 내가 잘 못 보았을까?
아무튼 다시 제대로 된 길을 찾았으니 반가웠다.
놓치지 말고 이정표를 잘 보아야지....
우사의 젖소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이 이정표의 뜻을 알지 못했다. (띄워쓰기. 점 이 있었다면.....)
(원시원. 원시보 생가터)
이곳에 와서야 두 사람의 이름인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가터의 우물터.
이곳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물과 비스킷으로 목을 축였다.
지금은 우물은 사라지고 샘터 자리만 있었다.
마을의 교회.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이 중학생 시절 보았던 영화 <스잔나>를 생각나게 하였다.
내 뒤에서 차를 멈추고 잠시 기다렸다가 가는 자동차.
인삼밭인가?
사과가 발갛게 익어가는 모습도 나를 충만하게 하였다.
푸드득~ 산비둘기가 날아 올라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참새들도 포르륵 날아 나무를 옮겨 다니는 모습도 나를 웃음짓게 하였다.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풍경.
합덕제 중수비.
멀리서 뒤돌아 본 합덕제 중수비가 세워진 모습.
이곳에서 내포 둘레길과 버그내 순례길이 마주친다.
저 멀리 합덕성당의 첨탑이 보였다.
합덕제는 저수지였는데 지금은 논으로 변하였다.
왼쪽의 물길이 합덕제의 흔적을 보여주는 듯 하였다.
마치 천국으로 가는 길을 걷는 기분으로 흥얼흥얼 노래부르며 가볍게 걸었던 길.
마지막 버그내 이정표.
날씨는 너무나 포근하여 마치 봄 같았다.
놀랍게도 입동이 지난 11월 중순에 이렇게 노란 유채꽃이 나를 반겨주다니....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
모과나무.
드디어 도착한
합덕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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