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스러운 고백
-박완서 산문집
문학동네 (2019.6.5. 1판 5쇄.)
(2022. 2. 8~10)
박완서 작가(1931~2011)는 누구나 다 좋아하는 작가이며
그의 책 한 두권 읽지 않은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의 소설을 좋아하여 등단작<나목>을 비롯하여
<엄마의 말뚝> <친철한 복희씨> 등대부분의 그의 소설을 읽었다.
이번에 자양한강도서관에서 대여해 온 <쑥스러운 고백>은
1977년 출간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평민사)를 재편집하였으며,
1부.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2부. 쑥스러운 고백
3부.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로 구성되어 있었다.
1970년 불혹의 나이 40에 등단하여 2011년 영면에 들기까지
40여 년간 어쩌면 이렇게 많은 작품을 썼을까? 놀랍기만 하다.
5남매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의 위치에 있으면서
한 여인의 따뜻한 시선으로 쓴 글들은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었다.
박완서의 글들은 기교를 부리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일들을
사실 그대로 쓴 글들이었기에 더욱 쉽게 다가왔고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미처 생각치 못하였던 타인에 대한 배려와 약자에게
베푸는 따뜻한 시선은 나를 깨우치게 하고 마음을 다독이게 하였다.
1등만 중요시하는 경쟁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소외된 자. 사회에서 배제된 약자에게 보내는 따뜻한 격려의 글이었다.
'여성의 인간화'. '항아리를 고르던 손' '여권운동의 허상'. '쑥스러운 고백'
등은 남성위주의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역할과 위치를 잘 꼬집어 주었다.
'우리 동네'. '도시 아이들'. 내 어린 날의 설날, 그 훈훈한 삶'의 글은
반세기 전의 실제 상황임에도 마치 오래 전 아득한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머리털 좀 길어봤자'. '참 비싼 레테르도 다 있다'. '지붕 밑의 남녀평등'은
70.80년대의 우리 사회를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고 약자를 격려하는 글이었다.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는 작가가 낮에는 가족을 위해 주부의 일을 다 해내고
남편이 잠든 잠자리 곁에서 글을 쓰는 모습을 눈 앞에 보는 듯 그려 놓았다.
섬세한 심리묘사 뿐만 아니라 상황을 눈 앞의 영상을 보듯 묘사력이 놀라웠다.
그녀의 머리속에는 얼마나 큰 용량의 두뇌가 들어있는지 부럽기만 하였다.
아래의 글들은 특히 메모하고 싶은 내용들을 발췌하여 적어 보았다.
도시인의 탈공해도 중요하고 정서생활도 중요하지만 남이 목숨을 걸고
하는 행동을 바로 그 옆에서 취미 삼아 오락 삼아 즐긴다는 건 목숨 걸고
하는 행동에 회의를 품게 되고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면 어쩔 것인가 (58)
사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재치박사라면 사는 것이란 싸움질이라고,
극히 재치 없는 살벌한 대답을 할 것이다.
우선 일과의 싸움, 어제의 노고를 無로 돌리고 밤사이에 정확하게
제자리로 돌아와 쌓여 있는 여자의 일, 일, 또 일.(중략)
어젯밤에 분명히 다 끝낸 줄 알고 자이에 들었건만
아침이면 정확이 어제 아침만한 부피로
돌아와 쌓여 있는 일과의 영원한 일진일퇴의 싸움질, 시시포스의 신화는
바로 다름아닌 여자의 이 허망한 노고를 이름이렷다. (60)
적어도 사람에게 상류니 하류니 하고 등급을 매기려거든 좀 제대로 매겨라.
그저 돈만 있으면 상류냐? 사람에겐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품성이란 게
정신이란 게 따로 있는 법이고 이게 올바로 박히고 이게 고상해야
사람값이 나가 상류고 나발이고 되는 거야 하고.(64)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행동의 기준을
옳고 자연스러운 데 두기보다는 무엇이 더 이로운가에 두는 게
당연한 일로 되었고 그런 행동이 보다 세련된 행동으로 보이니
끔찍한 일이다 (98)
그러나 지도자만으로 구성된 국가사회가 있을 수 있을까. 양식을 갖춘
근면한 국민의 한 사람이란 것도 충분히 떳떳한 일이다. 자기에게 당면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회해히고 탐구하고, 이웃과 따뜻이 사귀고
이해하는 사이에 지도적 인품조차 자연히 갖추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153)
가장 나쁜 것은 남이 나를 얕잡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얕잡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참하게 하는 건 환경이나 남이 아니라 제일 먼저 자기입니다.
자기를 아끼고 사랑하면 따라서 자기의 일도 사랑하게 되고 일하는 데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기쁨이 없이 하는 노동이 비천한 것일 뿐, 이 세상에 비천한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왜 자기와 자기의 일을 비천하게 만들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듭니까? 긍지와 오기를 가지십시오, 같은 일을 긍지와
오기를 가지고 하는 것과 죽지 못해 하는 식으로 억지로 하는 것과는
그 능률에도 차이가 나지만 일에 따르는 정신적인 보상-노동의 기쁨에
있어서도 서로 비할 바가 못 될 줄 압니다.(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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