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의 영화-공선옥 소설집
창비(2019.8.25 초판 1쇄 발행)
(2022. 3. 5~7)
공선옥의 소설책 읽기를 참 좋아하였다.
오래 전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산문집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등을 읽었는데,
근래에는 그녀의 작품을 거의 읽지 못하였다.
이번에 자양한강도서관에서 공선옥의 <은주의 영화>라는
소설집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으로 대출하였는데,
사실 제목이 조금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주가 보았던 영화? 은주가 제작한 영화?
아니면 은주가 출연한 영화? 혼자서 마음가는대로 상상하였다.
책 앞 날개에 공선옥의 사진과 함께 프로필이 적혀 있었다.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 비평으로 작품활동.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내 생의 알리바이> <멋진 한세상>등이 있으며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공선옥의 소설은 대부분 한국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파헤치고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을 표하는 따뜻한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여성의 운명적인 삶과 모성애를 뛰어난 구성력으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공선옥 소설속의 인물들은 집안에서나 사회에서나 인정받지 못하고
뒤틀어진 운명에 시달리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2010년~ 2019년 사이에
문학동네, 실천문학. 창작과 비평. 문학들 등에 발표한
행사작가. 순수한 사람. 오후 다섯시의 흰 달. 은주의 영화. 염소 가족.
설운 사나이. 어머니가 병원에 간 동안. 읍내의 개 등 8편이 수록되어 있었다.
작가의 말에서 '행사작가'를 쓸 무렵 나는 글을 쓰지 못하고
글하고는 상관없는 어떤 행사를 '뛰고' 있었고
행사 후에 원고료보더 많은 '행사비'를 받았다고 하였는데,
소설속의 주인공 작가 K도 글을 쓰는 대신
맛집 관광 홍보행사 대행업체에서
특별 게스트로 초청되어 미리 현지 답사를 하는 과정에서
구례에 정착한 친구 L.
담양 대덕에서 어울려 술을 마셨던 H와 H의 애인,
현실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순수한 사람'은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15살 남자 아이를
양육하는 여자 오영희의 이야기였는데,
아이의 아버지로 부터 양육비를 청구하는 소송을 걸었으나,
법정에서 오히려 아이에게 아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만 키워줬다는
핀잔을 받고 원하였던 양육비는 받지 못하고 모멸감만 가득 안게 되었다.
잘 다니던 휴대전화 부품회사에서 갑작스레 해고 통지를 받고,
도움을 청할 마음으로 시골에 사는 친정 엄마를 찾아갔으나,
돈 애기를 꺼내기도 전에 친정엄마는 차단막을 치며,
뒷밭의 남새만 얻고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는 너무나 다른 아들의 관심은 돈에 있었다.
사금파리, 실핀이 중요하였던 그녀의 세계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었다.
큰 오빠. 작은 오빠, 큰언니, 작은 언니, 남동생 등 대가족 가구와는 달리
요즘은 핵가족을 넘어 모자 가구. 1인 가구 등 사회구성원도 달라졌다.
이 소설에서 묘사된 친정 엄마가 살고 있는 저수지가 있는 동네는
전북 임실 운암호의 배경이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읽을 수 있었다.
'소나무 숲속에 서 있는 정자에서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으면
잔잔한 물결이 금방이라도 가슴까지 차 오를 것 같다.'(35) 라고 하였다.
친정 엄마의 동네에 찾아온 도시 사람들은 저수지가 보이는 정자에서
술을 마시며 놀다가 친정 엄마의 집으로 찾아와 화장실을 빌리고
김치와 라면을 얻어 가면서도 그 댓가를 치르지 않고 공치사만 하였다.
그러는 도시 사람들이 미워서, 오영희는 기어이 라면값을 받아
술취해 저수지 정자에 누워 있는 친정엄마의 주머니에 찔려 넣고
마지막 차를 타고 도시로 돌아갔다.
"아이, 너는 인자 갈래? 가거라. 싹 가부러라. 가서는 이 악물고들 살어라.
못난 느그 엄시는 느그들헌테 암 것도 줄 것이 없다.
느그 어매 젖은 진작에 보타져불고 수중에 일전 한닢이 없다.
시방, 그렁게 느그들은 맘 모질게 물고들 살어라잉."(41)
친정엄마의 이 말들 듣고 나니
자신이 받은 모욕감이 다 용서 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였다.
화는 어느덧 사라졌지만 새롭게 눈물이 샘솟았다.
눈물이 나는 건, 감추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들리는
엄마의 울음섞인 목소리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내 새로운 눈물속에는 또한 라면 값 청구에
눈이 발개진 한 여자의 울음도 섞여 있다는 것을.
멀리서 막차가 이마에 하얀 저녁달을 달고서 길모퉁이를
돌아 달려오고 있었다. (44)....어쩌면 이런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을까?
'오후 다섯시의 흰 달'. '염소 가족'. '설운 사나이'.
'어머니가 병원에 간 동안'. '읍내의 개'. 등
모두 소외된 인간들을 그린 소설인데,
한결 같이 뒤틀린 운명속에서도 서로 따스한 인간의 정을 나누며
절망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사는 인간들의 잘 그려냈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은주의 영화'는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고 헷갈리게 하는 소설이었다.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1989년 봄에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체로 걸려진 기억들."이라고 하였다.
1989년 조선대학교 학생 이철규의 사건이 있었는데
그 철규와 이름이 같지만 그 철규와는 다른,
홀어머니에게서 자란 눈이 말그런 11살 소년의 죽음과
은주를 키워준 상희이모를 카메라를 통하여 들여다 보고
그들의 혼을 불러내 서로 화해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인데,
마치 한 편의 씻김굿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읽었다.
공선옥 작가의 소설은 이야기의 전개가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그 속에서 피폐한 고향 풍경이 고스란히 서술되어 있고, 그러면서도
따스한 인간의 정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조화롭게 녹아 있는 글이었다.
소설 속의 마을에는 분꽃, 봉숭아. 맨드라미, 채송화 등
어린 시절 우리가 자주 보았던 정겨운 꽃들이 피어나며,
닭, 개. 염소, 돼지. 소 등 어릴적부터 우리가 키웠던 짐승들이 등장하였고
나는 그 소설속으로 들어가 함께 웃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호프집을 하는 철규 엄마. 미장원을 하는 영애.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 차우진.
아내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9순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윤.
소설속의 인물들은 대부분 더 이상 안타까울 수 없는 상황속의 사람들이었다.
작가는 그 한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한 명씩 불러 내어
마치 눈 앞에 살아 움직이듯이 소설을 치밀하게 서술하였는데,
그들의 어려운 상황에 아릿한 아픔을 느끼면서도 희망을 품게 하였다.
아. 역시 공선옥 작가는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