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우동 한 그릇>

 

우동 한 그릇 <> 김동수 컴퍼니 1 회 :2008/08/09 16:00 2 회 :2008/08/09 19:30 주인:김동수 여주인(1회):김영미 여주인(2회):주은 외 5명

 

해마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우동집으로서는 일년 중 가장 바쁜 날이다.
'북해정'도 이날만은 아침부터 바빴다. 보통 때는 12시가 되어도 복잡한데 이날만큼은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10시가 지나자 '북해정'의 손님도 뜸해졌다. 사람은 좋지만 무뚝뚝해 보이는 주인과 그래서 아내는 더 인기가 있었는데 임시종업원들에게 연말특별 보너스와 선물을 주어서 막 보내고 슬슬 가게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드르륵'하고 문이 열리더니 여섯 살과 열살 정도의 사내아이와 철이 지난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은 한 여자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상냥하게 맞이하는 여주인에게 그 여자는 머뭇거리며 말을 건넸다.
'저.....우동 ...일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네......네, 자 이쪽으로.'
난로 곁의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주방을 향해
'우동, 일인분!' 하고 외친다.
주문을 받은 주인장은 잠깐 일행 세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고 나더니 우동 한 덩어리와 거기에 반 덩어리를 더 넣어 삶는다. 손님과 아내가 눈치를 채지 않도록 해서 수북한 우동이 삶아져 나왔다.
우동 한 그릇을 가운데 두고, 이마를 맞대고 먹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카운터에 까지 들린다.
'맛있네요.' 라는 형의 목소리.
'엄마도 잡수세요' 하며 한가락의 국수를 집어 엄마의 입에 넣어주는 동생.
이윽고 다 먹고 나더니 150엔의 값을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라고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모자(母子)에게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목청높여 인사를 했다.

신년을 맞이했던 '북해정'은 변함없이 바쁜 나날 속에서 한해를 보내고 다시 12월 31일을 맞이했다.
지난해 이상으로 바쁜 하루를 끝내고 10시를 막 넘긴 참이어서 가게를 닫으려고 하는데 '드르륵'하고 문이 열리더니 두 명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여주인은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체크무늬 반코트를 보고 일년 전 섣달 그믐날의 마지막 손님임을 알아보았다.
'저.........우동...일인분입니다...........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여주인은 작년과 같은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우동 일 인분 !'
주방에서는 꺼진 화덕에 불이 붙여지고 음식준비를 하는데 여주인이 귓속말로,
'저, 여보..서비스로 3인분 내줍시다.'
그 말에, 남편 역시 작은 소리로
' 안돼요, 그런 일을 하면 도리어 거북하게 여길 테니...'라고 말하며 우동 하나 반을 삶는다.
테이블에 놓인 한 그릇의 우동을 둘러싼 세 모자의 얘기소리가 들려온다.
'으.....맛있어요............'
'올해도 북해정 우동을 먹게 되네요?'
'내년에도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다 먹고 나서 150엔을 지불하고 나가는 세 사람에게 주인 내외는 큰 소리로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인사를 했다.


그 다음해의 섣달 그믐날은 그 어느 해보다 장사가 번성하는 중에 맞게 되었다.
'북해정'의 주인내외는 서로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9시 반이 지날 무렵부터 어쩔 줄을 모른다.
종업원을 퇴근시킨 주인 내외는 금년 여름에 값을 올려 '우동 200 엔'이라고 쓰여진 메뉴표를 '150엔'으로 바꾸어 놓았고 2번 테이블에는 이미 30분전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이 놓여 있었다.
10시 반이 되자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모자(母子) 세 사람이 들어왔다.
형은 중학생 교복,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고 있던 점퍼를 헐렁하게 입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는데 그 엄마는 여전히 색 바랜 체크무늬 반코트차림 그대로였다.
'어서 오세요!'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여주인에게 엄마는 조심조심 말을 꺼낸다.
'저........우동.......이 인분인데도........괜찮겠죠?'
'넷.......자, 어서 이쪽으로.'
여주인은 그들을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거기 있던 <예약석>이란 팻말을 슬그머니 치우고 카운터를 향해 소리친다.
'우동 이 인분!'
주인은 우동 세 덩어리를 뜨거운 국물 속에 집어넣었다.
두 그릇의 우동을 함께 먹는 세 모자(母子)의 밝은 목소리에 활기가 느껴졌다.
'형아야, 그리고 쥰아...., 오늘은 너희 둘에게 엄마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
'고맙다니 무슨 말씀이세요?'
'돌아가신 아빠가 일으켰던 사고로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잖니.
사실은 보험으로도 지불할 수 없었던 배상금을 매월 5만 엔씩 계속 갚아가고 있었는데 지불약속은 내년 3월까지지만 오늘 지불을 끝낼 수 있었다.
'네? 정말이에요? 엄마?'
'그래, 정말이고 말고, 형아는 신문배달을 열심히 해주었고, 쥰인 장보기와 저녁준비를 매일 해준 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

형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했다.
'쥰이하고 사실은 엄마에게 숨기고 있는 것이 있어요. 그것은요........,
11월 첫째 일요일, 학교로부터 쥰이의 수업을 참관하라는 편지가 왔었어요.' 쥰이가 쓴 작문이 북해도의 대표로 전국 콩쿠르에 출품하게 되어서, 수업 참관일에 이 작문을 쥰이가 낭독하게 되었다'는 거였어요.
그걸 엄마에게 보여드리면 무리해서 라도 회사를 쉬실 것 같아서 내가 대신 참관일에 갔었던 거죠.
선생님께서 '나는 장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제목으로 전원에게 작문을 쓰게 하셨는데, 쥰은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써서 냈대요.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만 듣고 북해정에서의 일이라는 걸 알았기에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는데 작문의 내용은........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많은 빚을 남겼다는 것, 엄마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 형이 신문배달을 하고 있다는 등이 전부 쓰여 있었어요.
그러고서 12월 31일 밤에 셋이서 먹은 한 그릇의 우동이 그렇게 맛있었다는 것, 셋이서 한 그릇밖에 시키지 못했는데도 우동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큰 소리로 말해 주신 일. 그 목소리는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요.
그래서 쥰은 어른이 되면, 손님에게 '힘내라!', '행복해라!'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제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었어요.'
카운터 안쪽에서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던 주인내외는 한 장의 손수건 끝을 서로 잡아당기며 울고 있었다.
차분하게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웃다가 넘어질 듯이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고, 작년하고는 전혀 달라진 즐거운 그믐날 밤의 풍경이었다.
우동을 다 먹고 300엔을 내며 '잘 먹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세 사람에게 주인 내외는 일년을 마무리하는 커다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세요!' 라며 전송했다.

 

다시 일년이 지났다.
북해정에서는 밤 9시가 지나서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을 2번 테이블에 올려놓고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세 모자(母子)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또 다음 해에도, 2번 테이블을 비우고 기다렸지만 세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북해정은 장사가 번창하여 가게 내부수리를 하게 되어서 테이블이랑 의자도 새로 바꾸었지만 그 2번 테이블만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새 테이블이 나란히 놓여 있는 가운데 단 하나 낡은 테이블이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것이 여기에?' 하고 의아해 하는 손님에게 주인 내외는 <우동 한 그릇>의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다.
"어느 날인가 그 세 사람의 손님이 와 줄지도 모릅니다. 그 때 이 테이블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는 '행복의 테이블'로, 이 손님에게서 저 손님에게로 전해졌다. 일부러 멀리서 찾아와 우동을 먹고 가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 테이블이 빌 때까지 기다렸다가 주문하는 젊은 커플도 있어서 상당히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고 나서 또 몇 년이 흘렀고 어느 해 섣달 그믐의 일이다.
북해정에는 같은 거리에 있는 상점조합회원들이 각자의 가게를 닫고 모여들었다.
북해정에서 섣달 그믐의 풍습인 해 넘기기 우동을 먹은 후,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가까운 신사에 가서 그 해의 첫 참배를 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번 테이블의 유래를 알고 있는 그들이지만 아마 금년에도 빈 채로 신년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2번 테이블의 예약석'만은 비워 두고 10시가 지나서까지 왁자지껄하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때 입구의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오버를 손에 든 정장차림의 두 청년이 들어왔다. 다시 얘기가 이어지고 시끄러워졌다.
여주인이 죄송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공교롭게도 만원이라서' 라며 거절을 하려고 했을 때 화복(일본 옷)차림의 부인이 들어와서 머리를 숙이며 두 청년 사이에 섰다.
가게 안의 모두가 침을 삼키며 귀를 기울인다.
화복을 입은 부인이 조용히 말했다.
'저............우동 삼 인분입니다만............괜찮겠죠?'
그 말을 들은 여주인의 얼굴 색이 변했다. 십수년의 세월을 순간적으로 밀어 젖히고, 그 날의 젊은 엄마와 어린 두 아들의 모습이 눈앞의 세 사람과 겹쳐진다.
청년 중 한 명이 말했다.
'우리는 14년 전 섣달 그믐날 밤, 모자(母子) 셋이서 일 인분의 우동을 주문한 사람입니다. 그 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외가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했고 의사고시에 합격해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우동집 주인은 되지 않았지만 은행에 다니는 동생과 상의해서 오늘 가장 사치스럽고 멋진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북해정에서 우동 삼 인분'을 시키는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던 주인 내외는 왈칵 눈물이 흘렀다.
옆에 있던 야채가게 아줌마가 일어나
'이봐요, 주인 아줌마! 뭐하고 있어요! 십년간 이 날을 위해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기다린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이잖아요. 어서 안내해요, 안내를!'
그 말에 번뜩 정신을 차린 여주인은,
'잘 오셨어요. 자, 어서요. 여보! 2번 테이블에 우동 삼 인분!'
무뚝뚝한 얼굴을 눈물로 적신 주인,
'네엣! 우동 삼 인분!' 하고 목이 메었다.
예기치 않은 환성과 박수가 터지는 가게 밖에서는 조금 전까지 내리는 눈발이 그치고 정월의 찬바람이 휘날리고 있었다.


1989년 일본 국회의 예산심의위원회 회의실에서 한 의원(공명당의 오쿠보 의원)이 난데없이 뭔가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대정부 질문 중에 일어난 돌발적인 행동이라 멈칫했던 모두는 그것이 한 편의 동화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야기를 듣고 여기 저기서 훌쩍였으며, 국회를 울리고, 학교를 울리고, 거리를 울리고 결국은 나라 전체를 울린 '눈물의 피리'가 바로 <우동 한 그릇>이다.

 

(펀글)

 

 

     *        *        *

 

며칠 전 보았던 연극 <우동 한 그릇>.

그 잔잔한 감동의 시간.

 

마산 국제 연극제가 315아트 센터에서 열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좋은 연극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국내외의 많은 연극 단체가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 중 지난번  <성난 얼굴로.....>는 기대밖 이어서

실망하였는데 <우동 한 그릇>은 가슴속에

등불 하나 밝혀 놓은 듯 훈훈하고 따스해졌다.

 

북해정 식당의 주인 내외의 연기,

그 중에서도 특히 아내의 역활을 맡은 여배우는

마치 극중의 인물을 데려다 놓은 듯  살아있는 연기를 하였다.

소설을 내용을 마치 나내이터가 읽어 주는 듯이

등장 인물들 입을 통하여 대사로 표현하는 것도 좋았다.

 

두 소년이 점점 커져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처음 북해정 문을 열고 들어설때는 어머니의 뒷편에서

무릎을 꿇어 키높이를 적게 하여 나왔는데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고,

해가 갈 수록 커져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함께 즐거워했다.

 

우동 한 그릇을 놓고 서로 먹으라고 권하는 모습,

자신은 배고프면서도 아들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면발을

배부른듯 바라보는 아이 어머니의 자애깊은 모습,

우동 면발을 쪽쪽 소리나게 빨아먹는 모습,

모두가 연극을 보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던 장면들이었다.

 

연극이 끝난 후 모두 따듯한 박수로 출연자를 격려하였고,

출연자들은 로비까지 내려와 팬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고

함께 사진도 기꺼이 찍어 주었다.

 

안주인 역활을 곰살맞고 나긋나긋 잘 하였던 배우.

 

 가ㅏㄴ한 모자가 앉았던 2번 테이블.

 

 문닫을 시간에 멈칫대며 들어서는 세모자.

 

 무대막이 내린후.

한쪽 구석에서 극의 분위기를 한층 돋구어 주엇던 기타리스트에게도 갈채를.(왼쪽에서 3번째)

 

 불이 끄지고.....

 

 로비에 서서 기념사진을 같이 찍는 모습.

 

 기타 연주 좋았어요.

 

 

 사진이 모두 흐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