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 제6주 과제-고향에 대한 기억쓰기)
내 고향 경남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85번지.
내 고향 함안은 옛 아라 가야의 터전.
풍광이 아름다운 곳도 아니고
농산물이 풍부한 곳도 아닌
그냥 갑남 을녀가 서로 부대끼며 사는 곳.
내가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 없듯이
내 고향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처럼 나에게 주어진 척박한 땅이었다.
경전선이 지나가고
남해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곳이어서
그렇게 깡촌은 아니었다.
인근에 부산 마산 진주등의 대도시가 있어서
조금만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은 일찌기
고향을 떠나 대처로 나가 터를 잡곤 하였다.
내 부모님들은 대처로 나가 자리를 잡은 사람들처럼
머리가 깨이지 않은 사람들이었기에
죽으나 사나 흙을 파먹고 살 수 밖에 없었다.
내 고향은 방목이라고 불릴정도로
늪지로 되어있어 소나 염소를 방목하기 좋았다.
일제 시대에 홍수의 피해를 막으려고
제방을 쌓았기에 주변을 빙돌아 둑길이 있었다.
그 둑길을 이용하여 아이들은 학교가 파하면
소를 몰고 둑길로 몰려가곤 하였다.
내 아래 여동생이 솜몰고 가는 일을 좋아하였기에
나는 한번도 소를 몰고 둑길을 나가지는 않았다.
동생은 소를 몰고 밖으로 나가면 그곳이
바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고 하였다.
소를 몰고 온 아이들은 소를 말뚝에 묶어놓고
아이들끼리 해가 저물도록 놀았다고 하였다.
나는 그렇게 밖에 나가서 놀기보다는
만화책 보기를 더 좋아하였으니....
밤이면 그 둑길은 청춘 남녀의 데이트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나는 그 둑길 데이트의 추억도 갖지 못한 바보였다.
딱 한번 결혼전 우리집으로 찾아온 남편의 손을 잡고
그 둑길을 걸어 보았다.
여름이면 홍수가 잦았고 나는 물구경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위험한 놀이를 하였다.
난간도 없는 조그만 다리가 물에 찰랑찰랑 잠긴 그 다리를
흐르는 물살의 촉감을 즐기며 건너갔가 거너오곤 하였다.
그때 만약 물살에 쓸려 떠 내려가면 어쩔려고...
아라 가야의 터였기에 큰 무덤이 많았다.
우리 밭으로 가는 길에도 고분이 많았고
그안에서 도굴꾼들이 부장품들이 도굴해 가고
깨어진 사기 그릇 조각들이 많았다.
내가 사는 마을옆으로 크고 작은 개울이 많았다.
검암천은 수량이 풍부하고 물도 깨끗하여
은하수라고 부르면서 여름이면 뙤약볕을 걸어
목욕을 갔다 오기도 하였다.
목욕하려 오가는 시간이 길어 집에 돌아오면
다시 등목을 하여야 했지만
우리들은 떼를 지어 강으로 나가서 놀았다.
신음천은 검암천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집에서 거리도 가깝고 물속에 다슬기등이 많아
곧장 아이들과 어울려 신음천에 놀려가기도 하엿다.
고무신을 벗어 송사리와 소라등을 잡아오기도 하였다.
겨울이면 조일교 다리 아래의 물이 꽁꽁 얼어붙어
우리들은 팽이치기 썰매타기로 하루해가 짧기만 하였다.
얼음을 타다가 얼음이 갈라져 물에 빠지는 아이들도 많았다.
아이들은 집불을 붙혀 양말이랑 신발을 말리다가
오히려 태워먹고 집으로 가지도 못하는 날도 많았다.
얼음위에서 연날리기를 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때는 지금처럼 집안에서 노는 아이들이 없었던 모양이다.
음력 정월날의 달집태우기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유년의 추억이 서려있는 민속놀이였다.
아침 일찍부터 강둑으로 몰려가서
대나무와 짚으로 달집을 만드는 머스마들을 돕기위해
우리는 집집을 돌며 달집 만들 짚을 구하려 다녔다.
드디어 달집이 완성되고 동네 어른들도 구경나오면
달이 동쪽에서 솟아 오르기만 기다렸다가
누군가 "달이야~!"외치는 소리에
화르륵~! 달집에 불을 옮겨 붙이고 나면,
나는 낼를거리며 타는 달집을 바라보며
거의 황홀경에 빠지기도 하였다.
봄이면 수양버들 늘여진 강변에서
어머니들의 헤차 놀이.
일년의 농사를 앞두고 공식적인 야유회가
강변에서 벌어지곤 하였다.
우리 어머니도 춤추는 걸 좋아하셨던 것 같다.
치마의 말기를 맵씨있게 올려 붙이고
손가락을 아래 위로 흔들면서 날듯이
춤추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집근처에 경로당이 있어 해마다 봄이면
기생들을 불러모아 춤과 노래러 하루를
보내는 남정들의 야유회도 있었다.
나는 그 기생들의 옷맵씨와 얼굴이 보고 싶어
뚱기덩~! 장구 소리나면 경로당으로 가서
실컷 하루를 춤과 노래로 즐기곤 하였다.
주변에 원두막과 과수원이 있어
여름이면 포도밭, 수박밭의 원두막으로 올라가
배를 두들기며 포도를 먹은 기억도 있다.
포도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소나기.
소나기뒤의 뭉게구름과 찬란한 무지개.
웅덩이에 고인 흙탕물....
모두가 유년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지금도 20분도 걸리지 않는 지척의 거리에 있지만
이제는 그때의 풍경 어느것 하나 남아있지 않고 피폐해져 버렸기에
항상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싶은 내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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