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동안 서울 동생집에서 지내다 돌아오니
두 남자가 지낸 집안꼴이 말이 아니다.
오래만에 내집에서 늦도록 잠을 자야지....하고
눈을 감고 누워있어보았지만
잠은 멀리 달아나 버려 이리 저리 뒤척이다 일어났다.
내일이 입추 라서인지 열어놓은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약간 소슬한 가을의 기운이 베여있다.
참으로 속일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순환이다.
조상들의 지혜는 절기에서도 얻을 수 있다.
낮에는 높은 습도와 열기에 허덕이지만
입추라는 가을에 들어선다는 단어만 들어도
어느새 아, 이제 이 무더위도 며칠 남지 않았구나....
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다시 추스리고 마음을 다잡게 한다.
입추를 하루 앞둔 오늘,
아침 일찍부터 청소와 빨래를 마치고
(새벽부터 일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데,
새벽에는 독서나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새벽부터
락스풀어 변기부터 닦았다.ㅎㅎ)
며칠이나 빠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학교도 갔다.
세시간 정도 그림을 그리고는 또 서둘러 백화점으로 향했다.
냉장고에 갈적에 넣어둔 오이와 상치가 썩어가고 있었고
과일과 고기도 좀 사 넣어야 할 것 같아서.
한달전 가방 수선을 맡긴것도 찾아야 하고....
이 가방때문에 이렇게 내가 고생할 줄이야.
가방 이야기부터 하는 게 순서일것 같다.
나는 명품 가방이 어떤건지도 모르고 살아왔고,
그 조그만 가방 하나에 백만원씩이나 주고 산다는게
나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점점 나이를 먹게 되니 친구들 모임에
몇만원짜리 가방을 들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가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친구의 부탁으로 부은 월20만원 만기 보험을 찾게 된 날,
나도 나 자신을 위한, 조금은 사치스러운 선물을
나에게 해주고 싶어 산 가방이 바로 이 버버리 가방이었다.
그런데 명품이라고 산 가방이 몇달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자석 똑닥이 부분의 천이 떨어지려고 하였다.
백화점에서 구입한 옷이나 가방은 일년을 사용한 후에도
무상으로 수리가 되었기에 당연히 수선 받을 수 있겠지.....
하고 버버리 매장을 찾아갔더니뜻밖의 말을 하였다.
한국에서 만들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유상수리라고 하였다.
수선비 15000원을 울며 겨자먹기로 내어야만 했다.
세상에....그런 줄도 모르고 좋아라 하다니....
수리 기간도 엄청 시간이 많이 걸려 오늘에야 찾게 되었는데
들고 간 하얀 백의 안쪽의 박음질이 약간 풀리는 것 같아
백회점 간김에 그 가방을 산 매장을 찾아가 보았더니
당연히 무료로 수선가능하다고 했다.
역시 우리나라 좋은나라....
속으로 즐거워하며 가방 내부에 든 물건을
오늘 수선한 가방으로 옮겼는데....
에구구....뒷편 지프에 넣어둔 열쇠를 넣은채
그냥 수선을 맡기고 왔으니....
현관앞에서 열쇠를 찾을때 까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햇다.
이런 낭패가...
남편은 오늘 모임에 간다고 하였는데....
아들도 전화를 받지 않고....
땀은 삐질삐질 나오고, 양손에는 무거운 시장봐온 장바구니.
한동안 당황해 하다가 하는 수 없이
백화점으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었다.
내 부주탓인데도 괜히 매장에 있는 아가씨가
원망스러워지기도 하였다.
한번 뒷주머니 조사하고 받아두었으면.....하고....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는거야....."
백화점까지 왕복 1시간을 걸려 땀을 찔찔 흘리며
나자신에게 말하면서 고개를 든 순간,
빌딩사이로 갑자기 들여다 민 하얀 얼굴.
신비스러운 미소를 보일듯 말듯 머금고 있는 초승달이었다.
어제 고속버스타고 내려 오면서 바라본 서녁하늘에
고즈넉한 모습으로 떠 있던 바로 그 초승달이었다.
아, 너였구나~~~!
머리가 좀 나쁘면 어때?
손발이 고생을 좀 하면 어때?
너처럼 어여쁜 것이 저렇게 나에게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눈웃음 보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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