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자정 미사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끓여 주신 떡국을 먹고 늦도록 킬킬거리며
놀다가 잠을 잤다.
마을을 돌며 부르는 찬송가 소리를 꿈결에 들리는 노래인가?
하면서 잠을 깨면, 어느새 햇살이 사방에 퍼져 눈부셨다.
기억으로 밤사이에 흰눈이 소복히 쌓인 날도 있어
탄성을 지르며 일어났던 해도 한 두번은 있었던 것 같다.
분명히 어린 시절은 지금보다 눈이 많이 내렸던 것 같으니까....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선물부터 챙겼다.
그 선물이라는 것이 아주 작은 양말짝이나 장갑 한컬레였을 지라도
이게 정말 산타 할아버지가 준 걸까?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즐거운 어린 시절 성탄 아침이었던 것 같다.
해마다 성당에서 성탄전날 어린이 들을 위한 마굿간 잔치가 있었기에
우리 가족의 행사는 자연히 성당에서 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초등학교 5학년이 딸 아라가 연극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일주일 정도 오후에 가서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 번거로운 모양이었다.
다른 아이에 비해 사춘기가 빠른 것 같은 딸이기에 억지로 할 수도 없었다.
우연히 선물로 받은 호텔의 부페 이용권이 4장 있었기에 친구 부부와 함께
성탄 전날 식사 약속을 하여 시내로 나갔다.
혹시나 하여 아침에 예약을 하였더니 벌써 예약이 만료 되었고,
특선 성탄 부페는 자리가 남아 있어 그걸 예약하였다.
호텔 입구에서 부터 차는 가득 막혔다.
저녁 한끼 먹기 위해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다니....
남편들은 그냥 따뜻한 구들목에 앉아 삼겹살 구워 소주나 한장 마시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나, 아이들과 마누라들 때문에 벌레물은 입을 하고
몇바퀴나 뱅글뱅글 지하로 들어가 겨우 주차시키고 올라갔다.
남편은 호텔 부페에 들어가도 먹는 게 겨우 우동, 김밥, 잡채...
이런 정도이니 정말 잘 못 왔구나....싶었다.
아이들도 케익이나 아이스 크림 정도.
다만 친구와 나 둘만이 아귀처럼 먹었다.
몇 쟁반째 들고 오는 나를 보고 아라는 엄마배는 얼마큼 커요? 한다.
아줌마들 배들 고무줄 배란다....
마지막으로 커피까지 마시고 호텔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10시 가까운 시간이라 자정 미사 참여하면 좋을 것 같은데
남편은 내일 낮 미사 가고 싶다고 하엿다.
혼자 갈 수 없어 나도 곁에서 TV를 보았다.
조금 전의 내 행동들이 부끄러웠다.
이렇게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였을까?
내 가족의 편안과 안락만을 생각하지 않았던가?
성탄의 의미는 이런 것이 아닌데....
나이 오십이 넘어도 나는 왜 그 수준을 넘지 못하는가?
항상 생각뿐이고 행동이 따르지 않으니....
오늘 성탄 아침에 어떻게 얼굴을 들고
아기 예수님을 뵐 수 있을련지....
용서해 주소서.
저는 게으려고 미련한 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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