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돌아온 장갑

푸른비3 2024. 12. 3. 10:14

2024. 12. 3. 화

나는 마흔에 낳은 늦동이 딸 아라는 늘 아픈 손가락이었다.

결혼을 늦게하여 아들 하나만 키우는 나에게 친정 어머니는 늘

"하나는 외롭다. 딸이든 아들이든 하나 더 낳아라"고 하셨지만,

내 살기 바빴고 '하나 낳기 운동'에 참여하고 싶어 대답도 안했다.

 

그러던 중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나는 상실감에 허우적거리다가

평소에 아이 하나 더 낳으라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임신을 결심하였고,

늦동이 딸은 어머니가 내게 보낸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딸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늦가을 남편을 갑자기 저 세상으로 보내고,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어 선화예술고등하교를 진학한 딸을 따라

서울로 거주지를 옮겼지만 제대로 뒷바라지도 못하였고

아라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평범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다.

 

외로운 서울살이를 하면서 나는 은연중에 딸을 의지하며 살았다.

딸을 일찍 결혼시켜 손자를 키워줄 생각으로 베이비시터 교육을 받았다.

혼자 있을 엄마를 생각하여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라는 아직 언제 결혼할 것인지 계획도 없는 듯하였다.

 

나 역시 아라가 없는 생활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그냥 부딪히면서 살겠다는 생각으로 무덤덤하게 살고 있다.

친구들은 이제 딸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라고 충고하지만

나의 생활의 대부분은 딸을 중심으로 생활한다.

 

서른을 넘긴 딸이지만 나에게는 영원히 아이로 보여 

"물건을 아껴 써라. 자연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차도 사지 마라.

웬만한 불편은 참고 살아라."  등등 잔소리를 늘어 놓는다.

 

내 영향이 큰 탓인지 아라는 요즘 젊은이들에 비하여 아끼는 편이고

필요한 물품은 중고마켓에서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

얼마전 친구와 공동구매로 검은 니트 장갑을 샀는데

오늘 아침 버스 옆 좌석에 놓고 그냥 내렸다고 카톡이 왔다.

 

요즘 젊은이들은 현명하여 방금 내린 버스의 차고지에 전화하여

차량번호와 제일 뒷좌석에 두고 내린 것 같다고 하였더니

2시간 후 다시 전화해라고 하였다면서 

엄마가 시간이 되면 차고지에 가 볼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장갑을 벗으면 곧장 가방에 넣어야지....'잔소리 하려다가

나도 사실 몇 번이나 장갑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글쎄 혹시 되돌아오면 내가 차고지로 가 볼께...."하였다.

 

요즘은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시민들이지만,

하찮은 장갑이니 어쩌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 후 전화를 하니 검은 장갑이 한컬레 되돌아 왔다고 하였다.

 

오늘 아침 우쿨레레 수업이 있어 바쁜 아침이지만,

나는 서둘러 자전거를 타고 차고지로 달려 갔더니

반가운 아라의 검정 장갑이 얌전히 책상위에 놓여 있었다.

 

급하게 나오느랴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호주머니에 넣고 간 집에 있던 음료수를 내밀며

"정말 감사합니다. 기사님에게 이거라도 전해 주세요."

부끄러워하며 인사를 하고 계단을 내려왔다.

마주치는 기사님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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