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하얼빈

푸른비3 2024. 1. 8. 14:32

김훈 장편소설

하얼빈

문학동네 (2022.8.3. 1판 1쇄. 2022.8.31. 1판 6쇄)

(2024. 1. 5 ~8)

 

내가 좋아하는  작가 김훈이 <하얼빈> 소설을 발행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동안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까맣게 잊고 있었다.

 

2024년 새해 첫독서는 역사책을 읽고 싶어 도서관에서 검색하는 도중

문득 김훈의 <하얼빈>소설이 떠올라 검색하니 대출중이었다.

대출 예약 신청을 해놓고 대신 <역사 저널 그날>1. 2권을대출하여

읽는 도중 예약 신청해 놓은 <하얼빈>대출가능 문자가 와서 

읽고 있던 책을 밀쳐 놓고 이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2022년 8월 3일 1판 1쇄를 발행하기 바쁘게

2022년 8월 31일 1판 6쇄를 찍었으니 나뿐만 아니라,

그의 소설을 기다리는 애독자가 많은 모양이었다.

표지 앞 날개에 1948년 서울 출생. 이라고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었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진 소설가이므로 설명은 사족인 셈이었다.

나는 그의 간결하면서도 명료한 문장이 좋아하여

칼의 노래. 현의 노래. 강산무진. 공무도하가, 공터에서.

달 너머로 달리는 말 등 대부분의 그의 소설은 읽었다.

 

  *   *    *

1908년 1월 7일, 일본 제국 천황 메이지는 도쿄의 황궁에서

대한재국 황태자 이은을 접견했다....로 소설의 첫 문을 열었다.

마치 당시의 신문을 받아 읽는 느낌으로 건조한 문장으로 시작했다.

 

일본은 조선을 침탈하기 위해 황태자를 일본으로 인질로 끌고 간 셈이었다.

고종을 폐위시키고 순종을 대한제국의  황제의 자리에 앉혔지만,

그야말로 허수아비 황제일뿐 아무런 권한도 없는 제국의 황제였다.

 

조선 청년 스물일곱 살 안중근은 1905년 12월에 상해에서 돌아왔다.

상해에 돈을 가진 자들은 있었으나 뜻을 가진 자는 없어

국권회복의 실마리를 만들려던 안중근의 의도는 좌절되었다.

 

안중근은 밖에서 도모하는 일을 아내 김아려에게 말하지 않았다.

김아려는 시댁 어른들의 말을 귀동냥하여 남편의 일을 짐작했다.

그녀는 혼인한 지 십 년이 지났음에도 나그네 같은 남편을 어려워했다.

 

상해에서 돌아온 안중근은 일본 군대나 경찰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이토 히로부미가 철도 시찰의 명목으로

만주 하얼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안중근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큰 돈을 번 조선인 이석산을 협박하여

100루불을 빼앗아 우덕순과 함께 하얼빈으로 가서 하얼빈 한인회장

김성백의 집에 묵으며 하얼빈에서 거사를 도모할 기회를 노린다.

 

이미 안중근과 우덕순은 거사 후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되어

죽을 각오를 하며, 사후 가족들이 조선에서 생활하기 어려울 것을 예상하여

정대호에게 아내와 자녀들을 하얼빈으로 데려오기를 부탁하였다.

 

정대호는 자신의 가족 등 일행을 데리고 10월 27일 하얼빈으로 왔으나

이미 하루 전날인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를 저격하고 체포된 후였으므로,

안중근은 가족을 만나지 못하였는데,  결국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한 셈이었다.

 

이토의 열차가 10월 26일 아홉 시 십분에 할얼빈 플랫폼에도착하고

안중근의 총탄이 이토의 몸에 정확히 박히고 이토는 곧 죽었다.

체가구역에서 저격을 하려던 우대순과 일행을 데려 온 정대호도 체포되었다.

 

이토의 죽음으로 순종은 이토에게 문충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서울 장충단에 합동관민추도회를 열었고, 이토의 송덕비, 동상 건립을 건의하였다.

11월 4일 도쿄 하비야  공원에서 이토의 영결식을 하였다.

 

사건 이후, 명동 대성당의 뮈텔 주교는 12년 전 자신을 황해도 산골 청계동에서 

해주까지 길 안내를 해주었던 안중근을 살인을 한 죄인으로 파면하였다.

빌렘 신부는 교황의 명령에 불복하고 안중근을 만나 그의  영혼을 위로하였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이 소설속에서 강대국 프랑스에서 조선에 파견된

빌렘 신부와 뮈텔 대주교가 약소국 조선의 상황과 처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생명을 죽인 살인자라는 점에만 촛점을 맞추는 점이 몹시 슬펐다.

 

사실 안중근은 개인 자격으로 이토를 죽인 것이 아니고,

이토의  문명개화주의와 동양평화를 구상한다면서 조선을 침탈한

적과의 전쟁에서 의병 참모중장의 지위로 쏘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체포된 안중근은 석달 동안 신문을 받았는데,

신문관 미조부치가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사람의 도리에 반하는 일이다.

그대가 믿는 천주교에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 아닌가?  하였을 때.

안중근은 -그렇다. 그러나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자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나는 그 죄악을 제거했다....라고 답했다.

 

재판관 마나베가 -성공하면 자살할 생각이었는가? 하고 묻는 질문에

"한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서는 단지 이토를 죽인 것만으로는 

죽을 수 없으며, 나쁜 일을 한 것이 아니므로 도주할 생각이 없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안중근의 정신세계에 나는 가슴이 벅차오를 지경이었다.

 

재판관 마나베에게

-나는 헛된 일을 좋아해서 이토를 죽인 것이 아니다.  나는 이토를 죽이는 이유를

세계에 발표하려는 수단으로 이토를 죽였다....이제부터 그 사유를 말하고자 한다.

라고 말하였지만 더 이상 재판을 공개하면 공공의 안녕질서를 해할 우려가 있다고

선언하고 방청객에게 퇴정을 지시하면서 서면으로 접수해달라고 요청했다.

 

*  *   *

소설의 곳곳에서 김훈의 문장은 빛났다.

열차는 단조로운 리듬으로 흔들리면서 대륙을 건너갔다. 

먼 산들이 크게 돌면서 흘러갔고,  열차를 따라오던 강들이

저무는 산맥의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  대륙은 아무의 땅도 아닌 것처럼

허허로웠는데, 사람들의 불빛이 흩어져 있었다.(p192)

 

안중근은 마음속에서 말과 총이 끌어안고 우는환영을 보았다.

법정에서 사형장까지는 멀지 않았으나 말을 거느리고 거기까지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몸속에서버둥거리는말이 하얼빈역에서

쏜 자동권총처럼 방아쇠를 당기는 대로 쏟아져나온다면 거기까지

가는 길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p229)

 

사형선고를 받고 사흘 후에 안중근은 항소를 포기했다.  재판과정에서 

검찰관의 논고와 변호사의 변론을 들으면서 안중근은 항소는 쓸데없는짓이 

될 것임을 알았다.  이 세상의 배운 자들이 구사하는 지배적 언어는 헛되고

또 헛되었지만 말쑥한 논리를 갖추어서 세상의 질서를 이루고 있었다.(p254)

 

  *   *    *

김훈은 소설에서 감당하지 못한 일들을 후기로 남겼는데,

안중근의 장남 안분도는 안중근의 거사 후에 안중근의 일가를 따라

중국 흑룡강성으로 이주하였으나,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죽었고,

차남 안준생. 장녀 안현생은 조선총독부의 기획과 연출로 

아버지의 죄를 사죄한다고 말하고 

박문사를 참배하고 이토의 위패에 분향하고 위령하였다고 하였다.

 

안중근은 거사 이후 한국천주교회는 교리상으로 용납하지 않았으며,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한 '죄인'으로 남아 있었다.

1993년 8월 21일 김수환 추기경의 추모미사는 공식적인 추모의 최초 미사였다.

이날 미사에서 

안중근의 행위는 '정당방위'이고 '국권회복을위한 전쟁 수행으로서

타당하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순감옥 공동묘지에 묻힌 안중근의 유해는 아직 발굴하지 못하였고,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의 이봉창 묘 옆자리에 안중근의 가묘가 마련되어

유해가 봉환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에서

김훈은 포수. 무직.담배팔이 세 단어를 소설의 주선률로 삼고 

소설을 쓰려고 하였지만 글이 나가지 않아 ,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지만 감당하지 못하고 잊어버리려고 애쓰면서 세월을 보냈다.

변명을 하자면,  게으름을 부린 것이 아니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2021년 몸이 아팠고 몸이 회복된 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마음으로 2022년 바로 시작하였고, 

안중근의 '대의' 보다도,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고 썼다.

 

 *   *   *

나는 이 책을 덮으면서 지금의 강대국의 이권다툼의 틈바구니에 있는

한국의 상황도 그때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대국을 등에 업고 남북 분단된 상황에 살고 있지만

막상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감각한 상태로 살고 있다.

지금의 우리 시대에 안중근, 우덕순 같은 애국지사가 과연 나타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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