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31. 일.
자다 깨다 잠을 설치먀 눈을 감고 누웠는데 카톡 알람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깜빡 잊고 전화기를 진동으로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소리에 모두 눈을 뜨고 카톡을 확인하니 옆 동에서 투숙하는
남자친구들이 잠도 오지 않으니 그냥 일찍 산행하자고 하였다.
모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던 중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서둘렀다.
채비를 하고 마당으로 나오니 칠흙처럼 검은 하늘에 하현달이 떠 있었다.
버스로 이동하여 백무동 진입로에서 부터 출발한 시각이 새벽 4시.
배낭에 물과 비상식량을 챙기고 랜턴을 이마에 붙이고 산행 준비를 하였다.
어둠속에 친구들의 모습이 추수를 하기 위해 타작마당으로 가는 농사꾼 같았다.
농촌에서 자랐던 나는 이맘때면 일꾼들이 타작마당으로 나가던 기억이 아련하였다.
어둠속에서 일꾼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아버지과 일꾼들의 두런두런 이야기 하셨다.
나는 이불속에서 일꾼들이 호롱불을 들고 나가던 발자국 소리를 꿈결속에서 들었다.
머리에 붙인 랜턴 불빛에 의지하여 한걸음 한걸음 산행을 시작하였다.
뒤의 친구의 불빛에 내 그림자가 길게 나보다 저 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손을 뻗히면 하현달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캄캄한 하늘에 반짝이는 주먹만한 별들도 곧장 내 앞으로 쏟아질 것 같았다.
추워리라 생각하였지만, 생각외로 새벽공기는 상쾌하며 포근하였다.
헉헉거리는 나에게 코로 공기를 들여 마시고 입으로 내뿜으라고
뒤에 있는 친구가 알려 주었지만 그게 이론처럼 쉽지 않았다.
그냥 마음가는대로 숨을 마시고 내뱉으며 생전 처음 새벽 산행을 하였다.
앞서가는 친구의 뒤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점점 뒤쳐졌다.
나처럼 걸음이 늦은 친구와 보조를 맞춰 주는 남자 친구들이 고마웠다.
단체 산행시 가장 힘든 사람은 후미를 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들었다.
본인의 걸음 속도와는 달리 늦은 사람과 보조를 맞추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다.
하늘이 점점 밝아지더니 어슴푸레 나뭇잎들이 제 색깔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산에서 일출을 보는 것을 소망하였으나 이번에도 그 꿈은 이룰 수 없었다.
장터목으로 가는 길에 눈에 들어온 산자락에 포근히 안긴 집들과
부드러운 곡선으로 중첩된 산의 능선들에 아~! 하고 절로 탄성이 나왔다.
장터목까지 500미터 남았다는 반가운 이정표가 보였으나 멀기만 하였다.
평소에 500미터가 이렇게 멀었던가? 하는데 문득 대피소가 짠~! 하고 나타났다.
먼저 도착한 등산객들이 바닥에 주저 앉아 운해속의 능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그냥 바닥에 주저 앉아 멍~! 하고 앉아 있고 싶었다.
먼저 도착한 친구가 물을 끓여 컵 국수에 뜨거운 물을 부어 주었다.
친구들을 위해 버너와 무거운 물을 지고 와서 도움을 주는 고마운 친구.
쌀국수를 먹은 후 천왕봉으로 올라갈 친구와 장터목 주변에서 서성이다
하산할 친구로 나누었는데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올라가고 싶었다.
장터목에서 천왕봉 까지는 1.7Km이니 기어서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왕봉 가는 길은 잘 포장된 도로처럼 납작한 돌들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등 뒤로 가을 햇살이 포근히 안아주고 하늘은 푸른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았다.
하얀 속살을 보여주는 고사목, 우뚝 솟은 바위들 사이를 걸으며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가을 날씨는 어찌나 포근한지 이마와 등에 흥건히 땀이 고였다.
파란 하늘에 하얀 뭉개구름, 솜사탕 구름이 느릿느릿 흐르고 있었다.
멀리 너울치는 물결같은 산봉우리위로 동그란 운해가 동동 걸려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멀리 산의 능선을 바라보는 순간 정말 잘 왔구나 생각되었다.
통천문을 지나 드디어 해발 1915미터의 천왕봉에 오르니 가슴이 벅찼다.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30분 정도 차례를 기다려 단체 사진을 찍고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와
양지바른 곳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배낭속의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 후 시간적 여유만 있으면 가을 햇볕속에 누워 한 숨 자고 싶었다.
갈 길이 멀고 나는 워낙 걸음이 느려 친구들 보다 먼저 길을 나서야 했다.
어제 버스속에서 내 자리 뒷좌석에 앉았던 인연으로 평소에 서먹했던
진상친구에게 걸어가다가 한번씩 뒤를 돌아 보고 나를 챙겨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부탁이 진상친구에게는 큰 부담을 주었던 것 같아 돌이켜 생각하니 미안하다.
하산길 내내 진상 친구는 나를 버리지 않고 앞 서 가서 기다려 주고 챙겨 주었다.
새벽에 같은 길을 걸었지만 그 때는 어둠속이라 발 밑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이렇게 돌계단이 끝없이 이어지니 점점 무릎도 시큰거리도 발바닥이 아팠다.
천왕봉 주변에는 나무들이 잎을 다 떨구어 지리산의 단풍을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해발 1000미터 아래부터는 아직 단풍이 남아 있어 다리는 아프지만 마음이 밝아졌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점점 선명한 단풍을 볼 수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바위틈으로 하얀 비단실을 펼쳐 놓은 듯한 폭포에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앞 서 가는 친구는 뒤를 돌아보고 그렇게 감상할 시간이 없다고 면박을 주었다.
하산길 7Km가 이렇게 길고 지루한 길인 줄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였다.
산 길은 오롯이 내 발로 한걸음한걸음 옮겨야 한다는 진리를 새삼 실감하였다.
발바닥은 불에 데인 듯 따거워 그냥 주저 앉아 버리고 싶었다.
아직 1.5Km 남았는데 걸음이 빠른 친구들은 벌써 도착하였다는 전화가 왔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거북이 처럼 지팡이를 짚고 엉금엄금 걸었다.
드디어 지리산 입구 팻말이 보이고 붉은 감이 다닥다닥 붙은 감나무도 보였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버스에 오르니 꼴지에게 모두들 손뼉을 치며 반겨 주었다.
이번 1박 2일 지리산 산행을 기획하고 모든 준비를 해 준 친구.
음식준비와 둿정리까지 갈끔하게 해 준 친구. 무거운 배낭을 대신 짊어 준 친구.
여러 친구들 덕분에 꿈꾸었던 지리산 천왕봉 등산을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이번 지리산 등산은 몸은 힘들었지만, 나에게 많은 감동을 준 산행이었다.
* * *
아래는 내가 좋아하는 시 도종환의 단풍 드는 날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 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ㅡ 시집『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 2012)
새벽하늘에 떠 있는 음력 25월 하현달.
등산로 입구.
어슴푸레 보이는 산능성.
점점 밝아오는 하늘.
나뭇잎의 색상도 점점 제 색깔을 볼 수 있었다.
장터목대피소 방향으로 가는 이정표.
소지봉 팻말.
등산로는 싸릿대가 담장처럼 길을 따라 세워져 있었다.
장터목 가는 길에 눈에 들어온 첩첩히 포개진 능선들.
이어지는 돌계단.
산자락에 포근히 안긴 민가들.
드디어 장터목대피소에 도착.
대피소에서 쌀국수로 아침 식사.
대피소에서 바라본 발 아래의 중첩된 산의 곡선.
천왕봉을 향하여.
맑은 하늘. 발 아래의 운해.
천왕봉 가는 길의 잘 정비된 돌길.
제석봉 고사목.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풍경.
운해와 산의 능선들.
제석봉 고사목 앞에서 인증 사진.
천왕봉이 이제 500미터 앞으로.
아래 사진은 친구가 찍어 준 사진들.
통천문 앞에서.
통천문 계단.
칠선계곡 상단.
안내도.
천왕봉 가는 길.
천왕봉 가는 길.
드디어 천왕봉에 도착.
천왕봉에서 바라본 발 아래의 풍경.
천왕봉 정상. 1915미터 표지석.
퍼온 단체사진
천왕봉에서 바라본 중첩된 산의 모습.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등산객의 행렬.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조망 사진.
아래는 천왕봉에서 하산하면서 찍은 사진들.
아래에서 올려다 본 천왕봉.
다시 통천문을 통과.
나뭇가지에 걸린 하얀 솜사탕 구름.
산구비를 포근한 이불을 펼쳐 놓은 듯한 운해.
비상식량을 흔들면 연기가 오르면서 밥이 덥혀졌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김이 폴폴 나는 도시락.
천왕봉의 이미 단풍이 다 떨어졌는데 해발 1000미터 지점부터 단풍잎을 볼 수 있었다.
단풍나무앞에서 기념사진.
등산로 바닥에 깔린 낙엽들.
바위틈 사이로 졸졸 흐르는 물.
아래로 내려올수록 물이 든 단풍나무가 많았다.
단풍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는 걸 실감하면서 자꾸 발길을 멈추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에 발바닥이 아팠지만,
이런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였다.
힘들지만 정말 잘 왔구나....감동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다.
이제 막바지로구나....생각하며 내려오는 하산길에 만난 감나무에 매달린 붉은 감.
하얀 비단실을 풀어 놓은 듯한 작은 폭포.
원점 회귀한 지리산 등산로 입구.
입구에 피어 있는 들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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