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김영하 산문집
문학동네 출판사 (2019 년 출판)
(2021. 1. 3~5)
소설가 김영하의 명성은 전부터 들었으나 이상스레 그의 작품을 읽을 기회는 없었다.
2012년 제 36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옥수수와 나>를 읽었지만
어쩐지 내가 읽기에는 불편한 내용이었고 도회적인 감각을 지닌 글이었다는
기억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젊은이들에게서는 각광을 받는 작가였기에 호기심은 있었다.
이번에 자양 한강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여행의 이유>.
작가 김영하에게는 별 호감이 가지 않았지만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대여해왔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이 여행이며, 요즘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해외여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어쩌면 그 아쉬움을 조금 달래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사진속의 김영하의 모습은 퍽 젊어 보여 40대의 젊은 작가이리라 추측만 하였다.
책 앞날개에 소개된 내용은 너무 빈약하여 다음으로 검색을 해 보았더니
김영하는 1968년 생으로 강원도 화천 출생이며 연세대학원 경영학 석사이며
<앤쓸신잡>으로 방송 진행도 하였으며, 2020년 12월 <살인자의 기억법>
독일어 번역본이 독일 추리문학상 국제부문상을 받았다.
1996년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의 관심을 받았다.
소설집 〈호출〉(1997)·〈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1999)·
〈오빠가 돌아왔다〉(2007), 장편소설 〈아랑은 왜〉(2001)·〈검은꽃〉(2003)·
〈빛의 제국〉(2006)·〈퀴즈쇼〉(2007)를 출간했다.
이외에도 산문집으로 〈굴비낚시〉(2001).〈김영하·이우일의 영화 이야기〉(2003),
〈랄랄라하우스〉(2005), 〈여행자-하이델베르크〉(2007),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2009)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1999), 동인문학상(2004), 황순원문학상(2004), 이산문학상(2004),
만해문학상(2007). 이상문학상(2012) 오영수문학상. 김유정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여행의 이유는
추방과 멀미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오직 현재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그림자를 판 사나이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노바디의 여행
여행으로 돌아가다
작가의 말
의 차례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수록된 추방과 멀미를 읽으면서 나는 김영하의 글에 빨려드는 느낌이 들었다.
전에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 <옥수수와 나>와는 너무 다른 스타일의 글이어서
같은 작가가 맞나 하는 의문이 생기기까지 하였다.
작가는 글을 집필하기 위해서 상하이 푸동공항 입국장에서 비자를 소지하지 않아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독자들을 흡인하는 글을 썼다.
(지난 해 겨울 내가 미국 비자를 받지 않고 출국하려다 낭패를 당한 추억이 떠 올랐다)
10편의 글과 작가의 말 모두 편안한 문장으로 재미있게 읽었는데
특히 <추방과 멀미>.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노바디의 여행>.
<여행으로 돌아가다>. <작가의 말>을 특히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우리는 모두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고 변화를 추구하여 여행을 꿈꾼다.
나는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의 설레임으로 여행을 꿈꾼다.
작가의 글처럼 여행의 목적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휴식일 것이고,
새로운 경험과 배움이 될 것이지만 여행에는 항상 변수가 생기게 된다.
나는 주로 편안한 여행사의 페키지 여행을 다녔는데
함께 단체로 여행중에도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겼지만,
특히 자유 여행을 할 적에는 거의 매일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였고 위기에 처하였을때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라오스 여행의 마지막 날 공원에서 자유시간을 받아 공원에서 사진을 찍다가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였지만 일행이 아무도 보이지 않아 당황하였다.
공원에서 걸어서 마사지실로 간 일행들은 내가 없는지도 모르고 룸으로 들어갔고
여행사의 인솔자도 현지 가이드도 내가 실종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약속된 장소에 있으면 인솔자가 나타나리라 생각하였으나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서투른 영어로 현지 공사장에서 일하는 한국인을 찾았고,
다행히 그 한국인이 친절하게 나를 데리고 근처의 마사지 장소를 탐문하였으며
드디어 우리 일행이 들어간 곳을 극적으로 찾았을때의 상황을 잊을 수 없었다.
인솔자는 그때까지도 나의 부재를 알지 못하였다가 미안해서 쩔쩔매며 사과하였다.
일하는 것을 뒤로 미루어 놓고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찾아나섰던 그 친절한
청년에게 나는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 지 몰라 내 전화번호와 주소를 주면서
한국에 오면 꼭 전화를 해라고 당부하였으나 그 청년의 전화는 받지 못하여
답례를 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고, 그 대신 나처럼 길을 헤매는 외국인을 만나면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으며 몇 번 실행을 하기도 하였다.
<노바디의 여행>에서는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섬바디이다.
나 역시 아이들의 어머니이며 남편의 아내이며 사회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었다.
여행을 떠나면 그 익숙한 역할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유로운 한 사람이 된다.
남들의 이목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사회적인 규울과 관습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였다.)
글에서 작가는 호텔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깨끗한 호텔의 안락한 분위기에서 고단한 하루를 쉴 수 있음이 좋다고 하였다.
호텔의 청소는 앞의 사람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는 것이 제일 중요한 아이템이라고 했다.
내가 여행으로 다녔던 여러 곳의 호텔은 사실 우리집보다 훨씬 깨끗하였다.
내가 청소하지 않아도 호텔로 돌아오면 항상 잘 징리정돈 되어 있고 안락하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깨끗함보다 익숙함이 더 편해졌다.
내가 원하는 물건이 어디 있는 지 쉽게 찾을 수 있는 우리집이 편안했다.
작가는 어느 한 장소에서 여러 달씩 체류하니 나하고는 상황이 다를 것이다.
무엇보다도 매일 짐싸는 것이 번거롭고 속옷 등 빨래 말리는 장소가 마땅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음식을 준비하지 않아도 삼시 세끼를 먹을 수 있으니 편하기는 하였다. ㅎㅎ
<오직 현재>에서는 오래전에 읽은 소설을 다시 펼쳐보면 놀란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느 게 거의 없다. 소설 속의 어떤 사건은 명확하게 기억이 나는 반면
어떤 사건은 금시처문처럼 느껴진다. 모든 기억은 과거를 편집한다.(P 71) 이라고 하였다.
나는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도 다시 볼 때마다 전에도 이런 장면이 있었던가 의문이 생긴다.
나의 뇌는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기억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여행에서 있었던 일들도 기억에 남는 부분은 내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일 것이다.
<여행의 이유>를 읽으면서 다시 하늘의 길이 열려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을
그날을 기다리며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떠나리라는 즐거운 환상에 잠겼다.
* * * *
이 책에는 내가 여행을 하면서 평소에 느꼈지만 글로서 표현하지 못하였던 부분들을
작가 특유의 지적이면서도 섬세한 필치로 유려하게 잘 표현한 글들을 모아 보았다.
여행은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았다. (P 82)
그러나 우리는 떠난다. 가서 거기 있고 싶어하고 직접 내 몸으로 느끼고 싶어한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는 호모 비아토르 (여행하는 인간)이라고 하였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P110)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아폴로 8호가 달궤도에 진입한 다음날,
'저 끝없는 고용속에 떠 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지구의 승객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썼다.(1968, 12, 25, 뉴욕타임스)
(P136)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P148)
여행은 여행자가 외부세계에 감행하는 습격이며, 여행자는 언젠가 노획물을 잔뜩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약탈자다"-<여행의 기쁨>실베테송. (P155)
실베테송의 말처럼 여행이 약탈이라면 여행은 일상에서 결핍된 어떤 것을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하러 그 먼 길을
떠나겠는가.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P179)
이주자는 일상을 살아가는 반면 여행자는 정제된 황상을 경험하고 있다고도
말 할 수 있다. 이주와 여행의 관계는 마치 현실과 소설의 관계와 같다.
현실은 어지럽고 복잡하고 물질서하다.(P199)
여행자는 도시의 정수만을 원한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살핀다. 여행에서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들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낀다.(P204)
여행의 이유 표지.
작가 소개.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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