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음식도 못하는 여자

푸른비3 2019. 3. 10. 08:34

"음식을 잘하는 여자는 평생 소박맞지 않는다."  라고 어머니는 자주 말씀하셨다.

'칫!  나는 그런 남자에게 시집 안가면 되지.....' 하고 속으로 콧방귀만 뀌었다.

내 어린 시절 어머니는 틈이 나면 음식만들기를 좋아하셨고 또 잘 만드셨다.

먹을게 귀한 그 시절,  어머니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따뜻한 아랫목에 놓아 두터운 이불을 덮어

단단하던 밀가루 반죽을 커다랗게 발효를 시켜, 드문드문 붉은 강남콩이 들어간 하얗고 폭신폭신한

밀가루 빵을 자주 쪄 주셨고, 커다란 나비 모양의 유과, 하얀 밥알이 동동 뜨는 식혜도 만들어 주셨다.

이웃 사람들은 귀한 손님을 대접할 경우가 생기면 어머니를 초빙하여 다양한 음식을 주문하였고,

잔치집에도 자주 불려 다니시며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를 보고도 나는 전혀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여학생 시절에도 내 위로 언니가 세 명이나 있으니 나는 부엌에 들어가지 않고 살았다.

설명절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찹쌀을 익반죽하여 납작하게 밀고 나비모양으로

잘라서 온돌방에서 꾸덕꾸덕 마르기를 기다리면서 검은 왕모래를 구하여 오셨다.

마당에 연탄 화로를 놓고 커다란 냄비에 반지르르 윤이 나는 검은 왕모래를 담

그 왕모래가 달구어지면 잘 마른 나비 반죽을 넣으면 신기하게도 크게 부풀었다.

그 당시 전혀 요리에 관심이 없었기에 그 검은 왕모래를 어떻게 만드셨는지 알지 못하였다.

납작하고 작았던 나비모양의 그 반죽이 뜨거운 왕모래에서 구워지면

허리가 잘록하고 양 끝이 둥근 유과가 되었는데 부드럽고 큼직하게 튀겨내셨다.

뻥튀기한 쌀을 잘게 부수어 커다란 대야에 펼쳐놓고 조청을 끓여서 싸늘하게 식혔다.

튀긴 유과를  조청액에 담궜다가 대야에 옮겨 잘게 부셔진 하얀 옷을 골고루 입혔다.


그뿐만 아니라 콩, 땅콩, 들깨 등을 끓인 물엿에 넣고 잘 저은 후 넓은 비닐을 깔고

그 위에 잘 섞인 재료를 붓고 홍두깨로 납작하게 밀어 놓고, 꾸덕하게 마른 후

칼로 자르면 요즘 말하는 한과가 되었는데, 그런 손이 많이 가는 한과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 

"그냥 시장가서 사면 될텐데...." 힘들게 만드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절대 저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설날이 가까워지면 우리 자매는 순번을 정하여 방앗간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섰다.

기다란 가래떡이 알맞게 굳어지면 밤을 새워가면서 썰어서 커다란 광주리에 담아 놓으셨다.

하긴 그때는 설 명절이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져 보름이 될 때까지 찾아오는 손님이 많았다.

추석이면 대청 마루에 식구들 모두 빙둘러 앉아 하얀 쌀가루를 묻혀가며 송편을 빚었는데

나는 이 많은 송편을 언제 다 빚을까?....지겨워 오줌이 마렵다는 핑계를 대고 자주 일어섰는데,

그럴때면 담장에 기대 서있는 커다란 목련나무 사이로 둥근 달이 배시시 웃는 듯 하였다.

그때는 큼직하게 모양없이 손으로 빚은 송편보다 시장에서 파는 날씬한 송편이 더 좋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손으로 만든 송편이 먹고 싶어 어머니의 그 손맛이 몹시 그리웠다.


세월이 흐른 후 늦동이를 임신하였을때  입덧이 심하여 거의 음식을 먹지 못하엿다.

그 때 가장 먹고싶은 음식은 어머니가 담근 걸쭉한 갈치 속젓을 넣은 배추김치였는데,

때깔좋은 밝은 붉은 빛깔의 서울 김치와는 달리 갈치속젓 김치는 어두운 빛깔이라

어머니가 살아 계실적에는 촌스러운 김치라고 생각하여 달갑지 않게 생각하였다.

어머니가 담근 그런 거무틱틱한 갈치속젓 김치가 생각나 반찬가게를 뒤적였으나 없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나는 얼마나 그 어머니표 갈치속젓 김치가 간절하였는지, 

꿈속에서 나타난 어머니는 장작이 활활 타는 아궁이 앞에서 나에게 갈치속젓 김치를 입에 넣어 주셨다.

꿈을 깨고는 어찌나 어머니 손맛이 그리워 한참을 울고 나니 속이 후련하고 충만해졌다.


직장생활도 겸하였던 신혼시절에도 나는 음식 만드는게 가장 싫고 힘들었다.

그냥 습관처럼 음식을 만들었고 제대로 맛을 내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회사일로 밖에서 식사하는 날이 많았지만 음식도 못하는 아내가 싫었을 것이다.

그냥 과일만 먹고 간단하게 알약으로 영양 보충을 하면 얼마나 편할까 생각하였다.

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을 무렵, 밤 늦도록 그림을 그리는 나를 보고, 남편보다

아들이 "엄마 쓸데없는 그림 배우지 말고 요리학원에 다니는게 더 좋겠다"고 하였다.

그때에는 아들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는데 2년 전 우연히 한식조리사 학원에 등록하였다.


강남에 새로 조리학원이 생겼는데 오픈기념으로 50% 할인한다는 광고지를 보고는

이참에 나도 요리학원에 등록해 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몇 년 전 며느리감이 데리고 왔을적에 나는 며느리에게 음식을 잘 못한다고 실토하였다.

다행히 며느리는 친정어머니로 부터 배운 음식 솜씨가 좋아  아들은 끼니를 잘 얻어 먹으니 좋다.

나는 간장 된장도 한 번도 담궈 보지 않았으니, 내 딸에게 무엇을 가르쳐 줘야 할지 모르겠다.

다음에 딸이 사윗감을 데리고 오면 집에서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학원에 등록하였는데, 이왕이면 한식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해야겠다는 욕심히 은근히 생겼다.


한식조리사 자격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예고된 52가지의 요리를 배워야 했는데

토,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한 달동안 매일 학원에 나가야 해서 좋아하는 전시회, 음악회도 못갔다.

내 손이 느려 제한된 시간에 완성품을 만들기 어려웠고, 규격에 맞게 재료를 자르는게 힘들었다.

조리사 자격시험은 맛보다는 모양과 규격이 중요하다고 하였는데, 주어진 작은 재료를 코를 박고

조무락 만들고 있으면 갑자기 화가 치밀어 재료를 홱~! 집어 던지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힘든 것은 미끄덩한 생선을 맨손으로 만져야 하고 소고기 얇게 포를 뜨는 것이었다.

겁이 많은 나는 손톱으로 소고기를 꽉 누르고 얇게 포를 뜨려고 하면 손을 베는 상상이 들었다.

부엌의 도구들은 잘 사용하면 무척 편리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모두 위험한 물건이었다.

뜨거운 기름과 물에 화상을 당할 수 도 있고 날카로운 칼에 손을 베이게 될 수 도 있다.

남보다 모양도 나지 않은 조리된 음식을 다른 학원생보다 늦게 검사받으면서 자괴감도 들었다.

그러나 학원 등록기간에 딸의 졸업식이 있었지만, 얼굴만 내밀고 올 정도로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았다.

학원 기간이 만료되고 재등록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집에서 복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실시하는 한식조리기능사 시험에 우선 필기 시험부터 등록하였다.

학원에서는 실기만 가르쳐 주었기에 두툼한 조리기능사 필기시험문제집을 사서 공부하였다.

여고 시절 가정시간에 배웠던 식품학, 식품의 가공과 저장, 식품위생법은 재미있었으나,

관련 법규를 외워야 하고 식중독을 일으키는 병균이나 독소를 외우기는 쉽지 않았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기억력을 탓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여 필기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컴퓨터로 시험을 치고는 답안지를 제출하고 나니 곧 결과가 나오는데 87점으로 합격이었다.


필기합격후 실기시험도 연달아 등록을 하여야 하는데 아무래도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조금 더 공부한 후 시험을 보아야겠다고 밀쳐 두었는데 실천이 안 되었다.

필기 합격 통보서는 2년 동안만 효력이 있는데 어느덧 그 기간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전에 배웠던 유인물을 참고로 하고 인터넷 방송을 보면서 집에서 실습을 해 보았다.

여전히 허둥대며 제한된 시간에 맞추지 못하였으며 모양도 안나고 설거지감만 잔뜩 생겼다.

한 달동안 이 요리 실습에만 시간을 다 쏟아 부어야 가능할 것 같았는데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다.


내가 한식조리 기능사 자격증을 왜 따려고 하는 것일까?

이왕 배웠으니 번듯하게 자격증을 따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인가?

아니면 자격증을 가지고 취업을 하기 위한 것인가?

아무래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는 쪽으로 기울여졌다.

아들과 지인에게 자문을 구하였더니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하였다.

늦은 나이에 공부하여 자격증을 따면 스스로에게 자부심이 생기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그림그리기, 여행, 어학 공부 까지 포기하면서 자격증을 따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의 이 결정이 후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번듯하게 자랑할 수 있는 자격증 취득보다

나는 지금의 즐거움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깨끗하게 포기하였다.

비록 원하였던 자격증 취득은 못하였지만 요리 학원을 다닌 덕분에

요즘 나는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꺼내어 이리저리 응용을 하여 음식만드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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