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성북구 덕수교회. 혜화동 성당.

푸른비3 2019. 3. 1. 11:29

2019.2.26. 화.


오래만에 미세먼지도 없고 봄햇살도 포근하여 성북구로 나들이 나갔다.

역사적인 흔적과 문화가 숨쉬는 동네인듯 하여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다.

평소에 가 보고 싶었던 성북구에 위치한 혜화동성당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한성대역에서 내려 먼저 덕수교회부터 잠깐 구경하고 가고 싶었다.


천주교 신자인 내가 덕수교회에 가면 교회내부를 구경할 수 있을까 염려하며

언덕위로 올라가니 마침 교회문이 열려 있어서 살그머니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성당의 내부와 별 차이없지만 제단대신 강단이 세워져 있고 성인상이 없었다.

그 뒤의 있는 일제강점기의 부호가 세운 이종석 별장까지 구경하고 내려왔다.


덕수교회에 이어서 혜화동성당을 가려면 높은 언덕을 지나야 갈 수 있었다.

멀리 지방으로 트레킹을 나가는 셈치고 나는 천천히 이 언덕길을 걷기로 하였다.

등으로 따스한 햇살과 볼을 간지럽히는 부드러운 봄바람을 즐기며 걸었다.

초행길이라 몇 번이나 멈추어서서 길을 물었는데 모두 친절하게 잘 알려 주었다.


혜화동 성당은 (등록문화재 제230호 지정) 1955년 건축가 이희태(요한)이 설계하였다.

성당입구의 전면은 '최후의 심판도'는 화강암으로 조각한 대형 부조로,

고 김세중 서울대교수가 원도를 작성하고 장기은 교수와 함께 조각하였다.

루카의 성경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의식과 삶의 방향을 나타내었다고 하였다.


성당안에 들어가니 평일이라 몇 몇의 신자가 조용히 묵상하는 모습이 보였다.

혜화동 성당에는 많은 종교적인 유물이 있는데 그중에서 스테인드글라스는

이남규 교수가 천지창조부터 구세사의 역사를 표현한 것으로 이 성당의 자랑이다.

문을 밀고 들어서니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통하여 들어오는 빛이 엄숙함을 더하였다.

푸르스름한 벽의 제단위의 십자가에 밝은 빛이 촛점을 이루면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제단옆의 파이프 오르간에는 연주자가 저음로 연습을 하여 은은한 분위기였다.

나도 성호를 긋고 묵상을 하고 난후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사진을 찍었다.

나선 김에 성당뒤의 가톨릭 대학교도 방문하고 싶었으니 일반인의 방문은 허락되지 않았다.




도로변에 세워진 성북구 안내도.


성북구의 명소 안내판.


덕수교회 건너편의 건물은 수도원인 듯?


덕수교회.


덕수교회 창립 50주년 기념 조각상.


교회 부속 건물과 멋진 자태의 소나무.


덕수교회 전경.


교회의 첨탑과 은행나무.


교회의 내부.


이종석 별장 앞의 안내판.


이종석 벽장은 덕수교회에서 관리.


이종석별장.


별장 별채.


본체의 기품있는 자태.


대문.


이곳에서 문학활동을 하였다는 알림판.


혜화동 성당.


혜화동 성당의 설명판.


성당 정면의 벽면에 성경의 내용을 조각으로 표현.


성당 마당의 십자가의 길 12처.


성모상인지? 제자상인지 아리송.


스테인드글라스로 빛이 들어 오는 성당 내부.


성당의 정면.


가시관을 쓴 예수상.


혜화동 성당의 자랑인 스테인드글라스.


5병 2어를 표현?


이남규 교수가 제작하였다고 한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찍은 사진.


2층에서 내려다 본 성당내부.


성해(성인의 유해)


성해의 설명판.



103위 한국순교성인화.


제단.


성당뒷편에 있는 가톨릭대학교는 일반인 출입금지라서 문앞에서 되돌아 나왔다.


혜화문.


    *      *     *       *


아래는 혜화동성당 홈페이지에서 복사한 글과그림

본당 건축 성미술

본당 건축물 소개

혜화동성당(등록문화재 제230호 지정)은 1955년 건축가 이희태(요한)에 의해 설계되었다.
국내파 건축가로 철저하게 독자적이고 비주류적인 건축 인생을 살았던 이희태의 작가 소신이 녹아있는 본당 건축은 단순명료한 기하학적인 형태, 비대칭적 입면 구성 등 기존 성당 건축의 정형된 틀을 깬 독자적 양식으로 1960년대 이후 교회 건축의 한 모델이 되었다.

한국 현대사의 격변 속에서 당시 대다수의 건축가들이 모더니즘과 국제주의 건축을 수용하고 소화하기에 급급하여 자신의 개성을 개발하고 표현하지 못했던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기존 성당의 형태 개념을 거부한 혜화동성당의 출현은 경이로운 일이었다.
기념비적인 크기의 계단 위에 설정된 추상적 매스, 그리고 전면 스크린의 조각으로 입면을 대체한 구상에서 이희태 건축가의 자생적인 독창성을 읽을 수 있다. 혜화동성당은 역사적인 의미와 더불어 건축사적으로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 성당
  • 성체조배실
  • 십자가의 길
  • 로사리오 기도
  • 사제관
    대성전

    [최후의 심판도] 961, 화강암 부조

    성당 입구 전면(파사드)의 거대한 직사각형 벽에 새긴 '최후의 심판도'는 화강암으로 조각한 대형 부조물로 1961년 故 김세중 서울대 교수가 원도를 작성하고, 장기은 교수와 함께 조각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라(요한 14,6)' '천지는 변하려니와 내 말은 변치 아니하리라(루카 21,33)'는 성경 말씀은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를 내포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녀야할 신원 의식과 삶의 방향을 잘 나타내고 있다.
    성경 말씀 아래 상징으로 표현된 예수 그리스도의 상에서 손가락 세 개가 펴져 있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의미하고 품에 안고 있는 지구의는 인간 세상을 뜻하며 그 위의 십자가는 세상의 죄에 대한 구세주의 승리를 표상한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날개를 단 사람과 동물이 주님을 호위하며 공경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는 네 복음서를 상징하는데 사자는 마르코 복음서, 독수리는 요한 복음서, 사람은 마태오 복음서, 황소는 루카 복음서를 가리킨다.


    [성모상]- 1996. 최종태(요셉) 교수

    마치 우리의 어머니 같은 친근한 한국적인 성모님을 조각으로 형상화했다.

    [성 베네딕도상] -1961년 김세중(프란치스코) 교수

    본당의 주보성인인 성 베네딕도(St.Benedictus Abbas)의 모습을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터치로 표현한 화강석 부조작품. 성인이 들고 계신 지팡이는 착한 목자임을, 책은 하느님의 말씀을 상징하고 있다.

    성체조배실

    [성녀 소화데레사상] 1993년 이종상교수가 영적 감동으로 1993년 제작, 기증한 작품으로 화강석 통돌로 정다듬해 아취돔을 만들고 황동의 성상을 그 안에 모셨다. 천상에는 성령을 나타내는 비둘기의 형상을, 배면에는 형상을 상하로 배치하고 중앙에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의 고상을 지극히 생략된 단선으로 표현했다.

    [성체조배실]

    혜화동 본당의 주보성인이 원래는 베네딕도 성인 한분이셨으나 1960년경 성당 신축공사 시 소화데레사 성녀에게 9일 기도를 드리고 공사한 것을 계기로 이 두분을 모두 주보성인으로 모시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베네딕도. 소화데레사의 이름 및 당시 주임신부였던 정원진(루가)신부, 기성회 임원과 위원의 명단을 기록한 한지를 연관에 넣어 정초식때에 땅에 묻었다. 이러한 연유로 1990년 소성당을 짓게 되었을 때 그 이름을 ‘소화성당’으로 부르게 되었다

    십자가의 길
    혜화동 본당 성미술 중에 유일하게 외국인에 의해 제작된 작품이다. 주한 미국 대사관에 부임한 남편을 따라온 조각가 핸더슨 부인이 1960년 경, 장 발(루드비꼬) 교수의 자문을 받아 황동 부조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 변형되고 과장된 인체의 표현에서 극적인 상황 설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14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신 후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 산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14가지의 중요한 사건을 성화나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십자가의 길은 초기 교회시대에 예루살렘을 순례하던 순례자들이 실제로 빌라도 관저에서 시작하여 갈바리아 산까지 걸으면서 기도드렸던 데서 유래한다.
    로사리오의 기도
    [로사리오 기도] -1994년 최봉자 레지나 수녀 작품, 화강석

    본당 대성전 왼쪽벽에 위치에 있는 ‘로사리오의 기도’는 1994년 최봉자 레지나 수녀의 작품이다.
    로사리오란 ‘묵주’ 혹은 ‘묵주의 기도’를 말하며 ‘장미의 꽃다발’이나 그 화관을 뜻한다. 로사리오의기원은 초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자기 자신을 신에게 바친다는 뜻으로 머리에 장미꽃으로 엮은 관을 쓰는 관습이 있었는데 특히 순교자들은 코로세움 경기장에 끌려가 사자의 먹이가 될때 하느님께 대한 합당한 예모로써 이 관을 썼었다. 이때 신자들은 밤중에 몰래 순교자들이 썼던 장미관을 한데 모아놓고 꽃송이마다 기도를 한가지씩 올렸는데 이것이 그 기원이 되었다.
    사제관
    [사제관]

    성당건물과 함께 완공된 사제관은 교구청의 보조없이 총 공사비의 90% 이상을 본당 교우들의 성금으로 충당해 완공되었다. 이후 노후한 사제관의 신축공사가 1975년 한국순교복자 79위의 시복 50주년을 기념해 이루어졌다. 사제관 건립은 당시 사목위원들과 방장회에서 모금운동에 적극 앞장서 가능했는데 특히 당시 대학교 4학년생이던 김수영 아우구스티노가 갑자기 병사하면서 평소에 저축했던 50만원을 사제관 신축기금으로 봉헌하겠다는 유지를 남긴 미담은 유명하다 이런 마음이 모아져 1975년 12월 26일 “순교 복자 79위 시복 50주년 기념 사제관”이란 이름으로 준공되었다.

    백동 성미술 소개

    혜화동성당은 단일 성당으로는 처음으로 '혜화동성당 성미술 도록', 《우리와 함께 머무소서》를 발간했을 정도로 한국 가톨릭 성미술품의 보물창고라 할 수 있다.

    유리그림
    혜화동 본당의 유리그림은 이남규(루가) 교수가 1980년과 1989-1991년에 걸쳐 제작한 작품이다. 총 29점의 유리그림은 일정한 선의 흐름과 색조의 조화로 천지창조에서 성령강림까지의 구세사를 표현함으로써 성당 전체가 해맑은 종교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작품 중 4점은 (나는 길, 진리, 생명이다./ 성부/ 성자/ 성령) 3cm 두께의 두꺼운 유리를 사용한 달 드 베르(Dalle de verre) 방법으로 제작되어 빛의 굴절과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빛의 효과를 한층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국산 색유리 타일을 만들어 냈고 이 새로운 재료로 훌륭한 작품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펀글)


    아래는 성북구 홈페이지에서 복사한 그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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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 도성의 북쪽 마을이라 성북동(城北洞)이라 불리는 이 특별한 동네는 예부터 수많은 작가들이 창작의 고향으로 뿌리를 내렸고, 수도(首都)를 지키는 북악산과 어울려 경관이 수려했습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한양도성, 민족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간송미술관, 가슴 아린 사연을 간직한 길상사 등 이름만 들어도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곳에서 특별한 서울을 경험해볼 수 있습니다. 성북동이 처음이라면 한번에 돌아볼 수 있는 메인코스가 좋고, 아니라면 예인의 자취를 따라가보거나 사랑하는 이와 담소를 나누며 한양도성길을 걷는 등 테마별 여행도 좋습니다. (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