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 글)
* * * *
나의 딸의 딸
최인호 지음.
여백 출판사
(2015.4.1~4.5)
내가 봉사하는 마을문고 작은도서관에
몇 년 전 작고한 최인호의 책이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최인호는 참으로 글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변의 일상생활을 쉬운 문체로 잘 쓴다.
이번에 읽은 이 책 <나의 딸의 딸>도
누구나 부담없이 식탁에 앉아서도 읽을 수 있는 글이다.
특히 그는 자기의 가족에 대한 글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잘 쓴다.
이 글도 소설의 형식을 빌어 쓴 생활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에 출시된 <가족>이란 연작 소설에서도,
작가의 어머니와 아내. 아들 등 가족의 생생한 이야기와
그의 딸 다혜의 사랑스러운 성장모습 이야기로 익숙한데,
이번에는 그 딸 다혜가 결혼하여 나은 딸의 이야기이다.
책임의 부담감에서 벗어나서 그저 귀여워하고 이뻐하기만 하면
되는 손자들의 자라는 모습을 대부분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오죽 손자 자랑을 많이 하였으면 손자 자랑하려면
돈을 내어놓고 자랑하라는 우스개 말이 생겼을까?
이 책에서도 최인호의 손녀 사랑은 참으로 눈물겹기까지 하였다.
가까이 사는 것도 아닌고 멀리 미국에 사니 그 안타까움이 더 할 것이다.
손녀가 한국에서 지내다가 미국으로 가 버리면 눈에 밟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손녀의 흔적을 안고 눈물까지 뿌린다는게 이해가 된다.
작가의 쉽고 유려한 문체는 독서의 즐거움을 더해 주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마음에 와 닿는 멋진 글들을
노트에 옮겨 적어 보았다.
p93 목련꽃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왠지 귀기가 어려있다.
한밤중에 목련꽃을 보면 웬지 마음이 섬뜩해진다.
무슨 상복을 입고 있는 여인같기도 하고,종이로 만든 조화같기도 하고,
승무를 추는 여인의 머리에 쓴 고깔같기도 하도,
잘 빨아 널어 말린 버선짝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p 94 아아, 그렇구나.
봄 꽃은 잎을 무성하게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 피어나는 전야제의 꽃이다.
그렇다면 여름의 꽃은 무엇인가.
그것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피어나는 꽃이 아닌가.
그렇다면 또 가을에 피는 꽃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서 피어나는 꽃이다.
그렇다. 나무마다 피어나는 꽃들도 다 제각기
나름대로의 의무나 책임이 있는 것이다.
p223 크리스토퍼라는 성인은 대충 시리아에서 태어나 251년경 소아시아에서 순교하였을 것.
그는 사람들을 어깨에 메고 강을 건네주는 일로 생계를 꾸려간 거인이었다.
어느날 조그만 어린아이가 강을 건네게 해달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거인이 강을 건네려고 물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어린아이가 너무 무거워서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너는 지금 온 세상을 옮기고 있다. 나는 네가 찾던 주인 예수 그리스도이다"
원래 크리스토포로스는 그리스어로서 '그리스도를 어깨에 지고 간다'는 뜻.
이로부터 크리스토퍼 성인은 모든 여행자의 수호 성인이 되었던 것이다.
* * * *
나 역시 최인호 처럼 손자 손녀를 볼 나이가 되었다.
손자가 있는 내 친구들은
스마트폰에 손자의 사진을 바탕화면으로 깔고
수시로 들여다 보며 그리워한다.
지난 6월초에 나도 드디어 손자를 보았지만 아직 그 애틋함은 모른다.
예정일보다 일직 출산한 며느리가 조리원에 있을 적에 한 번,
지난 여름 아라와 함께 아들집에서 두 번을 만났지만,
짧은 시간 두 번 보았기 때문인가 아직 친한 감동은 받지 못하였다.
며느리가 수시로 보내주는 사진속에
쑥쑥 자라는 손자의 모습이 대견하기는 하지만
피부에 와 닿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내 감정이 메말라 버린 탓일까?
곧 다가올 추석에 만나게 될 손자의 모습이 기다려진다.
백일을 넘겼으니 방긋 웃기도 하고 재롱도 피울지도 모르겠다.
지난 봄에 읽었던 이 책의 독후감을 여름을 넘기고 초가을이 되어서야 쓰려니
책의 내용보다 내 이야기를 늘여 놓은 이상한 독후감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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