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이태리 낭만일주 44-폼페이의 공중목욕탕

푸른비3 2014. 7. 17. 19:02

2014.7.13.일.

 

지난 봄에 <폼페이 최후의 날> 영화가 상영되었지만 차이피일 미루다 놓쳐 버렸다.

그 영화를 감상하고 이곳에 왔더라면 더욱 생생하게 와 닿을 것 같았다.

당시의 건축 기술이 얼마나 놀라운지 남아있는 잔해들이 생생하게 전해 주었다.

특히 벽내부에 토관으로 연결한 배수관이 그들의 생활수준을 나타내는 듯 하였다.

 

1592년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 우연히 발견한 폼페이의 유적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고대사의 생활모습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아직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지 곳곳에 측량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밭을 갈다 우연히 발견한 중국 서안의 진시황제 병마용갱을 생각나게 하였다.

 

당시의 공동수도, 빵가게, 세탁소 등 지금의 우리 동네와 비슷한 거리였는데

고대 로마인들은 특히 목욕을 좋아하였는지 공중 목욕탕이 시선을 끌었다.

그 규모와 시설이 지금의 호화 사우나에 뒤떨어지지 않는 듯 하였다.

벽에는 다양한 조각이 새겨져 있었고, 바닥에는 자잘한 타일이 깔려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대형 공중탕은 무료 입장이며 신분에 따라 각기 다른

방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귀족들이 지금처럼 마사지를 받는 곳도 있었다.

천장은 둥글게 하여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게 하였으며, 자연 채광 구멍이 뚫려 있고

커다란 대리석으로 된 수반도 있어 당시의 화려함을 짐작케 하였다.

    *      *       *       *

 

 

 

1592년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 우연히 발견한 폼페이의 유적들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전세계인들이 모여드는 고대 유적지로 유명한 폼페이는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이자 로마 귀족들의 휴양 도시였으며 사치와 향락이 끊이지 않았던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폼페이는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도시 전체가 사라진 뒤 1592년 한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굴되면서 세상에 재등장했다. 뜨거운 화산재를 피하려다가 결국 4m 높이의 화산재 속에 묻혀버린 폼페이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인간화석은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폼페이 인간화석은 고대 미술사 연구에 획기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현재까지도 세계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죽음의 순간을 눈 앞에 두고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어머니, 입을 틀어막은 채 움츠린 소년, 연기를 피해 고개를 숙인 남자, 그리고 서로의 품에서 죽어간 연인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끌었으며, 미술, 소설 등의 다양한 분야에 영감을 주어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 되었다.
(펀글)

 

당시의 주택들.

 

 

도로의 모습.

 

 

공중목욕탕의 둥근 욕조.

 

목욕탕 내부의 조각들.

 

섬세한 문양의 조각이 새겨진 목욕탕 배부.

 

 

마사지 실.

 

근육질의 남성 조각상.

 

대리석으로 만든 목욕탕 의자.

 

대리석 분수.

 

바닥의 타일.

 

자연 채광이 들어오는 둥근 천장.

 

도로에 파인 속도조절 홈 자국.

 

빵가게 화덕.

 

그때도 피자를 구웠을까?

 

개인주택의 부엌.

 

 

 

측량을 하는 학생들.

 

 

벽속의 수도관.

 

아직도 발굴 조사가 진행중인듯.

 

깨어진 토관안의 담배꽁초와 잡초,.

 

아름다운 문양을 모자이크한 벽.

 

규모가 큰 집은 아마도 귀족의 집인듯.

 

 

마을의 공동수도 .

 

길게 뻗은 거리의 모습.

 

인증사진 한 장.

 

벽에 기대어서 또 한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