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邂逅

푸른비3 2008. 6. 27. 19:38

늦동이 아라가 올해 우리 나이로 15살이니

친정 어머니 돌아가신지도 어느새 15년째로

접어 들었나 보다.

 

지나고 보니 참으로 찰나같은 순간이 스쳐 지나간 듯 하다.

어머니 살아 계실적 아들  하나는 너무 외로우니

하나 더 낳아라, 내가 키우 줄께....하셨건만

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형제 자매속에서, 난  제대로 내 몫 하나 챙길 수 없었고

내가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모두 다 밀쳐 놓아야 했기 때문에

나는 하나만 낳아 저 하고 싶은 것 다 충족시켜 주고 싶었었다.

 

그렇게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병석에 누운지 석달만에

너무나 허망하게 저 세상으로 가 버리자

나는 마음의 기둥을 잃어버린 듯 허허롭기만 하였다.

 

그 허전한 마음을 매꾸고 싶어 임신을 결심하였고

다행히 소망하였던 딸을 얻게 되었으니,

난 그 딸을 돌아가신 어머니가 내게 보낸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학원을 운영하였는데,

저녁 늦은 시간에 돌아와 몸이 파김치처럼  늘어져도

딸의 얼굴을 마주하면 피로가 다 달아나는 듯 했다.

 

아이들은 키울적에 방긋 웃어줌으로써

갚아야 할 효도를 다 했다고 한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아이를 마주 대하면 새로운 힘이 솟아 나는 듯 하였으니....

 

오래동안 병고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내가 우리 딸보다 더 어린 시절 돌아 가시자,

어머니가 생활 전선에 나서셨다.

 

그 어려운 시절 어머니에게 힘이 되어 주신 것은

역시 신앙의 힘이었을 것이다.

힘든 하루가 끝난 후 저녁 기도를 잊지 않고 했으니

지금 내 헐렁한 신앙심은 부끄럽기만 하다.

 

그 때 어머니의 어려운 사정을 빤히 아셨던

신부님은 정신적으로 물적으로 어머니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던 모양이었다.

 

어린 나에게 이 다음 니가 어른이 되면

신부님을 꼭 찾아뵈어라. 당부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 신부님의 근황을 얼마전 친구로 부터 전해 듣고

꼭 감사하였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지금은 사목활동에서 은퇴하여  혼자 여생을 보낸다고 하였다.

 

어제 아침 전화를 하니 바로 그 옛날의 신부님 목소리였다.

40년의 세월을 훌쩍 건너 뛴 듯 신부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있고 맑고 높은 바로 그 옛날의 신부님 목소리였다.

 

내가 여중생 단발머리 시절이었으니 참으로 까마득 하실 것이다.

"성당 밑 성 유리안나 딸이어요. 신부님."

하니 금방 오~! 그래...하시며 반가워 하셨다.

 

친구와 셋이서 일식집에서 약속을 정하고 시간에 맞춰 나갔는데,

한참 가다보니  아이구, 세상에....잊지 말아야지. 하고

현관 신발장 앞에 놓아둔 양주를 그대로 두고 왔으니....

 

다시 집으로 돌아와 그걸 가지고 가니

벌써 친구와 신부님께서 먼저 와 계셨다.

약속 시간 12시에서 5분 지났을 뿐인데도

어찌나 미안스럽든지.....

 

40년의 세월을 거슬려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어머니 이야기, 형제들 이야기, 이웃 사람들 이야기....

31살의 새파랗던 신부님도 어느새 흰서리가 머리에 내렸건만

얼굴에 주름만 그려졌을 뿐 여전히 건강하시고 미남이셨다.

 

"이렇게 잘 자라 주어 참 고맙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구나."

하시는 신부님의 모습이 난 더욱 아름답다고 여겨졌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참 잘 했다. 하시면서 빙그레 웃으실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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