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53번째의 내 생일

푸른비3 2008. 6. 21. 04:35

53번째라니.....

내가 벌써 이렇게 많은 숫자를 살아왔을까?

어떤 일이든지 10번만 넘기면 익숙해지는 법인데

아직도 내 삶의 길은 충분히 연습되지 않은걸까?

자꾸만 실수를 하고 헛방을 짚는다.

 

내 어머니는 54년전 나를 낳으실적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내위로 벌써 아들 셋 딸 셋을 두었으니

가능하면 그냥 낳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습관적으로 임신하여 나를 낳았을적

나를 들여다보며 기뻐하셨을까?

나는 한번도 어머니로부터 "사랑해~!"

하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어머니는 아들 딸을 차별하시지 않아

생일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미역국을 끓여 주셨다. 

9남매나 되는 아이들 생일을

따로 수첩에 기록해 두지도 않았지만

건너뛰지 않았으니 참 대단하신 기억력이다.

 

어릴적 어머니는 틈틈히 성경 이야기를 들려 주셨고

학교 취학하기전 글자는 가르쳐 주시지 않았지만,

신앙 교육은 철저히 시키셨다.

 

주의 기도를 비롯하여 묵주기도까지 암송시키셨는데

내 기억력이 틀출하였는지, 형제들중

내가 가장 많은 칭찬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때로는 어머니는 우리가 기도를 틀리지 않고

끝까지 암송하면 상금을 주시기까지 하셨다.

 

아버지는 내 중1년 여름방학때 돌아가셨으니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별반 남아있지 않지만

내 바로 위의 오빠보다 나를 더 좋아하셨던

기억만은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오빠와 가끔 다투어 내가 울기라도 하면

아버지는 항상 오빠를 꾸중하시어 오히려

내가 죄책감과 미안한 감정을 느끼게 하셨다.

내가 시골에서 그 당시 대도시였던 마산의 가톨릭 여학교

성지여중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자

은근히 더 귀하게 여겨 주셨던 것 같은 기억이 떠 오른다.

 

54번째 생일에 대하여 쓰면서

느닷없이 왜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가

이렇게 끝도없이 쏟아져 나오는 걸까?

부모님이 있었기에 내가 있기 때문일까?

 

생일 날 새벽무렵에야 돌아와 내곁에 누운 남편에게

잠결처럼 여보 내 생일 축하해줘....했더니

어, 그래. 우리 못난이, 생일 축하해....하고는

금방 잠속으로 빠져 든다.

 

내일 아침 미역국은 내가 끓여줄께. 하던 아들놈을

기다렸다가는 아침도 굶기고 학교 보내야 할 것 같아

부지런히 미역국 끓였지만,

남편에게는 한 그릇 먹이지도 못하고 출근시켜야 했다.

 

출근하는 남편 등에다가 오늘 선물 뭘까? 하였더니

다 늙어 생일 선물은 무슨....하면서 그냥 나가 버린다.

쳇~! 저렇게 멋없는 남자하고는....

 

영어 수업을 듣고 작업실로 내려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아라 선생님으로 부터

아라가 다리를 다쳐 지금 병원으로 데려가는데

어쩌면 기브스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전화를 받았다.

 

하필 오늘 같은 날....

하는 생각으로 붓을 씻고 병원으로 갔더니

병원 점심 시간이라 아라 혼자 대기실에 기다리다가

나를 보고 멋적게 웃으며

"엄마, 미안해요. 오늘이 엄마 생일인데...."

말을 잇지 못한다.

무슨 소리, 많이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남편의 퇴근시간에 맞추어

딩동하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장미 꽃바구니 선물이 배달되었다.

어머머....여보, 고마워요.

 

저녁 외식은 남편도 속이 더부룩하여 못나가겠다고 하여

남편들은 오지 않게 하여 여자 셋이서만

근처의 한식집으로 가서 조촐하게 하였다.

용점이가 감기 몸살이 심하여 2차는 다음에

다시 뭉치기로 하고 일찍 헤어져 돌아나오는 길에

하늘에 둥실 떠있는 보름에 가까운 풍만한 달.

그 달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보낸 꽃바구니.

 

 

 친구가 보내준 생일 케�.

 

 아들이 사 준 샤워용품.

 

 아라는 발을 다쳐 선물을 사려 갈 수없어 속상해 하다가

자신의 전 재산 45000원을 내 놓으며 엄마가 가고 싶어하였던

미샤 마이어스키 첼로 연주회 입장권을 사라고 봉투에 넣어 내 놓았다.

 

 

 멀리 서울에 있는 소중한  내친구는

그림물감을 선물 보내주었다.

이만하면 축복받은 생일 아닌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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