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가 내릴 무렵, 누군가가 우리집 대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잠시 후 밀집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머뭇거리며 마당 안으로 들어선 그는, "저 혹시 이 집 어른, 논에 나가셨습니까?....." 하고 말문을 열었다. 나는 문간에서 제법 떨어진 마루에 있었기에, 무슨 말이 이어졌는지 듣지 못하였지만, 엄마와 방금 학교에서 돌아온 작은 오빠는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달려나갔다. 마당 한 켠의 드럼통으로 만든 임시로 만든 화덕에는 보릿단을 태워 지은 밥은 식어가고, 장독대 위로 늘어진 석류나무에서 붉은 석류꽃이 지나가는 바람에 툭 떨어졌다. 뉘엿뉘엿 해는 저물고 소먹이를 나갔던 여동생이 소고삐를 쥐고 울면서 돌아왔다. "언니야, 아버지가 물에 빠졌다고 한다. 나도 얼른 가볼게." 동생은 외양간에 소를 몰아넣고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