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소리없이 내리는 비.
그동안 긴 가뭄으로 대지가 목말라 하였지만
야외스케치가 약속되어 있었기에 하루만 더 있다 내리지....하는 마음이었다.
토요일 갔었던 포항 보경사의 계곡물도 거의 말라 있었고,
더구나 오어사를 포근히 감싸고 있었던 오어지의 물도 다 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비가 오기는 와야 하는데....
카풀 하기로 약속한 송선생님이 비가 와서 자기는 쉬겠다고 전화가 왔다.
그동안 한달 가까이 나가지 않아 손이 근질거렸는데, 어쩐다?
아직 자고 있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야외 스케치 장소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는 나에게
어제도 종일 혼자 보내었는데 오늘은 자기랑 있는게 어떻냐고 하여
"그럼 내가 가고 싶은 곳 데려다 주야해."하고 현관앞에 꾸려 놓은
이젤이랑 캔버스를 도로 집어 넣었다.
아침밥을 먹고 나더니, 남편은 슬슬 뒤꽁무니를 뺐다.
비도 오고 몇번이나 갔던 남해 창선대교는 또 뭘 가려고 하느냐면서...
하는 수 없이 그럼 가까운 낙동강에 데려다 달라고 하였다.
내가 운전만 할 수 있다면 섬진강변을 달릴텐데...
그동안 흙먼지 뒤집어 쓰고 있던 풀과 나무는 내린 비에
말끔히 씻은 모습으로 눈에 들어왔다.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차를 세우고
남편은 담배를 피워 물고, 나는 디카로 여러장 담았다.
개망초며, 이름모를 흰 풀꽃이 초록빛 속에서 더욱 눈부셨다.
낙동강변은 황금모래빛으로 강옆에 편안히 머리를 풀어헤치고 누워 있었다.
건너편 강변에 커다란 물새 두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여보, 저 두마리 새가 꼭 우리 부부같애.
한놈이 다가서면, 다른 한놈을 풀썩 뛰어 자리를 옮겨가고.흐흐..."
내 말에 남편도 싱긋 웃었다.
오래동안 나는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건너편 얕은 산위에 과수원으로 둘려쌓인 저런 집에 살 수 있었으면...
"여보, 당신 퇴직하면 이런 곳에 와서 농사짓고 살고 싶어요."
"너, 농사 짓는 게 얼마나 힘들줄이나 알어?"
"호호, 농사는 당신이 짓고, 나는 음악 들으며 그림이나 그리지 뭐.
그리고 흐르는 강물 실컷 바라보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는 내 말에 대답이 앖다.
주남 저수지의 호수 같았던 그 넓은 물도 다 말라 우묵한 습지로 변해 있었다.
그곁에 연밭이 있었는데 연꽃은 몇송이 피어 잇을뿐이고 잎들만 무성하였다.
전에 힘들여 무안까지 연꽃 보려 가지 말고 여기와서 연꽃 보며 되잖아?
하는 말에 그곳 연꽃과 이곳 연꽃이 같아요? 무드 없는 남자같기는....
아까는 내가 곁에 앉으니 하는 말 "못 생긴 마누라 말고
싱싱한 애인이 옆에 앉아 같이 드라이브하면 얼마나 좋을꼬?"하면서
약을 올렸었는데....
누군 다 늙은 남편아닌 멋진 애인하고 다니고 싶지 않을까? 키득키득....
점심때가 지나 배가 고파졌다.
"우리 백숙 먹을까? 아니면 장어 구이 먹을까?
당신 뭐 먹고 싶어? "남편이 하는 말에
"난 붕어찜 먹고 싶어요" 했더니, 찜찜한 표정이었다.
분위기 그럴듯한 강변의 붕어찜, 메기탕이라고 간판을 내건 집앞에
차를 주차 시키더니,내리지도 않고
"이곳은 우리 같은 부부들이 올 곳이 아닌 것 같아."
하고는 부릉~ 다시 차를 내몰았다.
"칫. 우리는 연인같은 분위기 좀 내면 안돼?"
뽀류퉁해져서 "난 느끼한 백숙이나 장어구이 먹고 싶지 않아요.
그냥 집에 가서 밥먹어요." 하였다.
집이 가까워 지자, 막상 집에 가면 내가 밥상준비를 해야 하기에
"호호, 우리 그냥 집앞에서 돼지갈비 먹고 갈까요?"
부부사이는 이래서 편한 사이일까?
불편한 사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