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한번씩만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로 남편과 약속하고
올 2월에 그 기회를 호주여행으로 벌써 써 버렸기에 올해는
해외여행 더 이상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여름 휴가철이 가까워 지니 내 마음은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가까운 중국 서안이나 일본 북해도라도 다녀오고 싶었다.
내 나이 어느새 반백년을 넘겼으니 앞으로 몇번이나 건강한
몸으로 여행을 다닐 수 있겠는가?
가보고 싶은 나라는 끝없이 많은데, 한해에 한번의 해외여행을
할 수 있다면 과연 몇 나라를 돌아 볼 수 있을련지....?
이 아름다운 초록별을 떠나기전 갈 수 있다면 구석구석 돌아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싶은데....
시간과 돈의 여유가 없는 나는 이웃 러시아로 떠나고 싶었다.
'의사 지바고'와' 부활'의 무대인 드넓은 광야를 바라볼 수 있다면....
맑은 바이칼 호수와 자작나무 숲도 보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여러 여행사를 기웃거려 보았지만 나의 조건에
맞는곳이 없었다.
그런데 아들이 우연히 동유럽을 권하였다.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이고, 나와 휴가일정이 일치하였다.
사실 나의 휴가일은 남편의 휴가일인것을.ㅎㅎㅎ
남편에게 집안살림을 맡기고 떠나려니
자연히 남편의 휴가일을 내 휴가일로 맞추어야 한다.
남편은 이 철없는 아내의 고집에 항상 한발짝 뒤로 물려 서 준다.
처음에는 안된다고 윽박질렸지만
결국 나의 부탁과 간절한 바램에 허락하지 않을 수 없다.
여행 경비는 그동안 반찬비 아낀것, 택시타지 않고 걸어다닌 것, 등등
그동안 모은 돈으로 할테니 경비 걱정은 하지 말아야고 큰소리 치면서....
남편은 아이들에게 좀 미안한 줄 알아라 하면서 마지못해 허락해 주었다.
허락이 떨어진 후 나는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여
남편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였다.
행여 다시 취소한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으로.
"평소에 그렇게 좀 해. 속 보인다." 하면서 남편은 눈을 흘긴다.
그토록 가 보고 싶었던 프라하, 부다페스트, 비인....
영화속의 아름답고 약간은 우수에 젖은 그 도시들을 갈 수 있게 되었는데
나는 그의 뜬눈으로 잠이 깊이 들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밤새 몰아치는 비바람소리도 날 잠 못들게 하였다.
인천까지 가는 비행기가 이 비바람에 무사히 뜰 수 있게 될까?
만약 갈 수 없다면 열차를 이용해야하나?....
그동안 생각날적 마다 하나씩 꾸려놓은 짐가방을 문앞에 내다놓고
한번씩 더 점검하고, 빠진것은 없을까?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다시 꺼내놓고....
냉장고 문을 열고 일주일 동안 먹을 반찬에 꼼꼼히 언제 무엇할적에 상용할 것
등등 메모를 붙여 놓고....
주부가 집떠나려고 하니 앞을 가로막는게 하나 둘이 아니다.
에라, 모르겠다. 한주일 정도 무얼해 먹든 굶어죽진 않겠지?
마지막으로 아직 초등학생인 막내딸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고 싶었다.
처음 중국으로 혼자 여행 떠날 적 그 딸아이는 유치원생이었다.
나중에 딸 아이가 쓴 일기를 들여다 보았더니
'엄마를 보낸 후 바다만큼 울었다.'라는 글귀를 보고 눈시울을 적시었던 기억이 난다.
땅아이에게 편지를 쓰고 나니 제일 고마운 것 역시 남편이라는 생각으로
남편에게도 고맙다는 편지를 쓰고
내가 없는 동안 부엌일을 제일 많이 해야 할 아들에게도 편지를 썼다.
일주일 집떠나는데 이렇게 발목을 잡는 것이 한두가지 아닌데
이 다음 저세상은 어떻게 훌훌 털고 떠나게 될까?
김해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아침 7시 출발이니
이제 떠날 채비를 해야겠다.
"모든것 주님에게 맡기고 떠납니다.
주님 어여삐 여겨기고 보살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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