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다음 주 군 입대를 앞 둔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부산 범어사에서
열리는 일요화가회 전국 스케치 대회도 참석하지 않았는데, 이 아들놈은 다른 날 보다 더 일찍
세수만 하고 집을 나가 버린다.
몇번이나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혼자서 무학산으로 오르기로 마음 먹었다.
남편은 아침 일찍 청도로 벌초떠나고...
혼자서 무학산 오르기는 처음이다.
버스에서 내려 천천히 산동네로 오르는 길목으로 접어 들었다.
학창 시절 단체영화를 보고 산동네 자치방으로 올라갔던 그길....
30년의 세월이 흘러,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그때의 흔적은 남아있었다.
모교로 오르는 길은 그때는 한갈래 였는데 지금은 두갈래길이어서 어느길로
오를까? 망설였는데 나중에 보니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체육복도 사고 학용품사는 아이들로 항상 정신이 없었던 매점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많이 변하였고, 단팥을 잔뜩 넣고 만든 포실한 찐빵집은 없어져 버렸다.
운동장은 여전히 그대로 서 있는데 왜 그렇게 작아 보이는지....
이 넓이에서 어떻게 전교 조회도 하고 스승의 날 행사도 하였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때는 좁은 줄 모르고 성모의 밤 행사에 촛불을 들고 행진도 하였는데....
계단위 1학년 6반교실.
공부하다가도 창밖으로 눈만 돌리면 잔잔한 호수같은 바다가 눈에 들어오고
봄이면 산비탈 다랑이논에서는 유채꽃이 노랗게 피어 있었는데.
이제 그 산비탈 동네는 고층 아파트로 변하여,
하얀 무꽃에 날아오는 나비는 어디로 날아갔을까?
학교를 뒤로 하고 계속 산길로 올랐다.
날씨는 그름이 낮게 내려깔려 곧 비가 올 듯 하였다.
산길을 혼자 오를적에 항상 느끼는 갈등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큰길을 가느냐? 아니면 한번도 간적이 없는 좁은 길을 택하느냐?이다.
이번에도 내 호기심이 발동하여 가본적이 없는 좁은길로 접어들었는데
곧 후회가 되었다. 길도 좁고 가파르지만, 더욱 무서운 것은 혹시 뱀이라도
나타나면 어쩔까?하는 두려움이었다.
이길을 계속 올라가면 정상에 이르겠지만 아직 얼마나 더 가야 큰길이 나타날까?
오ㅔ 그냥 평탄하고 익숙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한참이나 걸은 뒤에야 내려오는 부부를 만나 반가웠다.
얼마 가지 않으면 안개 약수터가 나온다는 설명에 용기를 얻어 열심히 걸었다.
야생화를 찍고 싶어 나선 길이었지만 정작 귀한 야생화는 잘 보이지 않고
개망초, 여뀌, 며느리밑씻개정도만 눈에 띄였다.
안개 약수터에는 얼마전 지엇는지 초가로 만든 정자가 노란 이엉으로 만든 지붕을
이고 얌전히 서 있었다.
혼자이기에 그곳에 가서 앉기도 멋적어 물만 먹고 계속 쉬지 않고 걸었다.
안개 약수터에서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나무가 거의 없는 황량한 벌판같은 길인데
나는 오히려 그 시야가 툭트인 길을 걷는것을 좋아한다.
해발 730미터밖에 되지 않는 산이지만 아래와는 기온차가 심하다.
바람이 많이 불어겉옷을 꺼내 입어야 할 정도였다.
정상에 오르니 안개가 슬밋슬밋 피어 오르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어 발밑에 무엇이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한사람이 앉기에 좋은 바위위로 끄응 올라가 그곳에서 가지고 간 김밤을 꺼내 먹었다.
혼자서 먹는 점심은 목이 메이고, 남들에게 부끄러웠다.
점심이 끝나는대로 그냥 바로 일어났다. 시야가 가려 산아래로 보이지 않고,
차한잔 나누며 이야기 할 친구도 없었으니.....
아직 산은 혼자 다니기는 역부족인가 보다.
내려오는 길은 가장 편한 서원곡계곡으로 내려왔다.
얼마전 새로 산 MP3로 바하의 파르티타를 들으니 집에서 듣는것 보다 휠씬 좋다.
자연속에 와서도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 보다
어느새 문명의 이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즐기다니....
내려오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훨씬 위험하였다.
어제 내린 비로 길이 많이 미끄러웠다.
나도 한번 미끌어져서 앞서가던 사람이 일으켜 주어 부끄러웠다.
나이 들수록 매사에 조심을 하게 되어 가파른 길에서는 아예 엉금기었다.
이 나이에 넘어져 다치면 곧 바로 뼈가 부러진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나무의 이름도 수없이 많았다.
겨우 소나무, 밤나무, 상수리나무, 벚나무 정도만 알았던 나에게
수없이 많은 나무들은 겸손하라고 가르쳐 준다.
서어나무, 비목나무, 물푸레나무, 생강나무....
이 나무들에게 언제쯤 내가 그들의 이름을 의심없이 불려줄 수
있을까?
'저기 애기똥풀꽃도 모르는 이가 지나간다...'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하였지?
저 많은 나무들이 나에게 바로 그렇게 노래하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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