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미술관 가는 길

푸른비3 2023. 9. 8. 09:20

새벽에 일어나 헤도네님의 <미술관 가는 길>을 읽고

호암미술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김환기의 전시를 예매하려고 하니

8일 오후 1시 티켓만 남아 있고 모두 매진.

이렇게 미술애호가가 많을줄이야.....

 

사람의 심리는 묘하여 -한정판매. 이번 이 마지막 기회-

이런 글을 보면 앞 뒤 가리지 않고 먼저 달려들기 마련이다.

나 역시 어머나, 1시뿐이구나. 그거라도 해야지....

직설적이고 즉흥적인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우선 예약부터 하고 싶었다.

 

그런데 기계치인 나여서 혹시 잘못 예매하면 어쩌나....

노파심이 들어 자는 딸 아라를 흔들어 깨웠다.

"아라야, 엄마 좀 도와줘. 지금 안하면 못해."

눈을 부비며 아라가 일어난 시각은 오전 5시 30분.

 

6시 알림에 일어나는 아라를 기다리지 못하고 깨워서

겨우겨우 8일 오후 1시부 입장 예약 완료.

(인증번호 받고 카드로 예매하는 것이 나는 무섭다.)

예약완료가 내 전화로 수신되는 것을 본 후

안도의 한숨을 쉬며 호암미술관 가는 길 확인을 해보았다.

 

집에서 한 시간 남짓이며 갈 수 있으리라 가늠하였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무려 2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문득, 이건 아닌데.... 하는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만큼 열정을 쏟을 정도로

김환기의 그림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잠자던 나의 이성이 슬며시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즉흥적으로 가면 안돼....

오래전 아이들 어릴적 에버랜드 가는 길에 호암미술관을

잠시 방문한 적은 있지만 무슨 그림을 보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음 기회에 전시를 보고 오는게 더 좋겠다.

 

아라는 다시 침대로 들어가고

나 혼자 예매취소를 슬쩍 눌려 보았다.

순간 '예매가 취소되었습니다. '문자가 날아왔다.

아니 예매신청하가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취소하기는 이렇게 쉽다니....?

오프라인에서는 취소하기가 번거롭고, 미안하였는데,

온 라인에서는 클릭 한번으로 깔끔하게 처리되다니....

 

6시 알림소리에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는 아라의 등뒤로,

"아라야....미안해. 생각해보니 오늘 미술관 가는 것,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 취소했어.

취소는 왜 그리 쉬워?" 머리를 긁적이며 고백했다.

 

아라는 하품을 하며,

"역시 엄마는 다혈질이야....

내가 일어날 때 까지 기다리며 생각을 하였다면...." 하였다.

 

"그래. 나는 다혈질. 직설적이야. 미안해." 하였더니,

"그래도 나는 그런 엄마가 귀엽고 사랑스러워~!" 하는

아라를 뒤로하고

살며시 문을 닫고 새벽미사를 하려 집을 나서니,

맑은 가을 아침의 소슬바람이 내 팔뚝을 간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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