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지상의 낙원 북유럽 여행.-7. 노르웨이 오슬로

푸른비3 2023. 6. 21. 23:13

2023.  6. 12. 월.

 

덴마크 코펜하겐을 아쉬움 속에 뒤로 하고 

다음날 우리는 노르웨이 오슬로항에 입항하였다.

어느 지역을 여행하던 단 며칠 만에 그 곳을 제대로 들여다 보기 어렵다.

더구나 짧은 일정에 4 개 나라를 탐방하는 여행사의  상품이니

점만 찍고 가는 여행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그래도 미술관이나

박물관 한 곳도 보지 못하고 떠나야 하니 마음 한 구석은 아쉽기만 하였다.

 

노르웨이는 한반도의 약 1.7배의 면적에 약 515만 명의 인구를 가진 나라.

정치는 입헌군주제이며 의원내각제이며 노르딕족과 사미족의 인종.

종교는 복음 루터교. 공용어는 노르웨이어이며 노르웨이 크로네를 사용한다.

'바이킹 시대'로 불렸던 8세기경부터 유럽의 공포의 존재로 부상했다.

 

그 전에는 노르웨이는 두 개의 뿔이 달린 투구를 쓴 바이킹족들이

앞뒤 끝이 뽀족하고 길쭉한 소쿠리 모양의 바이킹 해적선을 타고

해상의 지배자로 유럽의 부를 약탈한 조상의 나라 라고 막연히 생각하였는데

북유럽 여행을 예약 한 후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해 와 나름 공부를 하였다.

 

베르겐을 수도로 약 500년간 평화를 누린 이후 1397년 칼마르 동맹이후 

400년간 덴마크의 속국으로, 1814년 부터 약 90년간 스웨덴 연방으로

지배를 받았으며 세계2차대전 이후 독일에게 점령을 당한 시련을 겪은 나라였다.

NATO에는 가입하였으나  EU는 아직 미가입국으로 우럽 최고의 산유국이다.

 

우리가 타고 온 DFDS가 입항한 항구의 근처에는 오페라 하우스와

새로 신축한 뭉크미술관이 있었는데 버스에 탑승하기전, 인솔자는

우리에게 오페라하우스의 외관을 구경하고 기념 사진을 찍어라고

잠깐의 여유를 주었는데, 나는 오페라하우스 보다 뭉크미술관이 궁금했다.

 

뭉크 미술관은 1944년 뭉크가 사망하며 오슬로 시에 기증한 그림들을

바탕으로 하여 1963년 문을 열었으나, 전시공간이 열악하여

뭉크의 <절규>를 비롯하여 여러 작품이 도난당하였다고 하였다.

40년이 지난 후 2021년 10월에 오페라하우스 옆에 15층 규모의

뭉크 미술관을 신축하여 현재 2만 여점의 뭉크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오페라 하우스는 바다 위에 하얀 카펫을 깔아 놓은 듯한 건축물로

오슬로의 새로운 랜드 마크가 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다.

비스듬한 경사를 이룬 지붕은 여유와 햇벷을 즐기는 현지인과 

여행자들로 가득한데 여러 유명 가수 들이 이 지붕에서 공연을 하였다.

외부에는 이탈리아산 대리석과 화강암 등이 퍼즐처럼 맞춰져 있고

내부에는 독일산 참나무를 이용하여 따듯하면서도 유연한 느낌을 준다.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 아래 하얀 사선의 오페라 하우스를 뒤로 하고

마음 부산하게 다리 건너편에 있는 뭉크 미술관으로 걸음 을 옮겼다.

해안가에는 현장 나온 학생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건너편 바다위에는 우리가 타고 온 커다란 크루즈 선이 떠 있었고

뭉크 미술관 앞에는 이곳에서 열리는 음악회 홍보판이 걸려 있었다.

 

앞으로 약 간 기울어진 모양의 독특한 디자인의 뭉크미술관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너야했는데, 그 다리를 건너면서 나는

마치 뭉크의 그림 <절규>속의 다리 위를 건너는 연상을 하였다.

그림속의 다리는 붉은 저녁 노을이 타는듯 다리를 에워싸고

공포에 질린 한 남자는 두 귀를 막고 외치고 있었는데,

바로 불우한 환경에서 인생을 보냈던 뭉크 자신을 표현한 그림이 아니었을까?

 

그림을 볼 여유도 없으면서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15층 규모의 미술관 입구에는 전시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고,

넓직한 로비에는 편안한 의자가 놓여 있어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이었다.

언젠가 나에게 뭉크의 그림들을 감상할 여유가 온다면 기대를 하며

기념품 가게의 전시품들을 곁눈질하며 나오려니 어찌나 아쉬운지....

 

다리를 건너 오페라 하우스 안에도 잠시 들어가 보았는데,

커다란 원기둥을 연상하게 하는 나무로 에워싼 연주장 내부로 이어지는

동선이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선으로 이어진 지붕을 따라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약속시간이 임박하여 버스가 주차된 공간으로 헉헉 대며 달려 갔다.

 

오슬로의 중국 식당에서 점심은 먹은 후 카를 요한슨 거리에서

자유 일정으로 시내 투어를 하라고 하였는데, 준비없이 그냥

시내를 다녔더니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하였다.

광장의 분수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는 햇빛에 영롱하게 빛났다.

맑은 날씨에 산책나온 현지인과 관광객으로 축제 기분이었다.

 

국회의사당 앞까지 걸어갔다가 길을 잃을까 두려워 되돌아 나왔다.

노르웨이 태생의 음악가 요한 할보르센 동상이 있는 국립극장.

뭉크의 동상이 있는 오슬로 대학,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분들이

묵는다는 그랜드 호텔 등을 지나 현재 노르웨이 국왕이 살고 있는 

왕궁을 지척에 두고 약속 시간이 가까워 국립극장앞으로 돌아왔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2시간 후 휴게소까지 화장실이 없다고 

출발 전 화장실을 꼭 다녀오라고 인솔자가 말하였는데 ,

외국에 나가면 한국의 화장실 문화가 가장 그리웠다.

오슬로에도 공중 화장실은 찾아 보기 힘들고 카페나 음식점을 

이용해야 하는데, 어쩌나 하다가....용기를 내어 번화가 호텔로 들어가 

화장실을 좀 사용하고 싶다고 하였더니 친절하게 이용하라고 하였다.

 

 

 

참고서적:

#30일간의 북유럽 여행

 유창열. 김선진지음.

 북랩 book

 

#너만큼 다정한 북유럽

 글 사진 호밀씨

 TERRA

 

 #내가 만난 북유럽

 글 사진 박종수

 황금부엉이

 

#노르웨이의 시간

 신하늘 지음. 

 In

 

#핀란드 

 CHALET Tavel Book

 

#세계문화 여행 노르웨이 

 린다 마치. 마고 메이어/ 이윤정 옮김.

 시그마 북스

 

#셀프 트레블 북유럽

 유지선 지음

 상상출판

 

 #세계문화 여행 덴마크

 마크 살몬 지음. 허보미 옮김

 시그마 북스

 

 

노르웨이 오슬도로 입항.

 

오슬로 항 근처 국립오페라극장 앞의 멋진 최신 빌딩 청소를 하는 모습.

 

오슬로 국립오페라극장 근처의 항구 모습.

 

국립오페라극장에서 바라본 우리가 타고온 DFDS가 보인다.

 

국립오페라극장의 경사로를 따라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었다.

 

국립오페라극장의 전면.

 

내가 타고온 DFDSf를 배경으로 기념사진.

 

자유시간이 짧아 나는 오페라극장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뭉크미술관으로 향하였다.

 

 

뭉크미술관 앞에 현장학습 나온 학생들.

 

뭉크미술관으로 가는 길의 다리.

뭉크의 그림 <절규>속의 노을을 배경으로 그려진 다리를 연상하였다.

 

뭉크미술관에서 연주회도 하는 모양.

 

뭉크미술관 입구.

 

뭉크미술관 내부.

 

기념품 가게만 보고 나와야 했다.

 

오페라극장의 옆면.

 

오페라극장의 내부.

 

오페라극장의 빗면은 눈으로만 보고 버스로 향하였다.

 

오페라극장앞에서 기념사진.

 

버스 차창으로 본 오슬로의 거리 풍경.

 

칼 요한스 거리로 가는 길목의 걸인.

 

노르웨이의 트롤. 오딘.

 

오슬로 시청사.

 

국립극장

트랩.

 

국립극장

 

카를 요한슨 거리

 

칼 요한스 거리의 중심 광장의 분수.

 

데이트를 즐기는 시민.

 

산책나온 시민

 

칼 요한슨 호텔.

 

국회의사당.

 

국회의사당앞의 안내도.

 

의사당 입구의 사자상

 

국회의사당앞 사자상에 올라가 장난을 치는 청소년들.

 

노천 카페의 사람들.

 

용기를 내어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다고 말하였더니 허락해 주었던 그래드 카페.

 

기념품을 사기 위해 잠깐 들어간 가게.

 

오슬로 대학교.

 

오슬로대학교에 세워진 뭉크동상.

 

그리스 신전을 연상하게 하는 오슬로대학 건물.

 

 

슈바이가드 동상.

 

오슬로 시티투어 탑승장.

 

국립극장 

 

극장 앞에 세워진 요한 할보르센 동상.

할보르센은 노르웨이 출신의 작곡가. 지휘자. 바이올리니스트.

그리그에 의해서 수립된 노르웨이 민족음악을 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