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14. 화. 절두산 성지. 절두산이라고 불리게 된 유래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함대가 이곳 양화진까지 진격해온 적이 있었는데, 이에 흥선대원군은 "양이로 더럽혀진 한강의 물을 서학 무리들의 피로 씻어야 한다"고 하면서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웠으며 이와 함께 수많은 교인들을 붙잡아 양화진 근처의 이 산봉우리에서 목을 잘랐다고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절두산에서 가장 먼저 순교한 사람은 이의송(李義松)으로 1866년 10월 22일 부인·아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그후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까지 헤아려 천주교측에서는 약 1만 명가량의 순교자가 이곳에서 처형당했다고 한다. 특히 선참후계라 하여 심문과정 없이 바로 처형했기 때문에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다고 하며 이때문에 처형당한 사람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잘린 목은 그대로 한강에 던져졌고 머리가 산을 이루고 강물이 핏빛으로 변했다고 한다. 순교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66년 순교자기념관이 건립되었으며, 기념관은 성당·박물관·경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양화진에는 개신교가 전래되면서 한국선교에 헌신했던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묻혀 있는 외인묘지가 있다.(펀 글) * * * * 8. 15 성모승천 축일을 하루 앞두고 절두산 성지를 찾았다. 한 달째 게속되는 폭염은 꺽이지 않아 숨이 턱턱 막혔지만 성지를 찾아와 조용히 묵상하는 신자들은 많았다. 성지를 찾는것만 해도 힘겨운데 가장 소중한 목숨까지 바친 그들의 신앙심은 대체 얼마나 굳고 간절한 것일까? 절로 머리를 숙이게 한다. 점점 편안함과 나태함으로 신앙심이 약해지는 자신을 다시 담금질하고 싶은 마음으로 성지를 돌아보았다. 절두산 성지 입구. 입구의 순교자 기념탑. 화강암에 새겨진 순교자 조각상. 안내판. 교육관. 팔마를 든 예수상. 그 앞의 설명판. 망나니가 휘두른 칼을 형상화. 교육관 로비의 성모상과 프란치스코 교황 입상. 기념 사진. 성모상 앞의 초에 나도 불을 켜고 기도하였다. 순교자 기념상. 제작자 최종태. 1973년 제작. 김대건상. 박물관은 지금 휴관중. 성당입구. 입구에 붙은 13위 순교자畵 성당 내부. 제대앞에 꽃꽂이 봉사를 하는 사람. 성당 양옆의 14처 십자가상. 스테인드 글라스. 성당 전경. 산책길에 놓인 장독들. 성당을 내려와 다시 순교자 기념탑 앞으로 내려와서 기념 사진. 가운데 조각은 말의 모습을 닮았다. 기념탑 옆의 멋진 소나무. 최초의 한국인 세례를 받은 이승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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