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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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열림원 (2014.12.15~17)
<노란집>은 2011년 추운겨울날 80세로 우리 곁을 떠나신 박완서님의 유작집이다.
하얀 바탕에 조그맣게 그려진 노란집의 표지를 가진 이 책을
우연히 마을도서관에서 발견하고는 마치 선생님을 다시 만난듯 반가웠다.
서문 엄마의 휘모리장단은 따님 호원숙님은
상사화 꽃잎위에 가볍게 올라앉은 그림처럼 정말로 이 생의 무게를 모두 내려놓고
꽃잎 위에 날아와 앉은 나비가 되신 것인가? 어머니의 글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라고 한 것처럼 나도 선생님의 유작을 미소를 지으면서 읽었다.
서문에 이어
그들만의 사랑법
행복하게 사는 법 이제야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내리막길의 어려움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쓴다.
황홀한 선물,
6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소설과 산문형식으로 이루어진 책이었다.
'그들만의 사랑법'은 지금 장안의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영화 <님하, 그강을 건너지 마오>를 연상하게 하였다.
노부부가 산골짜기에서 사는데 봄기운에 영감님은 젊은 시절
오늘처럼 밝은 햇볕 속에서 배갯모 수를 놓고 있는 처녀를 담 너머로
훔쳐보던 옛날얘기를 하는데 마나님은 귀가 어두어 잘 듣지 못하고,
영감님의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미루어 저 영감이
소싯적 얘기를 하나 보다 짐작하고 신수가 훤하고 기운도 장사였다고 칭찬을 한다.
이렇게 동문서답을 하면서 마나님은 문득 담너머로 자신을 훔쳐보던
잘생긴 총각과 눈이 맞앗을 때처럼 가슴을 울렁거린다.
며느리가 보내준 굴비를 구워 점심상을 차렸는데,
마나님이 안부전화를 걸어온 딸의 전화를 받는 동안
영감님은 살은 알들하게 다 발라먹고 가시만 빗으로 써먹어도
좋을 정도로 남긴것을 보고 마니님은 토라진다.
영감님은 마나님이 왜 토라졌는지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토라짐이라는 글에서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벙실 웃음이 나왔다.
깊은 산골에 사는 노부부는 마나님은 영감님이 혹시라도
대작할 이 없어 쓸쓸하게 막걸리를 들이키는 일이 생긴다면
그 꼴을 정말로 못 봐 줄 것 같아 영감님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지....
하는 글귀를 읽으면서는 눈가가 젖어왔다.
새로운 문물에 적응하지 못하고 더 살면 무슨 꼴을 더 보려나 싶다가도,
살갑고 포근한 봄볕 속에서 땅위를 기는 기쁨을 몇 해나 더 누릴 수 있를까,
마냥 아쉽고 애틋하니 이 무슨 조화인가. 하는 귀절은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에 대처하지 못하는 바로 나의 이야기 같았다.
'행복하게 사는법'은 산문형식이었는데
하늘이 낸 것같은 천재도 성공의 절정에서 세상의 갈채를 받지만
그 성취감은 순간이고 그 과정은 길고 고되다. 인생도 등산이나 마찬가지로
오르막길은 길고 절정의 입지는 좁고 누리는 시간도 순간적이라고 하였다.
인생은 과정의 연속일 뿐 결말이 있는 게 아니다. 과정을 행복하게 하는 법이
가족이나 친척, 친구, 이웃 등 만나는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안생이 바로 이 글귀속에 들어있는 듯 하였다.
'내리막길의 어려움' 에서
제 힘으로 당당하게 걸어 내려오려면 올라갈 때 힘을 다 써버리지 말고
남겨 놓아야 한다. 등산에 있어서만 아니라 권력이나 명예,
인기에 있어서도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에 품위 있기가 더 어렵다고 하였다.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쓴다' 에서
빛나는 정신을 내장한 이나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이는 아무리 겉으로 티를 안 내도
남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뭔가가 내비쳐지는 법이다. 그 분에 대해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김병기 화백을 몰랐던 것은 화단에 대한 나의 과문 때문이었다. 는 글은
나도 우연히 얼굴빛이 빛나는 예사롭지 않은 분이
나중에야 연주가나 작가였던 것을 알게 되었던 경험이 있어 공감이 가는 글이었다.
마지막으로 '황홀한 선물'에서
박수근 화가에 대한 글이 있었는데
치졸한 듯한 완숙함이랄까. 그는 불필요한 선을 생략한 게 아니라
기교를 생략함으로써 숨결처럼 섬세한 분위기까지 살아 움직이게 하게 있었다.
잔재주 부리지 않고 도달한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
인간 심층의 선의와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이상한 힘이 바로 예술이라는 것 아닐까......
라고 하였는데 예술에 대한 정확한 표현인 듯 하여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위의 내가 나열한 글외에도 정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글이 많았는데
어쩌면 그렇게 쉽고 단순한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그렇게 손에 잡힐 듯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글을 읽고 나면 마음속이 훈훈해지는 느김을 갖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박완서님은 우리 시대의 타고난 작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빌었다.
이 책에는 화가 이철원님의 삽화가 군데군데 들어 있어 더욱 눈을 즐겁게 하였다.
아마도 평소에 박완서 선생님과 가깝게 지냈던 화가가 아니었을까?
아치울에 있는 노란집을 눈앞에 펼쳐 보이는 듯 정겹게 그려 넣어
우리집에서 지척인 그 노란집을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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