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길벗 농원의 밤따기.

푸른비3 2008. 9. 23. 04:49

2008년 9월 21일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니 가득 흐린 하늘이다.

 

오늘 가고 싶은 곳이 3곳이다.

그동안 참석하지 못했던 일요화가회에서 

부산 회원들과 합동으로 열리는

주남저수지 야외스케치 장소도 가고 싶고,

한달에 한번 열리는 걷는 사람들 모임의

만날재 고개도 가고 싶고,

밤따기 일손을 기다리는

학촌님의 길벗 농원도 가고 싶고....

 

이럴때는 왜 행사가 한꺼번에 몰려 일어나는지 원망스럽다.

한해에 딱 한번밖에 기회가 없는 밤따기 일손돕기에 나서기로 하였다.

마침 매천에게서 부산에서 유석님이 차를 가지고 오고 있다는 전화가 왔다.

 

매천은 길벗 농원에 가져갈 시장까지 혼자서 잔뜩 준비해왔다.

학촌 형님을 위해서 전어회, 갈치,포도까지.

마치 친정 나들이 가는 사람처럼 한보따리를 챙겨 왔다.

 

가장 가까이 사는 내가 역에 도착하자 차는

곧 길벗 농원으로 향하였다.

몇년 전 연말에 마불 모임을 위하여 한번 가 보았던 길벗농원.

연둣빛으로 물들어 가는 들판을 내려다 보며 언덕위에 서 있었다.

 

가을을 알리는 연분홍 코스모스가 언덕배기에 줄지어 서서

우리를 환영하는듯 하늘하늘 춤추는 모습이었다.

이제 곧 이 들판도 황금빛으로 물들겠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울산 한살림 회원들의 차로

마당에 주차할곳이 없다는 학촌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오르는 길목에 차를 주차시키려다

그만 고마리로 덮혀있어 보이지 않는 수로에 빠져 버렸다.

 

오자 마자 오히려 일손을 더 바쁘게 하였다.

형님의 트럭에 연결하여 겨우 수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농약을 치지 않은 감나무의 감이 발갛게

익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였더니

감꼭지 벌레때문에 익지도 못하고 떨어진다고 하였다.

올 감농사는 완전 끝나 버린 셈이다고 한숨을 쉬었다.

 

감나무 밭사이로 오리가족과 닭들이 한창 먹이를 찾고 있었고

일손돕기에 따라 나선 아이들도 저희들끼리 놀이에 한창이었다.

느긋하게 배를 깔고 누워있는 누렁이는 새로 도착한 우리들은

관심도 없다는 듯 눈만 한번 꿈벅하고는 다시 길게 누웠다.

정말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하는 말이 맡는것 같다.ㅎㅎ

 

집뒤의 농막에는 산더미처럼 밤송이가 가득 쌓여 있었다.

저게 오늘 우리가 다 까야하는 밤송이인 모양이다.

일손 돕기에 나온 울산 한살림 회원들이

연방 자루에 가득 밤송이를 운반해 나르고 있었다.

 

가지고 온 코팅된 장갑위에 특수 고무 장갑을 끼고 작업을 시작하였다.

학촌 형님이 시범을 보여주면서 해봐라고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내가 깔고 앉은 구멍난 스텐 대야가 엉덩이 무게로 찌그러져 버렸다.

 

살그머니 뒤로 밀어내 놓았더니,

나중에 형님이 갈고리로 껍질을 밀어내시다가 발견하시고는,

"이것 누구 엉덩이 무거운 사람이 갈고 앉았구나...."

하셔서 속으로 얼마나 킬킬 혼자서 웃었는지 모른다. 

 

밥값도 하지 못하였는데 밥부터 먹고 해라는 전갈에

부엌으로 갔더니 벌써 푸짐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학촌 마나님의 음식 솜씨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특히 오이와 고추 장아찌가 아삭하면서도 어찌나 맛있는지....

지난 해 김장김치도 딱 먹기 알맞게 익었다.

오늘 또 다이어트는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점심후 형님이 어제 알을 깐 오골계를 보여 주시겠다고 하여

참으로 오래만에 어미닭이 새끼를 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11마리의 조그만 참새같은 병아리는 암탉의 날개밑으로 숨어 버렸다.

어릴적 우리 마당에서 보았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형님은 자상하게도 이것 저것 설명을 많이 해 주셨다.

저것은 오갈피 나무, 저것은 음나무....

(이름을 들었는데 두가지밖에 생각나지 않는다.ㅎㅎ)

마당에 있는 엔젤 트럼펫은 꺽꽂이 하는 것이라 하여

나도 베란다에서 키우고 싶다고 하였더니

집으로 돌아올 적 튼튼한 가지를 잘라 흙까지 담아 주셨다.

 

산처럼 쌓였던 밤송이가,

많은 손이 한꺼번 에 작업을 하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인간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지....

눈은 게으르고 손은 부지런하다는 친정 어머니의 말씀이 떠 올랐다.

 

학촌이 우리를 산비탈로 데려가서 자루에 떨어진 밤송이를 담아라고 하였다.

노란 조끼를 입은 매천은 자루를 손에 드니 마치 쓰레기 줍는 사람같고

학촌은 산속에 숨어 있다 나온 빨치산 모습같다고  놀리면서 한바탕 웃었다.

 

일한다는 생각을 하지말고 등산 도중에 밤을 줍는다고 생각해라고

학촌이 말하였지만 산비탈을 오르면서 밥줍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얼굴은 땀으로 젖어 버렸고, 손에 든 자루는 무겁기만 하였다.

애써 줍은 밤자루를 놓쳐버려 따 쏟아 버리기도 하였다.

 

4시가 넘은 시간,

작업을 끝낸 울산 한살림 회원들은

밤을 한자루씩 사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이 젊은 회원들은 참으로 열심히 일을 하였다.

농촌 일손을 돕기 위해  먼길 달려와서 일을 하였고,

점심도 각자 자기 도시락을 준비애 와  전혀 폐를 끼치지 않았다.

 

학촌 마나님이 아궁이에 불을  지펴 쪄낸 우리밀 빵과

감식초와 매실로 담근 음료수로 하루를 마감하였다.

 

울산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떠난 뒤

우리도 떠날 준비를 하자

형님은 왁자하게 지내다 다 떠나면 저녁이 더 적막하겠다고

하신 말씀이 가슴에 여운처럼 남았다.

 

우리의 먹거리를 지키는,

우리의 생명인 농토를 지키는 학촌과 그의 형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코스모스 언덕길을 내려왔다.

 

 언덕배기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코스모스.

 

 수로에 빠져버린 우리가 타고 온 차.

 

 집앞의 빨간 우체통.

 

올해는 태풍이 없어 벼농사가 순조로운 것 같다.

 

 농촌 지킴이 길벗 농장.

 

 집앞의 감나무밭.

 

 농장 왼편의 모습.

 

 연분홍 연정 코스모스.

 

 고마리.

 

 

 곧 콩타작도 해야겠다.

 

 형님의 트럭으로 차를 끌어 올리고.

 

 코스모스 곁에 잘 주차시킨 우리가 타고 온차.

 

 이게 가시 오갈피라고 하셨던가?

 

 이건?

 

 가시 오갈피에 이렇게 가시들이 촘촘히.

 

 눈길만 한번 주고 다시 드러눕던 누렁이.

 

 부엌앞에는 정겨운 분꽃이 피었다가 지고 있었다.

 

 노루눈처럼 까만 범부채 열매.

 

 

 이 놈은 제법 사납다고....

 

 멀리 산속에서 일하는 남편을 부르는 도구가 바로 이 가스통을 두들기는 소리라고....

 

 이경자 시인과 울산에서 온 회원.

 

 형님은 시범을 보여주시며 이렇게 해라고....

 

 꼬마도 갈구리로 껍질을 나르는 일로 한 몫 거들었다.

 

 푸짐한 점심상.

 

 형님이 고안한 나방 제거기.

 

 나들이 가는 오리 가족.

 

 자 나를 따라와...앞에 가는 놈이 이 가족을 이끄는 숫놈인 모양.

 

 종일 먹는 일만 하는 닭들의 무리.

 

 11마리 새끼를 깐 오골계 가족.

 

 연두빛에서 점점 누렇게 변해가는 들녁.

 길벗 농원의 뒷모습.

 

 부대를 들고 산으로 오르는 학촌의 모습이 마치 빨치산 같다고....

 

 노란 조끼를 입은 매천은 쓰레기 줍는 사람같다고....

 

 부산에서 우리를 싣고 온 유석님.

아마 태어나서 처음 이런 밤줍기를 해 보았을 것이다.

 

 경사가 60도는 될 산비탈을 오르는 이경자 시인님.

 

 시갓집에도 사과밭, 감밭이 있어 농사일에 이골이 난 매천.

방글 웃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경자님과 매천.

 

 여물어 가는 밤송이.

 

산비탈에 함초롬히 피어있는 야생화. 

 

 밤과 콩으로 쪄낸 우리밀 빵.

아이들 손이 먼저 달려간다....

 

 매실차를 마시는 유석님과 울산 한살림 회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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