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정월 대보름

푸른비3 2008. 2. 23. 06:34

유난히 달을 좋아하는 나.

길을 걷다가도 문득 바라보는 하늘에

걸려 있는 달을 쳐다보면

참으로 신비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의 유일한 위성체인 달.

만약 지구도 다른 행성처럼 몇개의 위성을 갖고 있다면?

동쪽 하늘에 달 하나, 또 서쪽 하늘에 또 다른 달 하나?

상상만 하여도 즐겁다.

 

세상물정 전혀 몰랐던 어린 시절.

함께 어울려 놀던 이웃집 언니의 거짓말을

사실인양 믿어버린 탓에

그렇게 달과 별을 좋아하면서도

밤이면 무서워 하늘을 올려다 보지 못한 것이

나중에는 얼마나 후회스럽고

그 언니가 원망스러웠는지....

 

밤하늘을 쳐다보년

하얀 옷을 입은 천사가 나타나

하늘로 가자고 손짓을 한다는 그 말을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까지 믿어 버리고

가슴속에 비밀처럼 간직하고 있었으니....

 

내 어린 시절에는

정월 대보름 행사가 얼마나 큰 풍속이었든지.

설날부터 시작된 명절 분위기는

정월 대보름 까지 이어져

손님이 새해 인사를 하러 들락거렸고

어머니는 그때까지 명절 음식을 간수하여야만 했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꾸덕꾸덕 말린 쌀반죽으로

만든 유과에 조청을 바르고 그 위에 또 하얀

쌀 가루 옷을 입힌 유과며,

각종 과일을 꿀에 절여 만든 정과, 식혜.....

냉장고도 없던 그 시절에 어떻게 갈무리를 하셨을까?

 

대보름이 가까워지면

마을을 돌며 농악놀이를 하던 사람들의

꽹과리 소리와 징소리가 내 가슴을 둥둥 울렸다.

그때 우리는 그 소리를 매굿이라고 하면서 따라 다녔다.

 

나는 그 애절하게 울려 퍼지던 날라니 소리가 좋아

그들의 무리를 따라 나섰지만 꼴망태에 죽은 토끼가죽을

담고 다니는 포수가 무서워 항상 가슴을 콩닥거려야만 하였다.

포수가 사나운 형상의 가면을 쓰고 다녔기에

난 그 가면속의 얼굴이 이웃집 아저씨인 줄 알면서도

무섭기만 하였다.

 

보름날 아침이면 집에서도 오곡밥을 배불리 먹었으면서도

우리는 마을을 한바퀴 돌면서 오곡밥을 얻으러 다녔다.

나는 어쩐지 그 밥얻는 놀이가 부끄러워

이웃에 있는 외갓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대문밖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돌아왔었다.

 

아침 햇살이 퍼지면 방한옷도 제대로 없었기에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아침 강가로 나갔다.

달집을 짓기 위해 꽁꽁 언 강위에 집단을 나르기 위해.

종일 강가에서 달집 짓는 것을 바라보다가 지겨우면

얼음위에서 썰매를 타기도 하면서 선머스매들과 하루를 보냈다.

 

설핏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동쪽으로 향한 시선을 달이 떠 오르기를 간절히 기다렸고

긴장감으로 팽팽히 당겨진 연줄 같았다.

 

드디어 누군가가 "달이야~!"하고 외치는 소리에 맞춰

불을 당겼고 불길은 날름거리며

짚더미위를 또아리틀며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마른 대나무 잎과 소망과 액운을 적은 하얀 종이도

타오르기 시작하면 옆에 선 할머니들은

동쪽을 향하여 하염없이 절도 하고

두손을 싹싹 빌기도 하였다.

 

마을을 한바퀴 돌고 온 매굿꾼들이

강변에 모여 신명나게 매굿놀이를 하였고

나도 그 소리에 묻혀 쥐불놀이를 하였다.

어슴푸레 남아 있는 내 유년의 그 달집태우기 놀이....

우리 아이들은 그런 추억도 낭만도 없이

이 다음에 어떤 생각을 회상하면서 되돌아 볼까?

 

보름이 사흘이나 지났거만

오늘도 맑은 하늘을 말없이 항해하는 저 달을 

방으로 끌어들여 놓고 싶어,

아직 싸늘한 밤공기이지만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달빛에 젖어본다.

  

 우리집 뒷베란다에서 바라본 팔용산위에 떠 오른 보름달.

 

 

 

 

   

마을에는 따뜻한 인간들의 불빛이,

하늘에는 신비스러운 자연의 불빛이....

 

 

 

 

 

아파트 화단에서 나무가지 사이로 바라본 정월 대 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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