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도서관에서 우리 딸 아라에게 읽히고 싶어 가져 온 책의
제목이 '상수리나무집 사람들' 이다.
목요일인 어제 반납해야 하는데
지은이 공선옥씨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기에
슬핏 책장을 넘겨 보았더니
삽화가 또 마음에 들어, 반납을 일주일 미루고
읽게 된 책인데,
역시 작가 공선옥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이 책을 다 읽고 난 내 마음은
따스한 등불하나 밝혀 놓은 듯 밝아진 듯 하다.
작가 공선옥은 1963년 전남 곳성에서 태어나
'창작과 비평'에 중편 '씨앗불'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우리 주변의 소외된이의 고통과 아픔을
따뜻한 눈길로 잘 그려내는 작가이다.
'피어라 수선화' '멋진 한세상' '오지리에 두고온 서른살'등
소설집이 있고, 산문집'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는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뜨거운 긴 낮이 지나고 여름 어스름이 덮힐 무렵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솔발골로 들어서고 있다.
라고 이책은 시작된다.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에 보리 고개 견디기 어려워
16살 꽃다운 나이에
돈 많이 벌게 해준다는 말에 속아 따라 간 곳이
일본군 위안부, 정신대였다.
할머니는 솔발골 아래 시장동네에서 남의 일만
해주고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 집을 떠나
셋방을 얻어 장사라도 해 볼 마음으로 이곳 솔발골로
들어 오게 되었고, 너무 작은 동네라 셋방도 구하지 못하고
터벅터벅 내려 오다가 만난 사람이 바로
상수리나무집 점쟁이 용화 할머니였다.
"맞아요, 내가 바로 백날 천날 걸어 봐야 갈 곳이 없는 사람이에요."
'" 아무렴. 내 눈이 보배지. 우리 집으로 갑시다."
옥주는 그 집에서 고향을 떠난 뒤 가장 편안한 잠을 잔 것 같았다.
미안해 하는 옥주에게 용화는 남자가 여자에게 청혼하듯이 말하였다.
"신세는 내가 지는 것이지요. 날마다 혼자 밥 먹는 것 보다는
둘이서 먹는 게 낫지 않아요?" 하고.
사람은 누구나 외로우면 누구나에게 '청혼하듯이'
간절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용화는 옥주에게 신랑이 심어 놓은 상수리나무집을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전쟁터에 나가 소식 없는지 40년이 넘었지만,
행여 신랑이 그 상수리나무를 보고 찾아 올지 모른다는
바램으로 그집에서 살고 있다고 하였다.
옥주는 용화의 집에서 떡장사를 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계속 데리고 들어왔다.
장님 길수와 그의 아들 별이.
그리고 얼마 후 미군 위안부 영희와 그의 깜둥이 딸 송이.
이렇게 버림받고 상처입은 사람들끼리
서로 보듬어 주면서 상수리 나무집에서 둥지를 틀었다.
아파서 누운 있던 용화에게
옥주는 그날 따라 일찍 떡이 다 팔려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자네를 만난 것이 너무 행복하다네." 옥주의 말에
" 청상에 남편 잃고 혼자서 남의 소원 빌어 주며 살면서 실은
나는 내 소원을 빈 것이었다네. 남을 위로하면서,
나를 위로한 것이었다네." 하고 용화는 고백한다.
그날 밤 용화는 깊은 잠에 빠져 그대로 남편이 있는 저 세상으로
산비둘기 되어 날아갔다.
용화의 뼛가루가 상수리나무밑에 뿌려진 그 집도
아파트 건립으로 철거되었지만 옥주의 부탁으로
상수리나무는 그대로 살아남게 되었다.
장님 길수와 영희도 서로의 상처를 안고 재혼을 하여
영구 임대 아파트에 새 둥지를 트고
옥주도 정신대 문제 연구소의 도움으로
바로 그 옆에 임대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아이들의 놀림에 우는 별이에게 옥주는 이렇게 말한다.
"별이가 강해지면 분하지도 않단다.
몸과 마음이 강해지면 누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괜찮단다.
저기 개나리꽃이 피었구나. 개나리꽃이 예쁜 건
추운 겨울을 이겨내서 그렇단다. 강해지면 꽃처럼 예뻐진단다."
옥주는 함께 헤어지지 말자고 손목을 꼭 잡았던 정신대의 동료
옥희를 우연히 만나 함께 살게 되었고,
수요일 마다 일본 대사관 앞으로 가서 시위를 하게 되었다.
수치심으로 숨기고 살아왔던 할머니들은
마음의 응어리들을 풀게 되어 밝은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수요 시위를 하고 난 뒤 옥주는 옥희를 데리고
전에 살았던 상수리나무밑으로 데려갔다.
옥희는 피곤하여 옥주의 어깨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이제 곧 상수리나무에도 새 움이 틀것이다.
따스한 봄볕 아래 두 할머니는 그렇게 오래오래 앉아 있었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와서
상수리나무 가지가 일제히 바람에 흔들렸다.
그것이 마치 용화 할멈이 반갑다고 손을 흔드는 것 같아서
옥주 할머니도 가만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마침,
유치원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이 저희들을 향해
할머니가 손을 흔드는 줄 알았는지, 고사리 손을 흔든다.
봄날 오후의 햇볕은 따스하다.
이렇게 동화는 끝이 난다.
이 책은 글도 아름답지만 그림도 참 아름다웠다.
화가 이형진은 이렇게 말하였다.
다 완성된 글에 그림을 그리는 게 어렵다고 했지요?
특히 그림이 필요 없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한 글을 대할 때, 저는
슬쩍 방향을 바꿔서 마음을 그리기도 합니다.
화가가 말했듯이
이 동화는 '보듬어 주기'였다.
마음이 다친 보잘 것 사람들 끼리
감싸 안아 주는 삶이 참 아름답고 좋은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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