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결혼하였기에 아들 하나만 낳고 단산한 나에게
친정어머니는 살아 생전 딸 하나를 더 나으라고 하셨다.
친정에서 너무 많은 형제 자매속에서 자란 나에게는
그 말이 귀에 들어 오지 않았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너무나 허전한 마음에
임신을 결심하고 나은 딸이 지금의 늦동이 딸이다.
딸아이를 키우는 재미는 아들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잔잔한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받는 기쁨이
평생을 효도를 다받는 것이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육아의 기쁨을 누렸다.
그때는 작은 규모의 학원을 운영하였으므로,
출산 1주일 후부터 이웃 아주머니에게 맡겨야 했다.
오후부터 수업이 있었기에 오전에는 내가 데리고 있었다.
다시 책꽂이에서 육아책을 꺼내어 읽어야 할 정도로
첫째 아이 키운지 10년만에 다시 우유병을 소독하고
예방접종을 하고 하는 일들이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바쁘고 힘든 생활이었지만
아이의 방긋 웃는 웃음을 바라보면
모든 힘든 일들이 다 잊혀지고,
함께 눈을 맞추고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아이는 육아책속의 육아발달 그대로 자라 주었다.
저녁 10시에 마지막 수유를 하면 새벽 6시가
될때 까지 깊은 잠을 자는 아이였다.
새벽에 혼자서 손가락 바라보며 옹아리 하는
소리에 내가 잠을 깰 정도로 아이는 순하였다.
한글은 그림책속의 동물 이름을 기억하여
이 글자 저글자를 조합하여,
스스로 다 알아버리더니,
6살 무렵부터 영어 알파벳을 배우고 싶어 하였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였는데.....)
요즘은 아이들의 발육상태가 좋아
대부분 6학년이면 여성의 몸매가 나타나는 셈이다.
아직 생리는 시작하지 않았지만
딸아이는 가슴이 어느새 탐스럽게 부풀어 올랐다.
함께 샤워할적에 슬쩍 바라보면 엄마인 나도
만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딸아이는 그렇게 부푼 가슴이 부담이 되는지
항상 크고 헐렁한 옷차림을 하고 다녔다.
어제는 학교 다녀 오더니
나에게 비밀 이야기가 있다고 하였다.
궁금해 하는 나에게
등교길에 변태 아저씨를 만났다고 하였다.
밑에 사는 아이가 학예 연습 때문에 먼저 가
버렸기에 혼자서 등교하였는데
30대 아저씨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가슴을 만지고는 달아나 버렸다고 하였다.
너무나 황당하여 소리도 못 지르고
한참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고 하였다.
딸아이는 스킨쉽을 즐기는 편이라
나랑 함께 끌어안고 장난을 많이 치지만,
자신의 가슴을 나에게도 전혀 손 못대게 하였었다.
학교에 가서 담임 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친구들에게 이야기 하였더니
비슷한 경험을 한 아이들이 3명이 있더라고 했다.
세상에~!
이러니 어떻게 아이를 마음놓고 등교 시킬 수 있겠는지?
선생님은 인상을 기억 할 수 있겠느냐고 묻고
다음에는 친구들고 꼭 어울려 다니라고 하셨단다.
딸 아이는 계속해서 그 생각이 떠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녁에도 친구들이랑 컴퓨터로 그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내일부터 당장 학교까지 따라 다닐것을 부탁하고
그 놈을 꼭 붙잡아 쳐 넣겠다고 야단이었다.
성도덕이 땅에 떨어진 세상이라지만
어떻게 등교하는 초등학생에게 그런 파렴치한
일들을 할 수 있는지.....
정말 딸 아이 키우기가 점점 두려운 세상인 것 같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딸아이의 초경 (0) | 2006.10.18 |
---|---|
가을햇살 머무는 그곳 (0) | 2006.10.16 |
[스크랩] 송편 만들기 (0) | 2006.10.05 |
경남 EXPO (0) | 2006.10.03 |
경주 -황금의 빛 전시회 (0) | 2006.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