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2006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우수작 -전경린의 야상록)

푸른비3 2006. 7. 12. 05:21

 이번 제 30회 이상 문학상  대상 수상작은

정미경의 '밤이여, 나뉘어라'였다.

처음에 실린 정미경의 대상작도 무척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지만, 어쩐지 나는 전경린의 '야상록'이

더 마음을 다잡아 끌어 이 작품을 두번 연거퍼 읽어 보았다.

물론 정미경의 작품도 여건이 허락되면 독후감을 남기고 싶다.

그만큼 이 두 작품은 우수작으로 꼽을 만큼 좋았다.

 

문학 사상은 내가,

처음으로 창간호부터 빠지지 않고 매번 책방에서 사 보았던 문학잡지였다.

그 당시 창간호의 가격이 얼마엿는지 기억이 없지만,

내 용돈중 그래도 크게 비중을 차지 하였던 것 같다.

 

결혼후 그 책을 버리고 오기 아까워,

한장 두장 사모은 LP레코드와 함께, 시집올적에

그대로 내 혼수품과 함께 날라져 왔고,

아직도 베란다 창고속에 그대로 상자채 쌓여 있다.

 

 작가 전경린은 학창시절

우연히 나와 몇번 얼굴을 스치기도 한 작가일 것이다.

그녀의 고향집이 바로 내 고향집과 같은 한 작은 소읍이었으니까.

 

그녀가 작품중에 그려내는 배경은 항상 그 소읍을 담고 있는 듯 하여,

그녀의 작품을 읽을적에는

나도 모르게 고향의 풍경을 떠 올리게 한다.

 

 이번 작품의 배경도 바로 그 고향의 작은 연못과 정자, 서원.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닷가를 그대로

사실적으로 옮겨 놓은 듯 하였다.

500년전 만들어진 그 연못 (함안 이수정)은  아직도 

 항상 떠 오르는 아름다운 고향의 풍경이다.

아직 완성은 하지 못한채 어느 구석에 쌓여 있지만,

나도 그 이수정을 그림으로 그려 보기도 한 곳이다.

 

 

 이번 작품 '야상록'은 아름답다.

쇼팽의 음악 '야상곡'의 그 영롱한 피아노 음률처럼

투명하면서도 슬픔에 잠겨 있다.

 

고향집으로 돌아온 금조는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지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다.

 

창가에 걸린 감나무 그림자만 그녀의 가슴속에 드리워져 있다.

얼마전 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보낸 어머니도 아직 남편을

완전히 저 세상으로 돌려 보내지 못하고 부둥켜 안고 있는 셈이다.

 

어머니와  금조, 또 금조의 아비없는 딸, 3년전 이혼을 하고

돌아온 막내 여동생. 이렇게 3대에 걸친 모녀가 한방에

누워 있는 밤의풍경이 이 단편의 첫 배경이다.

 

작가는 '살아서 길 위를 헤매는  낮보다 지붕 아래 밤의 잠이

더 슬프다'고 작품속에서 속삭인다.

어머니도 아버지의 서재에서 밤 3시 넘도록 있다가 그녀의 곁으로

돌아와 눕는다.

 

아비없는 자식을 어머니께 맡기고 간,

아직도, 남편도 없이, 이리지리 떠도는 딸 금조를 안타까워 한다.

금조는 그런 어머니가 한번만 더 그런 꼴로 와 봐라~하고

주먹을 쥐고 어깨 죽지를 때리지만, 아이고 시원해, 더 때려줘~한다.

( 이 문장을 읽을 적에 나도 불현듯 어머니가 그리워 눈시울이 뜨거워졋다.

만약,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시다면, 나도 어머니께 이렇게

날 좀 아프게 때려 달라고 어리광 부리고 싶기 때문이었다).

 

잠든 줄 알았던 어머니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

"그날, 말이다, 니 오데서 잤더노?"

아버지 삼우제 전날 밤 이룰 수 없는,

 가정을 가진 금조의 남자가

문상을 할 수 없는 줄 알면서도 그녀의 집근처로 찾아왔다.

 

금조는 남자를 태우고, 차마 돌려 보내지 못하고

마을입구의 그 연못으로 간다.

그 연못의 물은 먹을 갈아 놓은 듯 검었다.

그 검은 연못에 남자는 일부러 빠져든다.

잠시후 하얀 물질경이 꽃을 머리에 잔뜩이고

남자는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올라온다.

 

여흘 동안의 이별이 마치 100년동안의 이별이기라도 한듯

 둘은 욕망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전날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루고, 아직 삼우제 전날인데

금조는 이렇게 욕망의 튀틀림속에 잠겨 버린다.

 

벼락맞는 나무처럼 몸이 쩍~갈라져 불타는 느낌을 받으며

금조는 죽은 새처럼 잠이 들었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헤어짐의 두려움을 느낀다.

어쩌면 존재의 실체란 별처럼 머나먼 곳에 있는게 아닐까....하면서.

 

얼마쯤 잠속에 빠졌던 금조는 다시 기도를 막는 듯 호흡이 막혀

잠속에서 깨어난다.

그녀의 등뒤에서 어머니는 "무슨 악몽을 꾸길래?" 하면서

등을 쓸어내려 준다.

"금조야.... 또 그런 일이 생기거든 다른 데 가지 말고

꼭 엄마 있는대로 오거라" 하면서....

 

문학 평론가 이재선은 심사평에서

'그림자 투영의 미묘한 영상적 제시방법을 통해서 기억의 재생적 영상화,

현실과 꿈을  연계하거나 넘나드는 환상미를 촉발하면서

죽음에의 제의성과

삶의 축제성에 연계된 생의 음영을 독특한 효과로 조영해 내고 있다'

라고 적고 있다.

 

 

제각기 상실된 무언가를 지닌 여인3대가

따스한 모성공간으로 돌아오는 것이 참 아름답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새삼 그리워졌고,

이렇게 허우적 거리며 살고 있는 나를

따스하게 보듬어 줄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갈 날을 그리게 하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