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마스테?.
나마스테란 무슨 뜻이지?
이동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이책을 읽게 되었다.
지난밤 이 책을 읽다가 잠을 든 탓일까?
나는 아주 기운이 맑은 곳에 서 있엇다.
발 아래로는 설산에서 흘려 내린 맑은 물이
계곡을 따라 흘려 내리고, 등뒤에는 하얗게 빛나는
설산,( 바로 히말라야의 카일라스 산이었나 보다.)이
우뚝 서 있었다.
나는 물살에 씻긴 해맑은 바위 위에 서서
어쩜~ 이렇게 물이 맑고 공기가 청정할까? 감탄하였다.
어느새 해가 기울고 하늘에 별들이 나타났는데,
이 별들이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듯 하였다.
별들은 고호의 그림에서 처럼 길게 원을 그리며
나선형으로 빠르게 흘러내려, 꿈속에서도
얼마나 행복하였던지.....꿈을 깨고 나서도 오랫동안
깨어나기 싫었다.
티벳이란 나라는 처음 鳥葬을 하는 나라로 다가온 나라다.
그때만 하여도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때였기에
'월간 조선'이란 책에 소개된 조장의 풍습은 너무나 끔찍하여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잔인한 사람들이....이렇게 내 잣대로,
내 눈에 맞는 안경으로만 보았었다.
그 이후 달마이라마란 분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고,
'티벳에서의 7년'이란 영화와 '쿤둔'이란 영화를 보고
점점 티벳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속에 나오는 그 곳 사람들의 남루한 옷차림과 햇볕과
바람에 그을린 얼굴이 그렇게 신성하게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언덕위의 하얀 포탈랴 궁전과 라싸도시.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의 고향과 같은 티벳,
그곳이 이 '나마스테'에 많이 언급되어 있었기에 더욱 애정이 가는 책이었다.
작가 박범신은 저녁을 먹으면서 우연히 보게된 뉴스에 나오는
장면을 목격하고 이 소설을 쓰게 되엇다고 작가후기에서 적어 놓았다.
코리안드림을 쫓아 한국에 온 스리랑카 청년이 '외국인 근로자 고용법'에
반대하여 전철에 투신한 장면을 보고 난후, 그는 영안실까지 찾아갔다고 했다.
소설속의 대부분의 줄거리는 물론 논픽션일 테지만,
그 당시의 투신자살사건은 거의 사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주인공 신우의 부모님은, 그들처럼' 아메리카드림'을 꿈꾸면서 미국의 버지니아
주에서 이민생활을 하였고, 결국 약자의 설움을 톡톡히 치루고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온 실패형 이민자들에 속한다.
신우는 미국에서 청소년기를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떠돌다가, 한국에 나왔고,
애정도 없이 한국의 남자와 결혼하였고, 곧 이혼으로 이어진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그놈의 나라(미국)에 살아 생전 가 본다고,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 떠나고, 서울의 변두리 부천 춘의동, 곧 헐리게 될 집에서,
서른살의 눈부신 봄꽃을 보아도 그냥 무덤덤한 생활을 하고 있엇다.
밤에는 동대문 오빠가 경영하는 옷가게에서 근무하고, 새벽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정오까지 잠을 자는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살아가는 그녀에게,
네팔의 청년이 숨을 곳을 찾아 갑자기 들어온다.
네팔 청년 카밀을 만나기 직전 그녀는 꿈속에서 카일라스 설산을 보고,
사과향기나는 마루파 ,( 히말라야 설산 한 모퉁이에 잇는 조그만 마을)에서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꿈을 꾸었다.
이 소설속에 나오는 바로 그 카르마(업, 업보)속으로 엉겨든 셈이다.
삶은 덧없고 유동적이나 미묘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으므로
어떤 순간의 사소한 행동 하나도 우리의 미래를 변화시킬수 있다...
라고 이책에서 이야기 하였다.
4월, 산벚나무꽃이 눈부시게 환한 마당 뒷켠에 빨래를 널려 나온 신우와
손을 다쳐 붕대로 대충 감은 카밀의 만남은 극적으로 시작되었다.
물을 청한 카밀에게 보릿차를 대접하자, 처음 카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세상이 화안해요...!"였다.
그리고 두손을 머리위에서 부터 합장하고 내려와 가슴앞에 나란히 모두고
"나마스테..."이렇게 인사하였다.
나마스테란 안녕하세요, 건강하세요. 축복을 빕니다. 이런 뜻이 담긴
네팔어라고 한다.
카밀은 불안정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운명적으로 사랑하게된
사비나를 찾아서 한국에 온 25살의 네팔 청년이었다.
다섯살 연하의 카밀에게 누나라고 부르라고 한 신우에게
어느 순간 사랑의 화살이 꽂히게 되었을까?
억겹의 인연으로 사람으로 태어나고, 또 그 억겹의 인연이 쌓였기에
신우는 그 먼거리를 돌아온 카밀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을테니
역시 그것도 카르마인가?
모든 어려움에 부딪혀 가면서도 신우는 카밀을 사랑하지만
역시 카밀의 사랑은 첫사랑 사비나에게서 떠나지 못하고 맴돌고 있었다.
그런 사랑을 바라보는 신우의 고통은 어땠을까?
그 사랑은 티벳어 '모귀'에서 나온 것일까?
모귀는 갈망, 존경이 담긴 뜻이라고 햇다.
힘들때 외우면 마음이 환해지는 티벳불교 만트라
"옴마니 밧메훔"(연못에서 나온 연꽃이란 뜻)을 나도 저절로 암송하게 되었다.
카밀과 사비나 그리고 신우 그들 셋사이의 바르도(틈, 과도기)를
호텔 옥상 나간에서 떨어지는 순간, 신우는 몸으로 카밀을 부둥켜 안는 순간
메꾸었다고 할 수 있을까?
카밀은 온몸에 신나를 뿌려 산화하고, 그 산화하는 몸뚱어리를 온몸으로
받아 안는 순간의 충격으로 신우는 십년 가까이 식물 인간으로 지내다가 갔다.
소설의 끝은, 신우와 카밀의 딸, 애린이 미국의 외삼촌댁에서 생활하다
한국으로 나오고, 다시 네팔 카드만두로 가서 사비나와 그의아들 카밀을
만나, 카일라스산을 찾아 가는 것을 끝으로 하여 막을 내린다.
신우가 카밀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털어 놓은 사람은 병상에 있는
그녀의 어머니였다.
오빠는 하필이면 네팔놈이냐고 소리 지르고 인정하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그 청년에 대해 관심과 애정은 갖고 있고,
신우에게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라고 하셨다.
신우가 카밀을 어머니에게 설명한 말은
그 사람은....영혼이 있어...." 이 말이었다.
카밀은 팔을 다쳐 일은 못 나가면서도
신우를 대신하여 집안일을 너무나 깔끔하게 잘 해 놓았다.
힘드니 제발 걸레질은 그만두라고 하는 신우에게
"걸레질은 만트라를 외우는 것과 같아요." 한다.
고통을 빗질하여 쓸어버리는 만트라 암송과 같다고 여기는 카밀.
나중, 신우의 성산동 아파트는 외국인 노동자의 숙소로 바뀐다.
그녀는 정말 락슈미여신처럼 자신을 헌신하여 외국 노동자를 돕는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엇을가?
사랑의 힘이었을까?
어쩔 수 없는 카르마의 힘이었을까?
이 소설을 읽기전에는 나와는 아무런 연관도 짓지않고
무심히 바라보았던 외국인 노동자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하였다.
더 이상 핏줄이 다르다고, 피부빛깔이 다르다고 그들을
무관심하게 바라보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작가 후기에 알버트 아이슈타인의 말을 인용하엿는데
참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의 임무는, 문득 살아있는 생물과 자연 전체를 포용하가 위해
자비심의 테두리를 좀 더 넓힘으로써, 우리를 이러한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과학자의 입에서 어쩜 이런 생각과 말이 나왔을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신비주의속에 빠지는 듯함을 느꼈다.
바로 소용돌이 쳐 흐르는 별과 설산과 맑은 계곡의 물이 나오는 꿈을 꾼 것은
신비주의 체험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였다.
내 살아 생전 네팔과 티벳을 가 볼 수 있을까?
설산을 오체투지하여 내 분노와 욕망을 다 쓸어버릴 수 있을까?
티벳 명상음악을 들으면서 언젠가는 닐기리봉, 안나푸르나봉을
바라 볼 수 잇는 그날을 그리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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