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월드컵 응원전 유감

푸른비3 2006. 6. 24. 03:48

꿈결속에 들리는 고함소리.

아~ 오늘 새벽에 스위스와 우리 한국전이 열리는 날이구나.

밖에서 시끄러우니, 어쩜 우리가 한골 넣었을까?

 

눈을 번쩍 뜨고 TV를 켜 보았다.

화면 가득 출렁이는 붉은 물결....

상암 운종장인 모양이다.

 

빽백히 들어찬 관람석은 온몸을 붉게 치장한  무리들.

개중에 아직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아나운스가 시작하겠습니다~!

하는 목소리와 함께 터질듯한 율동.....

 

시계를 보니 아직 3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경기는 3시 반에 시작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창밖을 내다보았더니, 도로변에도 몇몇 짝을 이루어

운동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눈에 들어 왔다.

 

집에서 건너다 보이는 운동장에는 지난 밤 초저녁 부터

환히 불을 켜 둔채 셔치 라이트가 하늘을 핥고 지나가는 모습.

켜둔 전광판에는 우리 집과 똑같은 MBC화면을 켜 둔듯.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려 보았다.

다른 팀들의 경기 장면을 보여 주고 있었다.

 

다시 채널을 MBC로 돌려 보았다.

아까  노래를 부른 가수와 별 달라 보이지 않는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과연 율동이 폭발적이었다.

요즘 가수들은 한결같이 서양미녀와 같은 얼굴과 몸매를

가졌기에 내 눈에는 그게 그 얼굴 같기만 하다.

 

응원석에 앉은 관중들은 자기의 흥에 도취된듯 카메라만

지나가면 더욱 펄펄 뛰어 오르는 모습이었다.

어디서 저런 에너지가 터져 나올까?

 

전에  TV에서 보았던 북한의 열렬한 환호 장면이 생각났다.

붉은 꽃을 흔들며 환호하던 그 무리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경악하였고 두려웠었다.

지금의 저 장면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북한의 그 군중들은 어쩌면 타의에 의해

모인 단체인지도 모르지만, 지금 운동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저 무리들은 모두 자의에 의해 몰려온 사람들 아닌가?

어쩌면 밤새 뜬눈으로 그곳에 앉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외국에도 밤새 클락션을 울리고 뿔나팔 같은 것을 불면서

밤새 거리를 다니면서 응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소리를

들은적이 있다.

 

그러나, 저렇게 노래를 부르고 깃발을 흔들면서

"대한민국~"이라고 외친다고 하여 그게 애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젊은이들의 환호에 율동에 나는 슬그머니 돌아서고 싶었다.

 

저 에너지를 모아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을까?

예를 들어 무보수로 일손 부족한 농사일을 돕는다든지,

겨울에 산불을 끈다든지, 아니면 도로 건설을 한다든지....

저 분출하는 에너지를 모으면, 바벨탑도 쌀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어쩌면 억압된 불만과 욕구를 이런 걸 기회로 다 쏟아버리고 싶어하는지

모르겠고, 메스컴은 그런걸 노려 선동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 로마의 원형극장에 몰려 든 관중들도 이런 상황이었을까?

검투사와 사자의 싸움, 심지어는 죄수를 운동장에 밀어넣고, 사자를

풀어 넣어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그 잔인한 장면도 바로 이런 장면과 같이

흥분한 관중들의 환호를 물들이지는 않앗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곧 스위스전이 시작될 것이다.

물론 경기는 이기는 것이 목적이다.

내가 한국국민인 만큼 나도 우리선수들을 응원할 것이다.

열심히 잘 싸워 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폭발하는 듯한 응원과 관심은 아무래도 부담이 간다.

슬그머니 목이 막히고 슬픔까지 온다.

이런 감정은 나만 갖는 감정일까?

이제 우리 선수들이 입장하는 모습이 화면에 들어온다.

잘 싸워서 저 열광하는 관중의 응원에 보답해 주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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