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조정래의 '한강'을 읽고

푸른비3 2006. 4. 1. 06:44

 한강의 초판이 2002년 2월에 나왔고,

내가 이 책을 처음 손에 잡은 것이 2006년 2월 이었으니

출판된지 꼭 4년 후에 읽은 셈이다.

 

 그 전 '태백산맥'10권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때도 난 작가의 글속에 푹 파묻혀

경상도 토박이인 내가 전라도 사투리가 저절로 입에서

나올 정도였다.

소설속의 보성, 벌교, 순천에 가고 싶었고,

소설속의 인물들 , 소화 ,하대치, 염상구를 꼭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쉽게 이 책을 읽을 수 없었던 까닭은

장장 10권이라는 분량이 나에게 좀 버겁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처음 장을 열면 진한 사투리가

표준어에 눈이 길든 나에게는 좀 힘들게 읽혀지고

무슨 뜻일까? 금방 헤아리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의 진한 남도 사투리가 더없이

정겹게 느껴지니, 나도 얼마나 '느자구 없는 년(?)'인가?

 

이번  '한강'10권의 마지막 후기에

작가의 '한강을 마치며'를 읽으면서

그가 얼마나 이 글을 애정을 갖고 썼는지 알 수 있었다.

20년 동안 대하소설만 쓴 그에게 글쓰는 작업은

'글감옥'이라고 할 정도로 힘든 과정인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의 부인이 '사랑굿'시집의 작가 김초혜씨라는 것도 알았다.

그는 "지금도 문학에 대한 열정이 대학에 들어갈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또 얼마나 무궁무진한 작품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

 

지식인이란 온갖 모순과 갈등이 뒤엉킨 사회속에서

진실을 발견하고, 그 진실을 옹호하고, 그 진실을 실천하고,

그 진실을 전파하는 존재여야 한다고 했다.

작가도 그 지식인에 속한다고 하였으니

다음에 나올 작품에 대한 기대도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소설속의 배경은 해방과 한국전을 치룬 빈곤한 60년대 초에서

광주혁명이 일어난 80년대 까지이다.

그 기간동안 나는 초등학교에서 직장을 다니는 사회인인

될때 까지 생생하게 체험하였기에 더욱 흥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속의 그 다양한 인물들을 다 기억할 수 없지만

가장 오래동안 남아있는 사람들은 역시 처음에 등장한

유일민, 유일표 형제일 것이다.

아버지가 월북하였기에 그들은 명석한 두뇌와 성실한 자세로

인생을 살았지만, 그들의 뜻을 펼칠 수 없었기에

시대의 희생양이었다.

 

 그 당시 내가 느낄 수 없었던, 아니 어쩌면 당연시 하며

그들을 백안시 하였을 지도 모르게, 우리는 반공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세대들이다.

어린 시절 난 공산당은 머리에 뿔달린 빨간 얼굴을 한 사람이라고

상상하였고, 도깨비보다 더 무서워 하였으니까......

 그런 반공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가족은 얼마나 지옥같은

삶을 살았을까?

 

  강숙자, 박영자,임채옥, 나복남, 김선오, 천두만, 이규백, 문태복, 한인곤,

강기수,한정임, 김광자, 배대균, 박준서, 이상재,원병균,전태일,갈포댁,해남댁....

이 다양한 인물들을 실제 눈앞에 나타난 듯 자세하게

그린 작가는, 어쩌면 신의 위치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듯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남자인물들 그렇게 세세하게 묘사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여자들까지 그렇게 상세하게 묘사하였는지?

정말 작가들은 도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느새 잊고 살아온 가난을 손안에 잡힐듯이 그려 놓아,

그래 그래 이런 시절을 나도 살았지....하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5일장을 떠돌아 다니면서 검은 타이어 고무신을 때우는 광경,

시골로 다니며 가발의 재료를 사러 다니는 장면,

김칫국물이 번져 온통 붉게 물든 보리밥 도시락....

 

작가는 실명으로 등장하는 부분도 그려 넣었다.

박정희, 박태준, 전태일등등.

이 소설로 그동안 잘 몰랐던 전태일과 박태준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되었고, 전태일 평전은 꼭 사보고 싶어졌다.

 체게바라 평전은 너무 두터워, 사놓고 아직 반도 읽지 않아

 부끄럽기만 하지만.

 

월남전, 사우디 건설현장, 독일 광부와 간호원의 생활을

어쩌면 그렇게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는지?

또한 고문 당하는 과정도 직접 체험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생생하게 그려내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을 덮고 나서 난 정말 전능전지한 작가 조정래선생님을

한번 뵈올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되었다.

 

이 글의 끝에 다른 곳에서 퍼 온글도 함께 올린다.

 

 

 

'글감옥'이라고 부를 만큼 처절한 창작의 고통과 각종 질병, 혹시 살해당할지 몰라 유서까지 써놓을 만큼 공포에 떨며 수십년을 살라고 한다면 그의 부와 명예 혹은 화려한 영광을 반납하고 '가늘고 길고 평범한' 삶에 감사할 것 같다.

마흔살에 '태백산맥'을 쓰기 시작한 그는 '아리랑'에 이어 환갑이 넘어 '한강'을 마쳤다. 장년기를 전부 헌납해 쓴 세편의 대하소설은 200자 원고지 5만1500장 분량으로 원고지를 모두 쌓아놓으면 높이가 그의 키 3배가 넘는다. 세작품에 등장한 인물은 1200명. 그 모두에게 다른 이름과 성격을 불어넣어줘야 하는 것은 물론 비슷한 상황에서의 묘사와 표현 역시 달라야 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언제나 암담한 터널 속에 들어간 막막함과 답답함, 그야말로 글감옥에 있는 것 같단다. 제일 만만해 보이는 작명조차 지적인 이름, 천한 이름, 우스운 이름 등으로 분류하고 절대 성이 겹치지 않도록 했단다.

"운동선수에게만 기록갱신이 있는 게 아닙니다. 전작보다 1㎜라도 더 잘 써야 한다는 작가로서의 사명감이 있어서 내가 쓴 전작이 나의 적이자 라이벌이 되는 이중고, 삼중고를 겪는 게 작가의 숙명입니다."

그 세작품을 쓰는 20년간 그는 개인적 추억이 거의 없다. 주색잡기를 멀리하고 정갈하게 작품에만 매달렸다. 글이 잘 풀리지 않으면 흔히 술을 마시거나 다른 취미활동으로 관심을 돌리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오히려 더 책상 앞에 바짝 다가앉아 자신과의 싸움에 정면 도전했다. 글쓰는 재능은 작가라면 누구가 갖고 있는데 남들의 영혼을 울리고 감동을 주려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에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단다.
(퍼 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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