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歸神寺에서 만났다. 십오년 만이었다....
양귀자의 소설집 '슬픔도 힘이된다'에 수록된 중편소설 '숨은꽃'의 첫귀절이다.
양귀자는 '원미동사람들'이란 자기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일상들을 너무나 편하게 써 냈던 작가이다.
특히 그의 장편소설'모순' '천년의 사랑'은 오래동안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다.
자신이 양띠라고 하였으니, 나하고 동갑내기일까?
아니면 12년 아래일까?
이번에 읽은 '산꽃' '기회주의자''슬픔도 힘이된다'는 모두 남성의 시각에서
본 시대의 아픔과 갈등을 그린 작품이고,
마지막에 수록된 '숨은꽃'은 작가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풀어낸 듯한
느낌이 드는 글이다.
'숨은꽃'의 화자는
소설을 팔아서 밥을 먹는 자신의 처지에 어느 정도 권태를 느끼고
혼자서 서울역에서 열차를 타고 여행을 시작한다.
전에 친구들과 함께 갔던 기억을 더듬어 김제 금산사로 찾아간다.
(김제 금산사는 나도 전에 친구랑 그곳에서 만나 함께
가을햇살을 즐기며 여행하였던 곳이다.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친구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만난 곳이 바로 김제 직지사였다.
그날의 그 쏟아지던 황금햇살은 30년이 흐른 지금도 바로 눈앞에서아롱댄다.)
글속의 계절은 벚꽃과 라이락이 구름처럼 피어있는 봄이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여관에 숙소를 정하고,
밥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그 밥집의 여자는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의 문제집을 함께 봐 주면서
여름에 피는 꽃 봄에 피는 꽃을 가려내는 문제를 보고 푸념을 한다.
"꼭 보도 못한 꽃이름을 맞춰 내라고 하니....무슨 수수께끼도 아니고..."한다.
공부도 사는 것도 모두 수수께기같아서 푸~하고 웃어 버린다.
그녀는 울긋불긋 단청이 칠해진 금산사보다,귀신사의 적요속에서
두어시간 앉아 있고 싶어 택시를 타고 귀신사롤 향한다.
얼마나 아늑하고 편한 곳이면 구천을 떠도는 귀신도 되돌아 와서
머물고 싶어 하는 곳일까?
드러나는 것 아무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귀신사는 뼈대만 남아 있을뿐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가 그녀를 당황하게 한다.
어지러히 널린 건축자재들 속에서 그래도 그녀는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자 앉는다.
그때 나타난 남자가 바로 김종구였다.
15년의 세월속에 알아 보기 힘들었지만, 그녀의 첫 교사 부임지, 고흥밑의
거금도에서의 기억을 들추어 낸다.
김종구는 그때의 수줍음이 많은 제자, 숙자의 오빠였다.
부모를 대신하여, 학부모 역할을 하였던 종구에 대한 기억
여러편이 떠 오른다.
외지에서 데려온 여자가 아이를 낳아서 맡기고 떠나간 바람에
숙자는 항상 등에 어린 조카를 업고 있어야 했다.
학교에 나오지 않아 ㅈ찾아간 그녀에게 종구는
먹고사는데 질서가 잡히면 숙자년은 학교에 오지 말래도
보낼것이라고 말하고는 몸을 돌려 가 버린다.
그 다음 기억은 푸른 바다위에 누워 평화롭게 잠들었던
종구를 보았던 기억.
세번째 기억은 고기가 귀했던 섬에서 종구가 염소의 골통을
도끼로 정확하게 내리쳣지만, 그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정작 젓갈질
한번 하지 않았던 기억이다.
그런 기억속의 종구는 그곳 귀신사에서 듯밖에 만나다니....
종구는 그녀에게 다짜고짜 자신의 집으로 가서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한다.
그에게는 황녀라고 불리는 함께 살림을 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단소를 제법 잘 분다고 하였다.
그녀가 부르는 '천년만세''청성곡'을 듣고 있는 종구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그녀는 보았다.
그리고는 전혀 술을 마시지 않는 그녀였지만
스스로 잔에 술을 몇번이나 채워 마셨다고 한다.
종구는 처음 귀신사의 보수공사를 하려 와서는
생사를 초월한 그런 인생무상같은 걸 느끼게 하는 절이었다고 한다.
그런 절을 울긋불긋 보수공사하는게 너무 안타까워,
조금이나마 덜 웃기게 만들고 싶어 그는 공사에 참가했다고 한다.
중2를 중퇴한 그였지만, 그는 이 세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사람같았다.
그녀는 그의 말은 당당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마시는 소주가 그렇듯 맑다고 생각한다.
술을 전혀 못마시는 그녀에게 종구는 말한다.
인생 재미 하나도 못 느끼고 황천가면 염라대왕이
한평생 기회를 주엇는데도 고작 그것만 맛보고들어와? 하고
화탕지옥에 빠트린다고 하였다.
(나도 술을 전혀 못 마시는데...)
그는 또 신은 왜 인간이 검은 눈동자로 세상을 보게 만들었는지....
에 대한설명을 한다.
어둠을 통하여 세상을 보라는 신의 섭리라고 한다.
김종구의 말 "나이가 들면 하늘을 많이 보게 돼요....이제는 땅을 보더라도
풀이나, 나무, 꽃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길을 가다가도
우뚝 멈춰서곤 하지요....'
이말은 바로 내가 요즘 느끼는 바로 그마음이기도 하다.
미로속에서 출구를 잃은 작가 자신,
안개속으로 사라진 종구.
모래더미에 파묻힌 이름모를 꽃을 생각한다.
그 숨은꽃속으로 삼투해 들어간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이 세상살이의 끝자락을 만져보기를 작가는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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