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남미 43일 배낭 여행-46. 라파스 미술 거리

푸른비3 2024. 4. 24. 11:50

오늘은 일행들과 함께 단체로 시티투어를 예약하였는데, 이곳 운수업의 파업으로 취소되었다. 우리는 걸어서 시내 구경을 나갔다. 어제는 혼자 시장에 나갔다가 길 잃어 고생하였기에 오늘은 잘 따라 다니겠다고 생각했는데 잠깐 한 눈파는 사이에 일행의 행방을 놓쳐 버렸다. 아직 골절된 다리로 걸음을 걷는 게 부자연스러워 자꾸만 걸음이 뒤쳐졌는데, 매연이 심하여 가방에서 마스크를 찾아 쓰는 동안 일행의 행방이 묘연하였다. 앞에 가는 자주빛 점버가 우리 일행의 모습을 닮아 급히 뒤따라 가보았으나 다른 사람이었다.

 

이리저리 일행을 찾아다니다가 그만 포기해 버렸다. 호텔의 주소를 가지고 있으니 혼자서 시내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듯하였다. 조바심치며 찾던 것을 포기해 버리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광장에는 일거리가 없는지 젊은 남자들이 우두커니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리의 오가는 사람들 모습. 커다란 보따리를 등에 메고 가는 여인, 한 무리의 여학생들의 모습 등 그들의 일상생활의 모습을 곁눈질로 보며 광장을 거슬러 올라가니 저만치 우리 일행의 대장 모습이 보였다. 뒤늦게야 내가 없어진 것을 알고 이곳에서 기다렸다고 하는 말에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볼리비아는 국명은 독립운동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따서 국명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곳은 안데스 지역 최고의 문명지로 잉카제국의 영토였으나, 300년 에스파냐의 지배를 받았으며 1825년 독립하였다. 행정 수도는 수크레이지만 라파스가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라고 하였다. 볼리비아 중심부에 위치한 수도 수크레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아름답고 역사가 깊은 도시라고 하여 이번에 우리 일행들은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그곳을 다녀오려고 하였지만, 운수업 관계의 파업으로 그곳을 가보지 못하여 아쉬웠다.

 

라파스는 티티카카호에서 흘러내리는 라파스 강 연변에 전개된 분지로 높은 단구의 윗부분과 하류부의 낮은 곳에 원주민의 주택이 있고, 그 중간 무리요 광장이 시의 중심에 대통령 관저, 대학, 박물관, 호텔, 극장 등이 있으며 백인 지구도 근처에 있다고 하였다.

 

일행들을 다시 합류하여 양옆으로 스페인식 건축물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니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햇볕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볼리비아는 중남미 전체에서 평균 수명이 가장 짧은 국가 중의 하나라고 하였는데, 우리나라도 몇 년 전에는 평균 수명이 짧아 노인들이 귀하여 환갑잔치를 크게 하고 존경을 받았듯이, 이곳에 거주하는 인디오는 연장자로써 대접을 받고 사는 것 같았다.

 

우리가 들어갔던 골목 끝에 우리의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반가운 한글이 보였다. 어느 화가의 개인 갤러리였다. 작가에 대한 정보도 없으면서 한글이 있으니 우선 화랑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강의를 하였다는 볼리비아 최고의 화가 마냐니의 화랑 겸 화실이었다. 안데스의 색채를 느낄 수 있는 강한 인상의 그림과 조각들이 있었다. 사실 남미에는 세계적인 유명한 화가들이 많았지만 마냐니라는 화가의 이름은 처음 듣는 화가였다.

 

멕시코의 디에고와 프리다 칼로, 콜롬비아의 보테르 등의 그림을 볼 수 있을까....기대를 하였지만 이번 여행에서 그들의 그림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우리에게 알려진 화가는 아니지만, 라파스에서 남미의 화가 그림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작가가 화실에 있어 우리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작업복 차림의 소탈해 보이는 인상의 화가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일행들에게 즉석에서 스케치를 그려 선물을 해 주기도 하였다. 나도 그에게 내 명함을 건네며 나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인사하고, 그의 디자인이 들어간 열쇠고리를 사고 싸인도 받았다

 

 

 

좌판을 벌여놓고 파는 원주민.

 

볼리비아의 유명화가 마냐니의 화실.

 

 

내가 나도 아티스트라고 말하자 반갑게 악수를 청하는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