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남미 43일 배낭 여행-44. 볼리비아 라파스

푸른비3 2024. 4. 24. 11:37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반쯤 감은 눈으로 높은 언덕을 넘으니, ~! 하고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산등성이 아래로 빼곡히 들어선 인간들의 세상. 촘촘히 들어선 집들이 장난감을 쌓아놓은 듯하여 눈을 비볐다. 볼리비아 전 국민의 80%가 중서부 지역에 모여 살고 그 중 라파스에 가장 많은 인구가 집중되어 있다는 설명서를 읽기는 하였지만, 이렇게 높다란 산등성이까지 성냥갑 같은 집들이 들어서 있으리라는 생각 못하였기에 그 광경을 바라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라파스로 들어서는 도로 곳곳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마도 얼마 전 교황의 남미 방문 시 이곳 라파스도 방문하고 간 모양이었다. 로마 가톨릭교가 인구의 95%를 차지하는 국가이니, 이곳 신자들의 남미 태생의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열렬한 환영은 당연하였을 것이다.

 

구시가지에 숙소를 정한 우리에게 저녁 시간까지 자유시간이었다. 룸메이트는 피곤하다며 한숨 자겠다고 하여 홀로 시장으로 나가 보았다. 길치인 나는 길을 잃지 않으려고 주변의 모습을 사진을 찍으면서 걸었다. 가능한 한 방향으로 갔다가 그대로 되돌아 오기로 마음 먹었다.

 

시장의 모습은 60년대 내 고향 함안의 시골 장터와 되돌아 가 보는 것 같았다. 간이 식당 안에는 오래만에 만난 사람들끼리 정담을 나누고 있었으며, 생필품을 사러 나온 시골 사람들과 상인의 외침으로 시끌벅적하였다. 아기를 업은 아낙네, 감자 몇 알을 펴 놓고 앉은 할머니의 모습이 정겨웠다.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 재미있었다.

거리는 매연이 어찌나 심한지 나는 마스크를 끼고 다녀야만 하였다. 아가씨 몇 명이 계단에 앉아있기에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였더니 수줍어하면서 포즈를 취하여 주었고, 자신들의 사진기에도 우리의 모습을 담아 갔다. 가난한 나라이지만 화려한 드레스를 파는 가게가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장터에 널려 있는 모양이 큰 고추와 다양한 종류의 감자. 수북히 쌓아놓은 여러가지 약초 등이 우리의 시골 장터와 너무나 흡사하여 더욱 정감이 갔다. 블루베리와 뜨개질 레깅스, 여름 티셔츠 한 장을 사고, 길거리에서 파는 도넛을 한 봉지 사서 슬슬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분명 올라간 길을 되짚어 내려왔는데 광장에 서 있는 동상이 아까 올라갈 적에 찍은 동상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치가 바꾸니 다르게 보이는 건가?....머리를 갸우둥하며 한참을 내려와도 낯선 풍경만 이어지고 호텔은 보이지 않았다. 당황하여 근처의 가게에 들어가 내가 찍은 광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더니 다른 곳이라고 하면서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지만 내가 스페인어를 모르니 알아들을 수가 있나.... 근처의 여행사에 가서 물었더니 다행히 말이 통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너무나 친절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내가 길을 잃고 몇 군데의 가게에 들어가서 길을 물으면, 그들은 한결같이 하는 일손을 멈추고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열심히 설명을 해 주었다. 그들의 삶은 고단하고 척박할지라도 이방인인 나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주는 그들은 무척 순박한 정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지도를 펼쳐서 자세하게 설명해 준 여행사 직원의 도움으로 다행히 약속시간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에 가기로 약속하였는데 내가 길을 잃고 헤매는 동안에 혹시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었다. 나는 세계 어느나라에 가던지 음식은 까다롭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한국 음식이 먹고 싶었다.

지구의 반대편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 먼 이국땅에서 한식당을 경영하는 여사장님은 우리가 도착하자 반가이 맞이해주면서 인정스럽게 이것저것 챙겨주면서 많이 먹어라면서 친정 어머니처럼 하셨다. 오래만에 김치찌개. 된장국 등 얼큰한 우리 음식을 먹으니 속이 따뜻해지는 듯하였다. 낯선 땅에서 한국식당을 경영하는 그 여사장님이 무척 대견하였다.

 

 

거의 산 꼭데기까지 들어선 인간의 동네.

 

 

좁은 골목길.

 

라파스의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