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장편소설
창비(2022. 9.2. 초판 1쇄 발행
2022. 10.7. 초판 6쇄 발행)
(2022. 10.22~30)
무더위가 서서히 물러나고 날씨가 선선해지는
가을은 예로부터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가을을 즐기고 싶어 사방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제대로 책을 잡을 시간이 없었다.
마을 작은 도서관에서 김병종의 <화첩기행>을
전집으로 대여해 왔는데도 게으름을 부리다 보니
속도가 나지 않았는데, 지인으로부터 정지아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선물로 받았다.
현재 활동하는 작가들의 신작을 읽으려고 마음먹었으나
요즘 소설의 스토리의 전개나 서술방법이
내게는 어렵게 여겨져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야만 하였다.
읽다가 중단하고 며칠 후 읽으려면 앞 부분을 잊어버렸다.
요즘 출판되는 소설의 작가들 이름도 생소한 작가가 더 많았다.
정지아(1965년 전남 구례 생)도 내게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프로필을 보니 신춘문예에 단편 <고욤나무>가 당선 되었고,
소설집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 등이 있다.
이 소설은 화자의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생을 마감하였으며,
아버지(82세)의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맞이하면서 만나게 된
아버지와 얽히고설킨 사람들의 사연을 생생하게 서술하였다.
국졸의 아버지는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혁명가를 꿈꾸었다.
전직 빨치산이었던 아버지 고상욱은 이십년 가까운 감옥살이를 마친 후
버스도 다니지 않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고향에 터를 잡았다.
여순사건이 나고 14연대가 지리산으로 입산했을때 할아버지는
국민군에게 총살당하고 그 순간을 지켜 본 9살 동생과는 원수가 된다.
아버지의 입산으로 집안은 큰 집과 작은 집의 가족들은 고초를 겪는다.
남부군 출신이었던 어머니와 재혼 후 뒤늦게야 태어난 나 고아리는
50이 가까운 노처녀로 이 대학 저 대학을 기웃거리는 시간 강사이다.
아버지를 선택하지 않았고 빨갱이의 딸로 태어나기도 선택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조직을 재건하기 위해 1952년 위장자수를 하였으며,
감옥살이를 하고 고향을 내려 온 후 의식만 앞 선 초짜 농부가 되었다.
그런 아버지를 속으로 비웃었던 나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역경을 살아온 아버지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된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독재자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좌익 사상가로 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연좌제로 사회 진출이 막힌 그의 가족들의 원망과 고통은 어땠을까?
이 소설은 다소 무거운 주제이지만 작가는 이해하기 쉽게
편안하고 쉬운 문체로 서술하였다.
아래는 글 속의 문장을 발췌하여 적어 보았다.
....당하지 않으려고 사회주의에 발을 디뎠고, 선택한 싸움에서 쓸쓸하게
패배했을 뿐이다. 아버지는 십대 후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여든 둘 된
노동절 새벽,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짊어졌다. (P76)
아버지는 내가 아는 한 단 한 순간도 유물론자가 아닌 적이 없었다.
먼지에서 시작된 생명은 땅을 살찌우는 한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 법,
이것이 유물론자 아버지의 올곧은 철학이었다. 쓸쓸한 철학이었다.
그 쓸쓸함을 견디기 어려워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를, 사후의 세계를
창조했는지도 모른다 (p 98)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110)
아버지는 자신의 신념을 후회하지 않았지만 사람인데 설마 괴물처럼
확장하는 자본주의의 기세 앞에서 절망이든 회한이든 어떠한 서글픈
감정을 잠시나마 느끼기는 했을 터였다. 목숨을 건 자신들의 투쟁이
무의미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p147)
비수가 꽂힐 때 알았다. 내가 어쩔 수 없이 아버지 자식이라는 것을.
아버지가 가족을 등지고 사회주의에 몸담았을 때,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혈육을 뿌리치고 빨치산이 되었을 때,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나는 처음으로아버지의 마음을 온전히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p217)
어떤 딸인지, 어떤 딸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구의 딸인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는 데 나는 평생을 바쳤다.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에는 '빨치산'
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p224)
작가의 말에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나 잘났다고 뻗대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아마도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도록 한 가장의 생애를
마치 지금 눈 앞에 보는 듯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이 책을 선물해 주신 지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기회가 된다면 정지아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고 싶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서울을 걷다 (0) | 2023.03.22 |
---|---|
김상욱의 양자 공부 (0) | 2023.03.01 |
조선 산책 외 1권 독후감 (0) | 2022.08.20 |
유럽도시기행 1 (0) | 2022.08.07 |
나뭇잎 수업 (0) | 2022.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