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27. 토.
지난밤 이야기꽃을 피우느랴 늦게야 잠들었는데도 새벽 일찍 눈을 떴다.
같은 부모의 자식이지만 각자의 성향이 달라 동생들은 깊이 잠들었는지
코고는 소리만 나즈막히 들리고 나는 더 이상 누워 있을 수 없어 일어났다.
소리 죽여 살며시 움직였는데도 동생들의 잠을 깨였는 것 같아 미안스러웠다.
창문은 어느새 환하여 일찍 챙겨서 동네 한바퀴 돌아보자고 하여 밖으로 나왔다.
코에 스미는 달콤한 꽃냄새, 나무냄새, 풀냄새....아 이게 바로 고향의 냄새로구나.
어제 내린 비로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랗고 아침 햇살에 잎들은 눈부시게 반짝였다.
우리는 도로를 따라 걷다가 나와 동생들의 옛 직장이었던 군청으로 올라가 보았다.
내가 처음 공무원으로 발령을 받았던 가야읍사무소 위에 군청을 이전하여 신축하였다.
1년 후 발령을 받아 민원실에서 근무하였던 옛군청은 마루바닥의 기와지붕이었는데,
내가 결혼하여 임신할 무렵 이 새 건물로 이사를 하였는데, 그 때는 입덧으로 예민하여,
새로 신축한 건물의 벽에서 시멘트 냄새가 심하게 나서 참 견디기 어려웠던 기억이 났다.
독신으로 살고 싶었던 내가 구하였던 직장은 나이 늦도록 다닐 수 있는 공무원이었다.
군민에 대한 봉사정신으로 공무원을 선택하여야 했는데, 이런 생각으로 직장을 선택하였으니
자연히 나는 직장에 애정을 쏟을 수 없었고, 내 적성에도 맞지 않아 결혼후 곧 퇴직하였다.
퇴직신청서를 제출하니 내 직속 상관은 한번 더 생각해 보라고 권하였지만 미련없었다.
그렇게 퇴직한 직장이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청춘의 아름다운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과거는 모두 화장을 하고 나타난다고 하더니 그때는 싫었던 조직생활이 그리워졌다.
민원실을 한바퀴 돌고 청사뒤의 아라가야 시대의 고분군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 보았다.
고분군 뒤로 펼쳐진 하늘과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 정겹게 눈에 들어 왔다.
내가 어린 시절, 이곳이 왕의 무덤이라는 것을 어렴풋 알고 있었지만 우리의 놀이터였다.
우리는 고분위 윗부분에 올라가 크게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미끄럼을 타기도 하였다.
불안한 청춘의 뒤안길을 방황할 때도 나는 이곳을 자주 찾아 무덤 사이를 걸어 다녔다.
그 때에는 문화재로 지정도 되지 않았고 누구의 보호도 받지 않아 그냥 밋밋한 둔덕이었다.
이곳으로 올라와 발길 닿는대로 한참을 걷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되었다.
겨울 바람이 귓전을 씽씽 울리는 날에는 나 자신이 톨스토이처럼 광야를 떠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한참을 걷고 나면 어느새 고요가 찾아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콧노래까지 나왔다.
그렇게 밋밋하였던 고분들이 이제는 잘 정비되어 제 모습을 찾았으니 정말 상전벽해를 실감하였다.
추어탕으로 아침을 먹은 후 우리는 행사장에 가기전 자유시간에 친척집을 방문하였다.
6촌 올케언니가 병석에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잠깐 병문안하고 나왔다.
골목길을 걸어 성당으로 올라가는 좁았던 길은 알아보기 어려운 정도로 변하였다.
골목길도 넓혀졌고, 파스텔톤으로 곱게 벽화가 그려져 아름다운 골목으로 변하였다.
우리집은 바로 성당앞이었기에 우리는 학교가 파하면 책보따리 마루에 던져 놓기 바쁘게
성당 마당으로 들어가 목이 터져라 고함을 치르며 여러가지 놀이와 술래잡기를 하였다.
성당 탱자나무 울타리 아래의 첫집 순덕이의 집에는 오빠들이 많아 만화책이 많았다.
만화가 보고 싶어 살그머니 순덕이 집으로 가려고 하면 어느새 동생이 내 뒤를 따라왔다.
순덕이는 자기의 좁고 어둑한 방에 여러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꺼려하여
친구인 나는 허락하였지만 동생들이 따라오는 것을 싫어하였는데, 눈치도 없이
동생이 내 뒤를 쫄랑졸랑 따라오면 타이르기도 하고 돌멩이를 던져 쫓기도 하였다.
그때의 아련한 그 시절을 동생이 이야기하면 나는 부끄럽고 미안하여 숨고 싶었다.
골목 끝 성당으로 올라가 성체조배를 하고 어릴적 동생들의 친구였던 사무장을 찾으니
아직 출근전이라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며 성당아래의 옛날 우리집을 찾아갔다.
어릴적 그렇게 넓었던 마당과 남새밭이 이렇게 좁고 작은 곳이었나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집 담의 벽화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천천히 걸어 행사장인 공설운동장으로 향하였다.
나의 옛 직장이었던 함안 군청.
오른쪽 건물은 신축한 건물인 듯.
군청 민원실로 들어가는 두 여동생.
민원실 입구.
아라 고분으로 올라가는 길에 봄꽃이 눈부시다.
잠깐 인증사진 한 장 찍고.
계단위에서 내려다 본 군청 마당.
옥상 정원.
아침 햇살이 찬란하게 비춰주는 말이산 고분.
고분군 설명판.
어린 시절에는 이곳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저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 미끄럼을 타기고 하였다.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편안한 곡선의 고분.
고분위의 맑은 하늘.
발굴의 역사에 대한 설명판.
청춘의 뒤안길에서 불안할때 나는 이 등성이를 자주 찾았다.
전에는 거의 흙무덤이었는데 이제는 잘 정비된 고분.
하늘에서 내려다 본 고분과 주변의 마을
고분에 대한 설명판.
언제 다시 찾아올까....생각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군청 앞마당의 기념비.
옛근무처 앞에서 인증사진.
군청 비탈길의 붉은 연상홍.
성당으로 오르는 길목이 완전히 변하였다.
이 집에 내 친구 순덕이의 집이었다.
토담이 이렇게 이쁜 벽화로 단장하였다.
만화를 좋아하였던 나는 순덕이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정겨운 이름 방목길.
전에는 탱자 울타리였던 길이 벽화를 보는 즐거움의 길이 되었다.
마지막 잎새를 생각하게 하는 담.
혼자서 골목 벽화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컸다.
함안 성당의 입구.
어릴적 동네 꼬마들이 모여 놀았던 느티나무.
내가 다닐 때의 옛성당의 모습은 사라지고 새로 신축한 성당의 모습.
성당의 머릿돌.
옛추억을 더듬으며 기념 사진을 찍는 두 동생.
담장 아래의 꽃밭.
성당 오르는 길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동생들.
아래의 연못에 커다란 잉어가 헤엄치고 있었다.
제단.
옛 공소에 달렸던 종.
군북공소 종의 역사.
구읍 공소 종의 역사.
옆에서 바라본 함안 성당.
어릴적 붉은 꽃잎으로 코에 붙이고 닭놀이를 하였던 접시꽃.
사무장을 기다리는 동안 다시 성당 아래의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보았다.
파스텔 톤으로 잘 그려진 담장이었다.
오른쪽이 우리가 살았던 옛집이다.
우리집 대문으로 들어가는 골목.
옛집의 담에서 기념사진.
어릴적 손꼽장난을 하였던 꼬마가 이제는 이 성당의 사무장이 되었다.
사무장과 함께 옛추억을 나누는 동생들.
이 강변에 수양버들이 줄지어 있었는데....아쉬움....
다리위의 행사를 알리는 태극기.
노점에서 파는 싱싱한 딸기.
가야읍 입구.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카서스 3국 여행 1-안녕. 코카서스. (0) | 2019.06.02 |
---|---|
봄날의 고향 나들이 3-아라문화제 축제의 모습. (0) | 2019.04.28 |
봄날, 고향 나들이 1- 함안 아라문화제(제 32회) (0) | 2019.04.28 |
광진미협 봄 야유회 4- 두타산 무릉계곡 (0) | 2019.04.20 |
광진미협 봄 야유회 3- 동해시 월산 미술관 (0) | 2019.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