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밑으로 여동생이 둘이나 줄줄
달려 있는데도 나는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멋진 연애는 꿈꾸었지만
결혼하여 한 남편의 아내가 되어
평생을 가정속에 갇혀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내 부모님들의 결혼 생활이
곁에서 지켜보는 내 눈에는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밑에서
주체적인 정신을 갖고 있는 어머니는
너무 힘들어 하고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어머니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으로 보였다.
엄격한 종교적인 영향으로(4대째 천주교 집안)
순종적으로 살고 있는 어머니가
그렇게 가여워보였고
나는 결코 그런 결혼의 굴레에
갇혀 살고 싶지 않았다.
내힘으로 자립하여 내가 하고 싶은 일하며
자유분방하고 멋진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렇게 잘난척하며 의기양양 살고 있는데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해 버리고
같이 놀 친구도 없어지자
아 역시 혼자는 외롭구나.
난 결코 잘나고 똑똑한 여자가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번개처럼 나를 치고 지나쳤다.
그동안 마땅한 혼처가 나타났다고
맞선 볼 기회를 몇번이나 만들어 주셨지만
그런 물물교환 같은 장소에는 나가고 싶지 않아
늘 악을 쓰며 도망쳐 다녔다.
직장에서도 남자들의 보조 역활하는 것이 싫어
공무원 시험을 치루어 내 몫을 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직장도 내 마음먹은 것처럼 자유롭지 못했다.
그곳에서도 엄연히 남녀 차별이 있었으니까.
나는 거대한 사회 공동체안의
작은 톱니바퀴밖에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자 남들처럼
나도 가정을 이루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게야 친구의 소개로 만난 남편과
5개월만에 결혼하게 되었으니.
그와 만나면 마음이 편하다는 그 한가지만으로
그의 가정이며 학벌, 심지어 직장에서
무슨일을 하는지도 모른체 결혼을 해버렸다.
우리집에서도 항상 도망만 다니다가
내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소개하자
군말없이 승낙하여 5월 8일 어머니날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게 내가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것 같았기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몸으로 9남매를 키웠으니
그 고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지금도
어머니란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저릿해지고
콧등이 시큰해지며 목이 멍먹해질 정도로
힘든 인생을 사시고
가엾게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가지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는 말처럼
일생을 편하게 한번 사는 날없이
자식뒤치닥꺼리 하시다가
한달 정도 아프시고는 돌아가신
나의 가엾은 어머니.
(어머니는 우리를 모두 결혼 시키시고는
홀로 기도와 이웃 봉사를 하시면서 사셨다.
연고없이 돌아가시는 분이 있으면
직접 염을 해주시는 일도 도맡아하신 어머니셨다)
지금 내 아들은 학교 수업이 오후에 있는지
피아노 앞에 앉아
가곡<어머니의 마음>과
모짤트의 <어머니가 가르쳐 준 노래>
변주곡을 서투른 솜씨로 치고 있다.
아마 나에게 주는 선물인 모양이다.ㅋㅋ
가끔 꿈속에 나타나
내가 엄마, 엄마....
부르다가 내 목소리에 놀라 깨기도 하는
나의 어머니.
지금 어머니는 행복하신가요?
어머니 앞에 사랑의 카네이션 한송이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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