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남편과 팝 레스토랑.

푸른비3 2006. 7. 28. 04:37

며칠전 방학을 맞이한 우리 늦동이 딸 아라(초딩6년)의

성적표를 보고, 남편이 저녁외식을 약속한 모양이다.

나와 딸아이는 지글지글 고기를 굽는 곳보다

음악과 분위기가 아름다운 레스토랑에 가고 싶어한다.

대신 남편은 궁둥이 따뜻하고 붙혀 앉을 수 있고,

담배도 피울 수 있고 매캐한 연기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삽결살 소주를 파는 그런 장소를 좋아한다.

 

오늘은 딸아이의 기호에 맞춰 미리 레스토랑에 가서

우아하게 칼질을 하기로 미리 약속을 하였기에

저녁 시간이 가까워, 나는 옷을 갈아입고

평소에 하지 않는 팔찌와 목걸이까지 하고

남편을 기다렸다.

막상 주인공인 딸아이는 아무리 원피스로 갈아입어라고 하여도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탓인지

남자 스타일의 반바지, 티셔츠를 고집하였다.

하는 수 없지....

 

시내에서 벗어나 가포에 있는

빈센트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에

남편은 밥 한그릇 먹으려고 이렇게 멀리 나가야하나?

하고 슬며시 귀찮아 하였다.

오늘은 아무 소리 안하고 가기로 했잖아요?

우리가 애인이라면 오히려 드라이브 하는 먼 곳이

좋아질텐데...애인이라고 생각해요....

하였더니 슬그머니 웃는다.

 

그러나 가는 도로가 자꾸 막히고

지난해 오픈한 호텔 리베라의 불빛이 눈에 들어온 순간

갑자기 아 ~!그래, 오히려 호텔 레스토랑아 낫겠다.

하는 생각에 그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13층 전망좋은 곳으로 안내받아 자리에 앉았는데

남편은 벌써 인상이 구겨지고 있었다.

팝 레스토랑이었기에 앞에는 필리핀 3인조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약간 조명도 어두웠다.

나와 아라는 노래 부르는 걸 들으면서 식사를 즐기고 싶은데

남편은 영~ 아니었다.

오늘 주인공은 아라이니 당신은 아무말 없기예요. 눈짓을 하였다.

 

얼음물과  전체요리가 나왔는데 정말 간이 맞지 않아

잘못된 선택이구나...그러나 이미 늦은걸 어떻해?

하는 심정으로 먹으면서 남편을 보니, 한입 먹고는 그대로

앞으로 밀쳐 내 놓았다.

그러면서 다음 요리 나오는데 웬 시간이 그렇게 걸리는지....

오늘 따라 주방장이 한 사람 나오지 않아 밀린다고 양해를 구했다.

나는 기다리는 시간 동안 음악도 듣고

어두워가는 밤바다도 바라보며 좋기만 한데

옆에 앉은 남편이 영 마음에 걸린다.

 

메인 요리도 고기맛은 있었지만, 곁의 버섯도, 단 호박도

그저 어쩔수 없이 먹어야 할 정도의 맛이었다.

인상이 구겨진 남편에게 여보 집에 가서 라면 삶아 드릴께요, 미안해~

하고 달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나와 아라가 식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메인 요리가 끝나고, 과일과 쥬스가 나왔는데

투명한 유리컵에 담긴 얼음 담긴 쥬스를 천천히 마시면서

음악과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지만,

배고플 남편을 생각해, 쥬스를 한 모금만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으로 저 쥬스값만 해도 얼마가 될텐데... 아까워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보 덕분에 잘 먹었어.

당신 아니면 누가 날 저런데 델꼬 가겠어요?

음식 맛은 없었지만, 분위기는 정말 좋던데요. 고마워요...

애교섞인 목소리로 말하였더니 남편은 담배만 피우고 아무 말도 없다.

 

집에 돌아오기 바쁘게 가스불에 냄비를 올리니

남편이 내가 끓여 먹을께, 당신은 샤워나 해~

어머,어머, 정말요. 고마워. 당신이 최고~!

속으로 눈웃음 치면서 룰루랄라 화장실로 들어갔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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